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비슷해지는 큐티 적용
하나님 말씀과 ‘찐친’ 되려면
다른 이들과 소그룹 나눔을
성경 잘 몰라도 시야 넓어져
지식 뽐내지 않도록 조심을
바르게 자라게 하는 버팀목

송은진
▲의정부 세우는교회 송은진 목사와 청년들이 카페에서 독서 모임을 갖는 모습. ⓒ크투 DB

“아이고, 나는 정말 구제 불능인가봐! 그렇게 큐티를 많이 해도 변하지 않으니 말이야!”

필자는 큐티를 하면서 말씀의 검에 찔리면 안타까움에 자조적인 말을 할 때가 있다. 물론 필자도 ‘믿음은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만 찌질한 건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큐티를 하는 많은 성도님들도 이런 생각을 하실 것이다. 큐티와 친해지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익숙해져도 끙끙거리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 책상에 앉아서 성경을 보며 뜬구름 잡는 듯 시간만 보내도 괜찮다. 큐티는 수학 문제 풀이가 아니라, 생각을 길어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이 하나님 말씀과 ‘찐친’으로 만들어주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큐티를 하다 보면 큐티 내용이 비슷해진다. 늘 ‘기승전…’ 결론은 더 기도해야 하고, 더 말씀 보아야 하고, 더 겸손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마무리되면 힘들어진다.

마치 시지프스가 바위를 힘들게 정상까지 옮겨도 다시 바위가 굴러 떨어져 다시 옮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과정을 겪다 보면 자신이 큐티를 제대로 하는 건지도 확실치 않아 불안하기조차 한 것도 사실이다. 점점 큐티와 멀어지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자신의 큐티하는 수준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까지는 없다. 큐티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별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303호나 304호 거주자가 사는 방식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있다. 어느 집이나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해 보여도 다투기도 하고 냉전도 벌어지며, 한편으로는 웃음꽃도 만발한 게 우리 삶이기 때문이다. 다만 옆집에서 벌어지는 내밀한 이야기들을 알 수 없을 뿐이다.

큐티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그 모습만 해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실망도 하고 기쁨도 누리는 것이다. 다만 골방에서 큐티를 하다 보면 자신의 수준을 알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 큐티와 사귀는 좋은 방법이 있다. 큐티 나눔을 하는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큐티 나눔을 하면 된다. 함께 모여 같은 성경 본문으로 받은 은혜를 나누면 힘이 나기 때문이다.

일상에 적용하는 소그룹원들의 모습에서 위로와 응원을 받게 된다. 소그룹에서 묵상한 내용과 적용할 부분을 나누며 공감하게 되는 이유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물론 출석교회의 소그룹에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신앙의 결도 맞아야 하는 까닭이다.

소그룹에 참여해서 자신이 한 큐티를 나누는 게 더 어렵다는 분도 계실 테다. 자신의 성경 지식이 너무 짧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큐티 나눔은 성경 내용을 잘 몰라도 괜찮다. 오히려 좋은 기회다. 소그룹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의 성경 보는 눈을 통해 나의 시야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큐티나눔이 나를 자라게 하는 이유다.

오히려 자신의 성경 지식을 뽐내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큐티는 성경 말씀에 비추인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될 수 있도록 가다듬고 바꾸는 것이 큐티인 것이다.

그러니까 큐티 나눔은 우리를 바르게 자라게 하는 버팀목인 것이다. 게다가 나눔은 나를 자라게 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내게 없는 부분을 채우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큐티와 친해지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큐티 나눔 소그룹을 하는 방법을 나누려 한다.

이석현 읽고 쓴다
▲이석현 목사.

이석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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