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길 박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한국장로교신학회(회장 이상규 박사) 제24회 학술발표회 ‘한국장로교 신학의 어제와 오늘’이 22일 오후 서울 신길동 남서울교회(담임 최성은 목사)에서 개최됐다.

이날 2부 학술세미나에서는 변종길 박사(고신대원)가 제2발표에서 ‘한국 성경주석의 역사와 과제’를 주제로, 시대별 한국 대표 성경주석들을 살펴보고 과제와 나아갈 방향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1907년 대부흥을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했으나, 이어진 일제의 탄압으로 성경 연구 분야는 그만큼 발전하지 못했다”며 “해방 후 재건된 한국교회에서는 성경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고, 전통적 해석 외에도 다양한 현대적·비평적 연구 방법이 시도됐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신진 학자들이 대거 유입됐다”고 했다.

초창기 한국교회는 “은혜롭게 정통을 보수하면서 발전”했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개혁주의 원리’는 만족스럽게 사용되지 못했다. 변 박사는 “전체적으로 성경 해석을 칼빈주의적으로 밝히 드러내는 데 빈약했고, 오히려 복음주의적 경향으로 흘렀다”며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면 바른 역사적·문법적 해석이 선행돼야 하나, 당시 목회자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거의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4년 12월 ‘한국 선교 50주년’을 기념해 최초로 <단권 성경주석>이 발간된다. 미국의 ‘The Abingdon Bible Commentary’를 번역한 ‘아빙돈 성경주석’으로, 이는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빙돈 주석은 근본주의 성서이해를 전적으로 수용한 한국 장로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듬해 장로교 총회에서 주석을 구독하지 않고 번역 참여 목사들에게 입장을 표명하도록 결정했다.

변 박사는 이 주석에 대해 “성경을 경전이 아닌 ‘종교적 성문헌’으로 보면서 ‘우수한 문학적 작품’으로 ‘종교적 가치’를 갖는다고 봤고, 성경연구 방법으로 ‘비판’을 옹호했다”고 평가했다. 기장측 역사편찬위원회의 ‘자주적 한국신학 형성기로 넘어서는 시대구분적 의미를 갖는다’는 주장에도 “성경의 완전영감을 믿고 무오성을 받아들이면 식민주의이고, 성경 비평을 받아들이면 자주적인가”라며 “이 주석도 결국 번역서이고 번역자들도 서양 신학을 배운 것이므로 ‘자주와 식민’으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맞섰다.

이 사건으로 한국 장로교회는 보수적 선교사들과 함께 <표준 성경주석>을 출간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편집원칙은 학구적·비판적·통일적·실용적·정통적이었다. 특히 성경 비평을 허용하지 않던 장로교회가 ‘비판적’ 원칙을 세운 것에 대해 당시 박형룡 박사는 “학구적 방법에 의해 성경 본문의 진의를 구명하는 것을 본령으로 삼는 동시에, 근대의 성경비평계에서 들어오는 각종 제안에 유의하여 제설(諸說)의 취사출척을 명민히 함으로써 성경옹호 입장을 고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표준 성경주석>은 여러 사정으로 총 12권 출판에 그쳤다.

▲변종길 박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결국 한국인 학자에 의한 최초의 성경주석 완간은 1945년 <요한계시록>부터 1979년 <에스라 느헤미야 스가랴>까지 35년간 20권을 펴낸 박윤선 박사에 의해 달성된다. 변 박사는 “박윤선 주석은 신구약 성경 전체를 한국 사람의 손으로 집필·출간한, 한국교회 100년 동안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작업이었다”며 “그의 주석서는 자유주의 입장을 막아주는 커다란 울타리를 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박윤선 주석에서 아쉬운 점으로는 ①대체로 주해가 너무 간단하며 때로는 설명 없이 지나간 부분이 많다 ②때로 논리의 치밀함이 부족하고 대충 설명하고 넘어간 부분들이 많다 ③가끔 근거 없는 영해가 있다 ④은사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 자세를 취한 부분도 있다 등을 꼽았다. 그는 “전체적으로 볼 때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한 건전한 성경이해에 크게 공헌했고, 간결하면서도 개혁주의적이라 오늘날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특히 서양 주석에서 느낄 수 없는 은혜와 감동을 준다”고 했다.

이후 이상근 박사가 15년간(1960-1975) ‘신약주해’를 완간했고, 2000년 이후에는 여러 곳에서 성경주석의 필요성을 절감해 간행을 계획하고 있다. 예장통합과 고신, 복음주의신학회 등에서 성경 전권 주석을 진행 중이다. 변 박사는 “한국교회 역사가 짧고 역량이 미치지 못해 그동안 주석 발간이 미진한 가운데서도, 해방 후 박윤선 박사 등을 통해 주석이 출간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며 “그러나 이 주석들이 출판되고 세월이 많이 흘렀으므로, 변화된 시대상황을 고려해 성경구절들에 대해 충분히 깊이 있게 해설한 새로운 주석도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변종길 박사는 그 이유로 “인간의 주석은 한계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람에 의해 더 깊고 부요한 의미가 충만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4세기 어거스틴보다 16세기 칼빈에게서 훨씬 균형 잡히고 건전한 성경 주석을 대할 수 있고, 16세기 칼빈보다 20세기 개혁주의 주석가들에게서 더욱 정확하고 치밀한 주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성경주석이 나아갈 방향으로는 ‘문법적·역사적 해석’에 충실하면서도 박윤선 주석이 보여줬듯 ‘영적 의미를 잘 드러내는 주석’을 제시했다. 먼저 철저한 ‘문법적·역사적 해석’으로 성경 자체가 말하는 의미 파악에 힘쓴 후,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1차적으로 과거 이스라엘 백성에 주신 말씀이지만, 또한 그 말씀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최근 고신 교단에서 발간하고 있는 성경 주석을 예로 들기도 했다. 고신 주석은 매 단락마다 ‘본문 주해’ 끝에 ‘교훈과 적용’을 넣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간략하게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그는 “이 ‘교훈과 적용’이 지금 말하는 ‘영적 의미’에 가깝다”며 “이는 주석자가 주관적으로 묵상해서 떠오른 생각을 적은 게 아니고, 올바른 영적 의미는 반드시 본문에 기초하며 성경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영적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박윤선 박사처럼 끊임없는 기도와 묵상, 꾸준한 성경 읽기가 요구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성경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따라서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해서는 해석자의 신앙과 삶 전체가 연루됨을 알 수 있다. 올바른 성경 해석은 책상 위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실과 교회 공동체와 우리의 삶 가운데서 행하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도 했다.

변 박사는 “2000년 이후 한국인에 의한 한국적 주석 발간사업이 여러 곳에서 진행돼 고무적이나, 어떤 방향과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진지한 논의 없이 사업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도 “대략적으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주석이라는 합의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며 실제적 적용이 있는 주석, 무난하게 수용할 수 있는 복음적 주석을 많이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제1발표 ‘한국 구약학 연구사와 과제’를 김정우 박사(총신대)가, 제3발표 ‘한국 장로교에서의 교회사 교육과 연구’를 이상규 박사(고신대)가, 제4발표 ‘한국장로교 100년간의 조직신학 발전역사(1): 평양신학교와 5개 주요 교단 신학대학원(고신·장신·총신·한신·합신)을 중심으로’를 김은수 박사(횃불트리니티신대원)가 각각 발표했다. 1부 개회예배에서는 최성은 목사가 설교했으며, 이종윤 목사(한장총 증경대표회장)가 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