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올해는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님의 2024년 부활주일 설교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김하나
▲김하나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명성교회

본문: 마태복음 28:5-10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Christ is risen! Christ is risen indeed!)”

막달라 마리아가 로마의 황제에게 한 말에서 유래했다는 이 인사는 동방정교회의 전통적 인사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영어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인사말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라는 인사가 자리잡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가신 곳을 살펴볼 때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활을 기록하는 오늘 말씀에는 무덤을 찾은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무덤 앞에서 예수님을 찾는 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7절) 이어서 예수님이 다시 여자들을 만나시고 말씀하십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리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10절) 이렇듯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거듭 말합니다.

I. 갈릴리는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곳

우리는 왜 예수님이 먼저 갈릴리로 간다고 하셨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부활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을 떠올려 봅시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손에 잡혀 십자가에 달리시는 과정에서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그들은 ‘부활’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모든 계획과 꿈과 소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고 느꼈을 겁니다. 그렇기에 어부였던 제자들은 자신들의 본업으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그들의 본거지인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미 갈릴리로 갈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다른 곳으로 부르시지 않고, 그들 삶의 배경이 되는 갈릴리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아니, 부르실 뿐 아니라 먼저 가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참 귀하고 감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먼저 찾아가는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도망쳤던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배반했던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실망과 절망과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인 제자들을 다시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것 같지만, 주님께서 먼저 가서 기다리시며 우리에게 찾아와 주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오신 예수님이 팔을 펼치시고 우리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갈릴리에서 은혜를 주십니다.

II. 갈릴리는 은혜의 장소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사건은 모두 예루살렘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다윗 성에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예루살렘 도성 밖 무덤에 묻혔다가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호수입니다. 이곳은 로마의 통치자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디베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갈릴리는 이스라엘에서 촌으로 여겨지는 곳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여종과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억양 때문에 그가 갈릴리 사람인 것을 금방 알았습니다. 이렇듯 갈릴리의 평범한 사람들은 특권층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나셨고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부릅니다. 그 나사렛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데가볼리를 비롯하여, 말씀을 전하고 배를 타고 건너가신 곳도 갈릴리입니다. 변화산도 갈릴리에서 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가이사랴 빌립보도 갈릴리의 근원지인 북쪽에 있습니다. 모두가 갈릴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중심지에서 떠나 변방에서 생활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다시 변방으로 가셨습니다. 갈릴리는 우리 모두의 고향이고, 모든 일이 시작되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가장 많이 전해진 곳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고팠던 우리를 먹어주셨던 곳이고, 병자를 일으켜 세워주셨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건너가서 귀신을 쫓아내셨고, 갈릴리 주변에서 있었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거의 모든 기적이 갈릴리를 중심으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고쳐주시고, 낫게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변화시켜주시고, 먹여주셨습니다. 갈릴리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갈릴리로 갑시다. 그곳에 은혜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가장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예배가 아닌 것이 자리잡았고 종교와 정치가 혼합된 장소로 변질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곳, 은혜를 베푸시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배부르게 살아갈 때는 은혜를 알기 어렵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가난했고, 배고팠고, 아팠고, 서러웠고, 어려웠기에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던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잘 안다고 하면서도, 은혜를 몰랐습니다. 우리가 갈릴리의 은혜를 모르고 갈릴리로 가지 않으면, 은혜를 모르는 바리새인이 되기 쉽습니다. 제자됨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또한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야합니다.

