▲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김진홍 목사는 2010년 11월 크리스천투데이에 게재된 “죽음 이후의 삶”이란 성경묵상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장 24절)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는 미래 시제이다. 그리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현제 시제이다. 부활신앙을 믿는 우리는 과거에 예수님을 믿고 우리들의 주인으로 영접하던 때에 이미 구원을 얻었다. 그래서 미래에 저승에 가서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사망에서 벗어나 생명을 누리고 있다.”

김진홍 목사는 칼빈의 예정설에 입각하여 한 번 마음에 믿으면 행위와 관계 없이 구원을 얻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옥한흠 목사가 2007년 성령 100주년 기념예배 중 10만 성도 앞에서, 자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믿기만 하면 천당 간다고 변질된 복음을 설교해옴으로써 행위가 없는 죽은 한국교회를 만들었음을 눈물로 회개하고 동료 목사들의 회개를 독려한 사실과 무관하게, 김 목사는 여전히 한국 교인과 교회를 사망으로 인도하여 온, ‘한 번 구원 영원구원론’을 가르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김 목사가, 지난 2014년 12월 30일자 크리스천투데이에 게재된 “청교도 신앙과 한국교회”라는 성경묵상에서는 “나는 청교도 신앙이 지금의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가장 적합한 신학운동이라 생각한다”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는 “16세기에 힘차게 일어났던 종교개혁운동이, 시간이 흐르면서 힘이 약해져 가고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그런 상태로 진행되다가는 개혁정신이 흐지부지 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 시기에 개혁운동을 살리는 운동이 영국에서 일어나게 되었으니 바로 청교도 운동이다. 청교도 운동이 일어나자 형세가 힘 있게 뻗어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이 힘을 얻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칼빈의 비복음적 신학과 비성경적 교리 때문에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100년 동안 개신교 교인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의 그것보다 더 세속적이었던 사실을 간과한 채, 마치 칼빈의 신학이 신앙개혁에 성공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동력을 잃었으며 청교도 신앙이 다시 개혁의 힘을 불어 넣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혀 당시의 현실과 다릅니다. 칼빈의 예정설과 견인론에 침몰된 당시 개신교인들은, 한 번 믿기만 하면 어떻게 살아도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칼빈의 비성경적, 아니 반성경적 교리를 믿음으로, 행위가 있는 믿음이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온전한 복음을 저버리고 세속적 삶을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마치 오늘날 칼빈의 반성경적 교리를 믿는 한국 교인들이 세속적 삶을 사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처럼.

개신교 지도자들은 교리 개혁을 통한 삶의 개혁 없이는 온전한 종교개혁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출판된 지 근 110년 후인 1646년, 3년 동안에 걸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중심으로 논의한 끝에 완성된 웨스트민스터신조는, 칼뱅의 견인론을 성화 필수론으로 대체했습니다.

웨민신조는 견인론의 구조적 결함을 ‘은혜의 자리’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했습니다. 신조 제17장 1(성도 견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으시고 그의 영으로 효력 있게 부르시며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자리’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떨어져 버릴 수 없고 그 안에서 확실히 끝까지 견디며 영원히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곧 뒤를 이어 제18장(은혜와 구원의 확실성에 관하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성실하게 그를 사랑하고 그의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어서도 그들이 ‘은혜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17장 1에 제18장을 결합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구별한 자들은 ‘은혜의 자리’에서 떨어져 버릴 수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성실하게 그를 사랑하고 그의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이 그러한 ‘은혜의 자리’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주의인 경건주의와 퓨리터니즘은 믿음에 의한 칭의교리를 전적으로 주장하였지만, 동시에 개혁주의에서는 보이지 않는 크리스천의 삶을 강조하였다. 크리스천의 행위는 진정한 믿음의 증거이며 결과이다. 신자의 삶 속에서 그러한 행위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진정으로 칭의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Essentials of Evangelical Theology by Donald G. Bloesch Vol. I P.234)는 것이 퓨리터니즘의 가르침입니다.
 
이와 같이 온전한 복음을 반영한 웨민신조가 신자들의 삶 속에 영적 영양소를 공급하여 맺힌 열매가 청교도들의 신앙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행위가 없어서 죽어가는, 사데교회와 같은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은 전 세계 복음주의 교회들이 신조로 채택하고 있는 웨스터민스터신조를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온전한 복음으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온전한 복음이 맺은 한 개의 열매에 지나지 않는 청교도 사상을 강조하고 이를 따르자는 것은, 근본을 버려두고 지엽에 매달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반영한 웨스터민스터신조에 일치하여 예수교장로교회의 헌법은 신조 제9항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여 본받으며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을 복종하여 겸손하고 거룩하게 행하라 하셨으니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그런데 1960년대 경제개발을 동반한 물질주의에 함몰된 많은 교회의 목사들, 특히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교회의 양적 성장에 정신이 팔려, 믿기만 하면 천당에 간다는 한 번 구원 영원구원론을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래에는 장로교 뿐 아니라 칼빈주의에 반대하여 경건주의를 기치로 요한 웨슬레가 창시한 감리교 목사들도, 칼빈의 한 번 구원 영원구원론을 설교하는 참담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는 믿음으로 살아감으로써 한국교회가 개혁되고 부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선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온전한 복음을 설교하고 삶 속에서 모범을 보이는 데 있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따라 ‘온전한 복음’ 다시 일으키자”]
[칼빈 구원론은 얼마나 성경적인가?]
[옥한흠 목사의 육성회개]

<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 저자 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홈페이지: http://cafe.daum.net/loveviafa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