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여리고성 가나안 기적 예수 맹인 시각장애인
▲그리스 출신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예수께서 눈 먼 사람을 고치시다(Christ Healing the Blind, 1570년대)’.
본문: 요한복음 9:35-38

주님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주님과 만나게 됩니다.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그 사람을 만나 주셨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회당에서 쫓겨났던 때입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하고도 쫓겨났습니다. 진실이 묵살당한 그때, 주님께서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 믿고 싶다
인자가 누군지 알게 되면,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35-36절)”.

주님은 맹인이었던 사람을 만나 “인자를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특별한 칭호입니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인자’는 하나님 아들, 메시아로 오래 전부터 통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인자를 아느냐고 곧바로 물으신 것은 그 맹인이었던 사람의 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자기에게 말을 건 사람이 궁금했습니다. 자기를 고쳐준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직 자기를 고쳐준 분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분을 본다면, 알아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가 누구시오니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에게서 강한 열망이 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와 닿는 영적인 신호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그분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표시입니다. 다만 자신을 고쳐주신 그분이 누구인지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확실하게 확인하려는 차원일 뿐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의 태도는 주님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하신 결과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믿고 싶다는 이유입니다.

2. 지금 만나고 있다
네가 지금 만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37절)”.

주님은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너도 그를 보았거니와 너와 말하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니라”. 주님의 답변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셨던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때도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요 4:26)”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마음에 받아들일 준비를 시켜놓고 나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의 방법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억지가 없습니다. 전혀 강압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시각과 청각 등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마음에 전달하는 호소입니다. 주님의 이 방법은 전도의 좋은 표본으로 인정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주님의 방법은 볼 수 있도록 하는 자체입니다. 이렇게 메시아의 임재를 체험하도록 만든 경우입니다. 주님을 보도록 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영접하십니다. 이제 맹인이었던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눈 먼 것을 고치신 분을 직접 보면서 불쌍히 여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쌍히 여김이란 긍휼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의 장면에서 우리는 어려운 때에 직접 만나주시는 주님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어려운 때에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주님을 지금 만나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3. 지금 믿고 있다
지금 당장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 지라(38절)”.

맹인이었던 사람이 믿음을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그 고백은 더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현재적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절반의 믿음이 완전한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했을 것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을 고쳐주었던 분을 믿음의 대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절을 했습니다. 경배로 응답한 태도를 취합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절하면서 숭배했습니다. 주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했습니다.

경배하는 태도는 분명하게 인식한 후에 일어난 행동 변화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단한 권력을 가진 바리새인 앞에서도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 태도를 보면, 의지가 분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그는 권위에 의해 묵살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배움은 적지만, 논쟁의 미로에 빠지기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분명하게 의식한 후 자신에게 확실한 진리의 기초를 세우는 사람입니다. 그 명철한 사람이 주님에게 경배했습니다.

절하는 경배 행위는 하나님 아들에 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물론 그가 경배에 포함된 모든 것을 모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한 영광의 속성에 대해선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예배 대상이 되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지금 믿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결정되는 때입니다. 사람의 존재는 결정적인 때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가는 인생 길에 주님을 확실하게 믿어서 영생의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지금도 주님을 만나고 있음을 깨닫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지금도 주님을 변함없이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온전히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