III. 갈릴리는 첫사랑의 장소

갈릴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처음 만난 곳이었습니다. 왜 갈릴리로 오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을 처음 만난 그 장소에서 그들의 첫사랑을 깨우쳐주기 위해서입니다. 첫사랑을 회복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첫사랑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신 그 갈릴리에서 그들의 첫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죽으셨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첫사랑의 장소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부활주일에 우리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첫사랑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장소가 갖고 있는 힘은 큽니다. 다니던 학교 앞을 걷다 보면 아득한 학창시절이 떠오르고, ‘내 동네’라는 마음이 듭니다. 뜨거운 은혜를 받았던 수양관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은혜가 주어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낯선 타지인으로 머물던 제자들에게 갈릴리가 얼마나 큰 위로의 장소였겠습니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의 기세가 등등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은 순식간에 예수님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돌아온 그들이 그곳에서 다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처음으로 부르셨던 곳에서 주님을 다시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감격이었을까요? 주님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괴롭고 어려울 때, 우리는 갈릴리를 찾아야 합니다. 거기서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그리고 새로운 사명으로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갈릴리 이스라엘 해돋이 자연 유대인 호수
▲갈리리 호수의 일출. ⓒ픽사베이

IV. 갈릴리는 용서와 회복의 장소

물은 많은 것을 상징하지만, 종종 생명력과 회복을 상징합니다. 아니 실제로 치유의 효과를 가진 물이 있지 않습니까? 로마 시대부터 온천이 있는 도시는 특별한 이름을 가졌고 사람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영국의 ‘바쓰’라는 도시가 바로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온천 도시입니다. 지금도 유럽에는 많은 온천 도시들이 ‘바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바드 볼, 바드 가슈타인 등. 그렇습니다. 갈릴리는 치유하는 곳입니다. 특별히 상하고 괴로운 자들을 치유하고 능력으로 새롭게 하는 곳입니다.

갈릴리는 복음서에서 계속 등장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특별히 예수님이 디베랴 호숫가, 즉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를 만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신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시고 더 귀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갈릴리는 배반한 제자를 다시 만나시고 용서하시고 격려하시고 먹이시는 곳입니다.

학생끼리 시비가 붙으면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옥상은 심판과 정죄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옥상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갈릴리로 부르신 것은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배반하고, 상처 입었습니까? 다시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마치 상처 입은 사슴이 시냇가를 찾아가듯이 우리는 상처를 입을 때마다, 주님 앞에 부족한 모습을 가질 때마다 갈릴리로 가서, 거기서 말씀을 전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V. 갈릴리는 파송의 자리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근원지를 공유하는 갈릴리와 사해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한 바다는 살아있는 바다이고, 다른 한 바다는 죽은 바다라고 말합니다. 갈릴리는 받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바다가 되었고, 사해는 오직 받기만 하기 때문에 죽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받기만 하는 사람은 오래지나지 않아서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은 참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제자들을 땅끝으로 파송하십니다. 만약 첫사랑만 중요했다면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았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첫사랑을 기억하는 제자들에게 이제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함을, 그 사랑이 성장해야 함을 알려주셨습니다.

어느 날 어린 아들과 자는데, 아들이 “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 난 아빠가 너무 좋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참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서른 살 먹은 아들이 그렇게 말하며 자고 있는 아빠를 찾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사랑은 성장해야 합니다. 오래 된 부부가 젊은 날에 뜨겁게 사랑했던 모습에서 나아가 더 용납하고, 품어주고, 기다려주는 사랑의 모습으로 나아가듯이 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갈릴리는 어디일까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이스라엘에 있는 갈릴리 땅을 밟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갈릴리를 다른 모습으로 남겨주셨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을 만나는 갈릴리라면, 이 곳은 첫 사랑이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 곳에서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첫사랑이 없는 교회는 금세 불평하는 사람들, 사랑이 식은 사람들로 가득해지게 됩니다.

베테랑이 많은 교회가 아닌,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많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회복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회복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의 물에 잠길 때, 우리는 모두 상한 사람에서 건강한 사람들로 변화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파송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갈릴리와 같은 교회는 가두는 곳이 아니라, 와서 은혜를 받아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항상 돌아와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은혜를 들고 나가며, 또다시 돌아와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먼저 가신 갈릴리로 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곳에서 처음 여러분을 부르신 예수님을 만나 다시 일어나며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로 힘 있게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김하나 목사(명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