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인
▲김도인 목사는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해 설교하셨다면, 설교자도 이미지 글의 최고인 비유를 사용해 설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투 DB
“3년 동안 많은 노력을 들여 쓴 책입니다. 정말 필요한 책이라는 각오로 작정하고 썼습니다. 다른 일들을 많이 제쳐두고, 이번 책에 집중했습니다. 이미지와 영상의 시대라고 하는데, 기독교인들을 위한 ‘이미지 글쓰기’에 대한 책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이미지는 주로 소설가들의 영역이다 보니 일반인들의 접근도 쉽지 않습니다.”

아트설교연구원 원장으로서 목회자들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김도인 목사가 <설교는 글쓰기다 3>을 펴냈다. 부제 ‘들리는 설교에서 보이는 설교로’처럼 영상과 이미지처럼 눈으로 보는 듯 설교를 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설교 글쓰기’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설교는 글쓰기다>, <나만의 설교를 만드는 글쓰기 특강> 등 김도인 목사는 이전에 설교 글쓰기 관련 도서 두 권을 내놓았고, 이번이 세 번째 시리즈다. 그는 3권의 ‘설교 글쓰기’ 도서를 더 집필해, 총 6권의 시리즈를 갖출 예정이다.

김도인 목사는 이 외에도 <목회트렌드 2024>, <목회트렌드 2023>, <다음세대 셧다운>, <격차의 시대, 격이 있는 교회와 목회(이상 공저)>, <책 쓰기! 나도 할 수 있다>, <인문학, 설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설교자,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언택트와 교회>, <독서꽝에서 독서광으로>, <설교자와 묵상>, <설교는 인문학이다>, <설교를 통해 배운다> 설교와 글쓰기 관련 도서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다음은 김도인 목사와의 일문일답.

설교자, 글쓰기 배우고 전념해야
감성적 이미지 지배해 사는 시대
사진 1천 장보다 비유 하나 효과
예수님과 찰스 스펄전이 좋은 예

-책 표지의 ‘들리는 설교에서 보이는 설교로’,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책 부제가 ‘들리는 설교에서 보이는 설교로’입니다. 제목보다 부제가 더 인상적이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설교는 글쓰기다>를 시리즈로 여섯 권까지 내고 싶어 제목을 일관되게 했습니다.

목회자들이 설교에서 아직 논리를 갖춘 논증적 설교도 못하고 있는데, ‘이미지 설교’는 언감생심이겠죠. 이를 어떻게 타개하고 설교자들의 영역으로 품을 것인가를 탐구했습니다. 아무리 신학을 열심히 하고 대가가 되어도, 글로 풀어내지 못하면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써먹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하지만, 청중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설교가 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글쓰기를 배우고 글쓰기에 전념해야 합니다. 신학보다 글쓰기를 먼저 배우는 것이 좋겠지만, 이미 신학을 했다면 지금이라도 글쓰기를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집필에 있어 2가지가 책을 쓰는 데 결정적 계기와 도움이 됐습니다. 하나는 ‘이마골로기(imagologie)’라는 용어입니다. 이미지(image)와 이념(ideology)의 합성어로,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에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더 이상 논리적인 체계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이미지에 지배를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지식생태학자’라는 유영만 한양대 교수가 책에서 한 이야기. 하나의 비유가 1천 장의 사진보다 효과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충격적이었어요. <폼 잡지 말고 플랫폼 잡아라!>는 책에서 그는 ‘설교자가 설명으로 상대를 이해시키려 노력할수록, 상대는 감정으로 들어가는 문을 굳게 닫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한다’고도 했습니다.

우리가 설교할 때 영상이나 사진을 보여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진 1천 장보다 예수님의 비유가 더 효과적이라는 말입니다. 샘 혼(Sam Horn)이라는 작가는 <사람들은 왜 그 한마디에 꽂히는가>에서 예수님의 비유가 가장 좋은 글이자 청중들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사진 1천 장보다 효과적이라면, 비유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요즘에는 사역도 중요하지만, 글의 가치가 사역만큼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여전히 글을 천시하고 있어요. 교계에서도 기득권을 가진 분들은 글에 관심이 없습니다. 설교는 말만 잘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글이 홀대받다 보니, 교수나 작가들이 기독교 도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미지 글쓰기’는 갖춰야 할 영역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미지 글쓰기를 통해 보여주듯 풀어내지 못한다면, 성도들은 갈수록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잘 아시는 ‘설교의 황태자’ 찰스 스펄전이 바로 이미지 글쓰기의 대가였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죠. 그분들의 설교가 왜 위대한지 깨달으려면, 이미지 글쓰기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설교는 글쓰기다 3
▲설교는 글쓰기다 3 김도인 | 글과길 | 402쪽 | 20,000원
-그렇다면, ‘이미지 설교’란 무엇인가요.

“지금을 ‘이미지 시대’라고 합니다. 이미지로 글을 쓴다는 것은, 말하기가 아니라 보여주기, ‘묘사’하는 것입니다. 또 글맛을 살려주는 ‘은유’, 그리고 예수님께서 즐겨 쓰셨던 ‘비유’를 사용하는 일입니다. 이런 글 쓰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이미지 시대가 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설명하는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들리는 설교를 해야 합니다. 설명하는 설교는 논증성과 논리가 있으면 가능한데, 이미지 글쓰기는 더 고도의 작업이 수반됩니다. 글쓰기 고수가 돼야 합니다. 이제는 글쓰기의 고수가 설교를 잘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나 글쓰기에 관심 있는 청중들의 경우, 설교도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듣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 텍스트가 세상의 여러 글들에 밀려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시대를 관통하지 못하는 데다, 쫓아가지도 못한 채 멀찍이 바라만 보고 있어요. 닭 쫓던 개 쳐다보는 형국입니다.

