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하와 타락 원죄
▲아담을 유혹하는 하와. ⓒ픽사베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5-6)”.

호기심(好奇心)이란 ‘새롭거나 신기한 것에 끌리는 마음’, ‘새로운 것에 대한 강렬한 관심과 탐구욕’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호기심이라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호기심은 우리 세상을 탐험하고 이해하며 지식을 쌓아가는 원동력이자 엔진입니다.

호기심이란 단순한 지적인 면뿐 아니라, 신기한 경험을 원하는 욕망과 연결돼 있습니다. 호기심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지속적으로 세계를 탐험하려는 우리의 본능적 욕구도 의미합니다.

특히 호기심은 지식의 확장과 창의적 사고 촉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를 갖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호기심은 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들며, 삶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열쇠입니다.

호기심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여정을 함께 누려 보십시오. 호기심을 통해 발견하는 모든 경험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것임을 신뢰하면서, 신앙인들 역시 호기심으로 신앙생활을 보다 행복하고 아름답게 영위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유혹(誘惑)이란 ‘꾀어서 마음을 현혹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지난 사순절은 영적 훈련의 시기였습니다.

앞서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과 싸우기 위해 광야로 가셨습니다. 광야의 유혹은 우리에게 세 가지 적을 알려줍니다. ‘악마’와 ‘세속’, 자신의 ‘나약함’입니다. 이런 현실은 예수님의 경우처럼 3가지 방식으로 늘 우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본문 5절 말씀처럼, 뱀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게서 독립해, 하나님처럼 되어라’고 유혹합니다. 사람은 하나님 중심의 삶 대신, 자기를 내세우는 삶을 살고자 할 때 반드시 사탄의 시험에 넘어집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려는 마음이 싹튼다는 것은, 사람의 자아가 하나님 중심의 교훈에 순종해 사는 것을 게을리했거나 거부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에는 사탄의 거짓 교훈이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특히 창세기 3장은 부러워할 것 없이 풍족하고 넘치게 살 수 있는 낙원에서, 간교한 뱀의 유혹과 하와의 호기심으로 일어난 변화를 말해줍니다. 아름다운 낙원, 슬픔과 고통과 전쟁 없는 곳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들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죄를 짓고 맙니다. 이후 지금까지 인간은 죄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3장은 사탄의 유혹으로 인간이 타락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도덕적으로 무죄한 상태로 창조되었지만,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류가 끊어지고 각종 저주와 고통 속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속에는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 계획이 이미 계시돼 있었습니다.

종려주일 이후 고난주간을 지나 무덤에서 승리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부활주일입니다. 창조에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셨지만 정작 인간은 간교한 짐승의 유혹과 호기심의 발동으로 죄의 싹을 키웠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성경 역사를 통해 탐심과 유혹, 호기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맞이한 사실을 배우고 알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죄 가운데 얽매여 부활하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누가복음 24:5-6)”.

‘갈릴리에서 말씀하신 것’이란 누가복음 9장 22절, 18장 33절 말씀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미리 예고하셨지만 참뜻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 절망 중에 있을 때(9장 45절), 그들에게 두 천사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돌아가신 예수님을 찾는 여인들에게 천사가 전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면 예수님께서는 살아있는 이들 가운데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아직까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고 있을까요? 어쩌면 죄 짓고 세상 욕심 속에서 활개 치느라, 몸소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자꾸 뒤로 밀어낸 채 이기심과 불신, 무지 등의 돌과 흙으로 마음의 무덤을 쌓고 예수님을 가둬둔 것은 아닌지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부활은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 주신 값진 선물입니다. 다만 무덤을 벗어나야, 그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무덤에서 일어나 예수님과 소통하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부활 아닐까요? 거룩한 변모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향해 조금씩 일상을 변화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주변에는 이미 부활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분들의 노력 덕분에, 교회 내 모든 기관들이 참 편하게 부활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앞으로 교회 화장실 청소나 식당 봉사라도 참여해야겠다는 마음이 감동으로 와 닿습니다. 아마 그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신앙인들은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통해 그 과정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창조 시대 사탄의 유혹과 하와의 호기심에 대한 결과로, 인류는 지금까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기심 때문에 남을 속이고 이웃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아벨이 동생을 죽였듯, 사람 죽이는 일을 마치 곤충 죽이듯 하는 악마들도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의사들이 환자를 뒤로 한 채,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정부와 강 대 강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민노총·정치계·언론계에 이어 교육계·사법부까지 사악한 세력들이 침투해 나라의 운명이 장차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습니다.

이 모든 문재의 시발점은 교육입니다. 교육이 좌편향되면서 인성이 무너지고, 도덕이 무너지니 상하 질서까지 무너졌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인류 보편적 가치마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현실입니까? 생명의 존귀함을 다룬다는 사명 의식과 철학적 사고 없이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국민들의 소중한 목숨이 더 이상 봉일 수 없습니다. 물론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의사들은 서운하겠지만, 정말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1968년 최종 완성된 ‘제네바 선언’ 총론에서는 “이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고 서약합니다. 이 숭고한 맹세는 돈 앞에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더 이상 의업에 종사하는 자가 아니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망각한 본연의 책무를 국민들이 지켜줄 의무는 없습니다. 국민들을 기만한 죄값을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1950년 6.25 사변 이후 1960-1970년대는 참으로 가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배고픔과 가난에 찌들면서도 국민들은 허리를 동여매고 밤낮 없이 피와 땀과 눈물로 거둔 열매로 대한민국은 이렇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땀흘릴 때 데모나 시위를 하며 무위도식(無爲徒食)하던 자들이 감옥에 갔다 와 국회의원 빼지를 달고 권력을 남용해 부조리나 부패를 일삼으며 나라와 국민들에게 혐오스러운 정치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국민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악의 세력들을 뿌리채 뽑아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잘못은 에덴동산에서의 유혹과 호기심 때문에 저지른 죄악 때문입니다. 이후 인류는 끊임없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엄청난 죄악들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조차 하지 않은 채 죄를 짓고 있습니다. 저들은 부활의 승리를 모르는 악의 세력들인 것일까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악행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으시리라 확신합니다. 달콤한 유혹이 만들어낸 호기심은 욕망을 키웠고, 그 욕망으로 인한 인류 사회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자연을 훼손했으며, 심지어 인간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도덕과 윤리가 훼손됨은 물론, 공의와 정의가 무너져 내린 이 시대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을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마약과 술 취함, 부정과 부패, 활개치는 사기꾼 등이 국민들을 조롱하며 날뛰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을 따르고 있다면, 당신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