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김명용 조직신학 교수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르치는 교리 가운데 성도들을 가장 당혹케 하는 교리가 바로 삼위일체론이다. 세 분 하나님이 한 분이 되고 한 분 하나님이 세 분이 되는 이 이상한 교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포기하기도 하고 또 세 분 하나님을 하나님의 세 가지 존재양태, 곧 양태론적 방식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존재는 어떤 신비일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란 도대체 어떠한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일까?

I. 삼위이신 하나님
1. 세 분 하나님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 [지난 기고 보기]
2. 성부와 성령은 각각 다른 하나님이시다-[지난 기고 보기]
3. 세 분 하나님의 동격성을 강조한 고대 교회의 정통 신조들-[지난 기고 보기]
Ⅱ. 일체이신 하나님
1. 하나님의 상호침투와 함께 거하심-[지난 기고 보기]
2.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지난 기고 보기]

3. 하나의 신성(우시아)과 세 실체(휘포스타시스)

삼위일체론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성서에 기초해야 되는 교리이다. 그것은 또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신 하나님 상호 간에 일어나는 신비한 구원의 역사를 바르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교리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삼위일체론은 점차 사변적 형태를 띠게 되는데 이 사변적 형태로의 잘못된 발전의 핵심은 셋이 하나이고 하나가 셋이 되는 3=1의 괴상한 논리로의 발전이다.

한분이 세 분이 되고 세 분이 한 분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있을 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의 이성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라는 괴상한 논리로 무장해서 교회와 성도들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론으로 발전하는데, 이것은 주로 서방 교회에서 발전했다.

362년의 알렉산드리아 회의에서 결정된 삼위일체론의 기본 도식은 하나의 본질(우시아)과 세 실체(휘포스타시스)였다. 이 도식은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곧 세 분이신데 같은 하나의 본질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325년의 니케아신조가 성부와 성자와 신성의 동일성을 언급했고, 362년의 알렉산드리아 회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의 동일성을 천명한 것이다. 이 정신은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영향을 미쳐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실 분”으로 세 분 하나님의 신성의 동등성이 공식적으로 천명된 것이다.

325년의 니케아회의의 주역이었던 아타나시우(Athanasius)는 성자의 신성이 성부의 신성과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성부의 신성에 비해 성자의 신성의 열등성을 주장했던 아리우스(Arius)파에 대항하는 싸움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유념해야 하는 것은 이 싸움에서 성부와 성자가 서로 다른 분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고 상식적인 것이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성부와 성자는 두 분이신 신이지만 태양에서 빛이 나올 때 그 빛은 태양의 빛과 속성이 동일한 것처럼 아버지의 신성과 아들의 신성은 같은 하나의 신성이고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샘에서 물이 흘러 하천을 이룰 때 샘물의 속성과 하천물의 속성은 완전히 일치하는 것처럼 성부의 신성과 성자의 신성은 동일하고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런 까닭에 아타나시우스는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과 동일하다고 했다.

삼위일체론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동방 교회의 정통신학자들은 서방 교회 일각에 나타나고 있었던 삼위일체론의 양태론적 경향을 언제나 비판했다. 고대 교회에서 일신론은 언제나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그것이 역동적 단일신론이든지 양태론적 단일신론이든지 일신론은 언제나 이단이었다. 몰트만(J.Moltmann)에 의하면 삼위일체론의 정통 신조를 만들어낸 동방 교회의 정통신학자들의 삼위일체론은 사회적 삼위일체론이었다. 사회적 삼위일체론이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하나님이 상호간의 사귐을 통해 하나됨을 유지하는 사귐의 삼위일체론을 뜻한다. 이 사귐의 삼위일체론 가운데 독특한 것 중 하나는 나치안스의 그레고리(Gregory)가 언급한 가족형 삼위일체론이다. 나치안스의 그레고리에 의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지상적 유비는 아담-하와-셋의 가족이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만드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갑파도키아 교부들의 맏형격인 가이샤라의 바실(Basil)은 세 분 하나님의 일체성을 세 하나님의 코이노니아의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갑파도기아 교부들은 세 분이 한 분이 되고 한 분이 세 분이 되는 괴상한 논리는 상상할 수 없었다. 원래의 삼위일체론의 도식인 하나님의 한 본질(우시아)과 세 실체(휘포스타시스)는 세 분 하나님을 명백히 전제하면서 이 세 하나님이 한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 있다. 즉 세 하나님의 신성에 높고 낮음의 차이가 없고 동일한 신성을 공유하고 있고, 이 신성의 교류를 통한 하나됨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였는데, 이런 의미에서 세 분 하나님은 하나이시지 한 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본질(우시아)을 실체와 동일시 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한 분인 동시에 세 분이 된다.

4. 한 하나님(One God)의 의미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세 분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말과 세 하나님들(3 Gods)이 있다는 말을 같은 말로 이해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말은 세 인격체(3 Persons)를 지칭하는 말이지 삼신론을 의미하는 세 신들(3 gods) 혹은 세 하나님들(3 Gods)로 생각하면 안된다.

삼위일체론을 형성시킨 신학의 교부들은 하나님이 세 분(3 hypostasis)이라고 언급했지만 세 하나님들이 있다고는 언급하지는 않았다. 아타나시우스와 캅파도키아 교부들은 세 하나님들이 있다는 표현에 대해 한결같이 반대하면서 오히려 한 하나님(One God)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 한 하나님이란 말의 뜻이 무엇일까?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한 하나님이라는 말의 의미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상호침투와 공재(共在)를 통해 하나의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한 하나님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하나의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이 삶과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 이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과 역사는 언제나 하나이다.

그리고 한 분의 삶과 역사 안에 언제나 세 분의 삶과 역사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은 성부의 영광인 동시에 성자의 영광이고 성령의 영광이다. 즉, 하나의 하나님이란 하나의 거룩한 삼위일체 신 전체를 지칭하는 말인 것이다.

장신대 김명용 조직신학 교수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Th.M.) 졸업
독일 정부의 아데나워(Adenauer) 재단 초청 장학생으로 독일 유학
독일 튀빙엔 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박사 학위 취득
반석교회 담임목사 역임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