이번 책을 쓰면서, 기독교 도서는 워렌 위어스비(Warren W. Wiersbe)의 <상상이 담긴 설교>와 김진규 백석대 교수님의 <히브리 시인에게 설교를 배우다> 등 2권 정도를 참고했습니다. 이 정도로 기독교는 아직 이미지 설교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책을 쓰면서 한국교회에 대한 전망이 더 어두워졌습니다. 누군가 쓸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아무도 쓰지 않아 쓰게 됐습니다. 예수님은 이미지의 대가이셨는데, 우리는 왜 이것을 본받으려 하지 않을까요? 글의 측면에서 봤을 때 안타까운 일입니다.”

설명하는 설교에서 들리는 설교로
어떻게? 묘사·은유·비유로 펼쳐라
생쌀 대신 밥 하듯 설교 풀어써야
성경만 알면 된다? 성경도 글이다

-이미지 글쓰기 책에서 주안점을 두신 부분은.

“말씀드린 대로 이런 책이 거의 없었습니다. 원리(what)는 알려주지만, 어떻게(how)를 알려주는 책이 거의 없었어요. 덕분에 2년 동안 이 일에 집중하면서, 글쓰기 일반을 많이 배우게 됐습니다.

특히 일반적 용어와 사례를 기독교와 설교자들에게 맞도록 ‘번역’하는 부분이 쉽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언어로 바꾸는 데만 1년이 걸렸습니다. 묘사·은유·비유에 대해 배우면서 책을 쓰고 나니, 소설가들이 다시 보입니다. 그런 문학 작품들이 이미지 글쓰기로 된 것들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읽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 배운다>를 쓰면서 옥한흠·유기성·이찬수 목사님 등의 설교를 ‘들리는 설교’라고 분석한 이유는 논증 중심으로 풀어내셨기 때문이었는데,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좀 더 고차원적인 ‘이미지 글쓰기’를 해 나갈 때입니다.

‘이미지 설교’에 대해 400쪽 가까이 썼다는 것 자체에 저 자신이 보람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좀 더 솎아내지 않은 이유는,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만 해도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분량이 넘친다고 느껴진 부분도 굳이 빼지 않았습니다. 기독교계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논증 설교도 결코 쉽지 않은데, 이미지 설교를 권유하려니 간극이 컸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며 암담한 느낌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희망적입니다. 아트설교연구원 회원들과 실제 이미지 설교문을 작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공부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좀 더 쓰임받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도인
▲김도인 목사의 과거 저서들. 그는 책에서 “이찬수 목사는 삶과 설교가 같고, 많은 반전과 대비를 통해 설교를 맛깔스럽게 해서 6성 호텔 주방장 같은 맛을 낸다”며 “유기성 목사는 예수님을 멋지게 드러내고, 청중을 예수님과 종일 동행하도록 이끈다. 설교에서 엇박자가 많다. 전혀 안 맞는 설교 같은데, 결국엔 딱 들어맞도록 이끄는 힘이 강하다”고 했다. ⓒ크투 DB
-목회자들의 설교문 또는 설교 글쓰기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설교에 글이 따로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성경만 해석해서 전달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에 제가 배웠던 신학이 그랬고, 교수님들도 성경만 잘 풀어서 전달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생쌀을 먹으면 맛있나요? 맛있게 밥을 해서 줘야죠. 배추도 그냥 먹으면 맛있나요? 김치를 담가서 줘야 맛있게 먹겠죠. 최근에도 어떤 목사님들은 ‘설교문을 왜 꼭 써야 하냐’고 되묻습니다. 그럴 때면 맥이 빠지기도 합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책쓰기 글쓰기 열풍이 불 정도로 많은 분들이 배우고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만 알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용만큼 형식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글은 형식이죠.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면, 교회 건물은 왜 짓습니까? 성도들과 하나님이면 충분하죠. 교회가 이런 부분에서 관심이 없고 무지합니다.

하버드대 학생들의 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글을 잘 쓰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계적인 리더를 꿈꿉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배웁니다. 학급에서도 1-2등 하는 친구들은 글쓰기의 중요성을 알지만, 40-50등 하는 친구들은 모릅니다.

우리도 그저 목회하다 끝내려는 게 아니잖아요. 교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려는 꿈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로만 바꿀 수 있을까요? 글의 힘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성경도 글로 돼 있습니다.

신학교에도 ‘설교 작성법’은 있지만, ‘글쓰기 강좌’는 없습니다. 요즘 설교 표절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 대부분이 ‘짜깁기 설교’를 해서 그렇습니다. 그것이 일상화돼 있어요. 글을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짜깁기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표절도 결국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최소한 담임목사라면 ‘나만의 설교’를 해야죠.

설교자들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문제는 ‘내 글’로 설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과 여자 문제는 극히 소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교는 날마다 해야 하는 것이죠. ‘내 글’로 설교하지 않아도 죄의식이 없고 무감각하며 당연시합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거룩과 정의와 양심을 말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