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
▲영화 <건국전쟁> 중 일부. 이승만 대통령의 1954년 뉴욕 카퍼레이드 장면으로, 해외 국가원수가 맨해튼 ‘영웅의 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크투 DB.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잠언 28:5)”.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은 듣지 말지니라(잠언 19:27)”.

공의와 정의를 깨닫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을 알고자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잠언의 교훈은 대체로 좋은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이 구절에서는 나쁜 의미를 지닌 교훈을 가르쳐 언급되었습니다.

그러므로 19장 27절 말씀은, “그렇지 않으면 지식의 말씀에서 멀어질 것이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교훈은 부정적 의미로 ‘거짓 스승의 교훈’으로도 볼 수 있고, 긍정적 의미로 ‘진리의 교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이 구절은 ‘거짓된 교훈을 듣지 말라’는 뜻이고, 후자의 경우 ‘교훈을 듣고 또 범죄 하려거든 아예 교훈을 듣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민족 대명절인 설날이 지나갔습니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그러니까 섣달 그믐 아이들의 세시(歲時)풍속 가운데 ‘담치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풍물을 치면(애기풍장), 어른들은 쌀이나 잡곡을 내주었습니다. 이를 자루에 모아 밤중에 노인들만 계신 집, 환자가 있거나 쌀이 없어 떡도 못하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담 너머로 던져주는 풍습입니다.

누가 던져 넣었는지 아무도 몰랐고, 알고도 모른 체했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눠 가지려는, 그러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하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아이 때부터 어려운 이웃을 더불어 살펴보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훌륭하고 지혜로운지, 또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외국 어떤 나라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우리 민족의 따뜻한 마음의 정신은 귀한 우리 문화입니다.

얼마 전 2월 14일을 발렌타인 데이로만 아시는데, 장삿꾼들의 상업적 행사에 물들어 모두 무슨 날인지 모르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날은 우리 민족의 영웅이고 자랑인 안중근 의사께서 일본 사법당국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날입니다. 피 끓는 31세 젊은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대한민국 영웅이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인 2월 14일은 우리가 제대로 알고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틀 뒤인 2월 16일은 일제시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 시인이 하늘로 떠나신 날입니다. 짧은 생애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작품들로 한국 문학사에 크게 기여하신 윤동주 시인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남기고, 독립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27세의 아까운 나이로 일본 제국 후쿠오카 현 후쿠오카 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 투성이입니다.

초콜릿을 사주고 먹는 것도 좋지만, 감옥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간 애국지사들을 생각하면서 그날은 오히려 주먹밥이나 누룽지, 죽을 먹는 날로 정하면 어떨까요?

발렌타인 데이는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3월 14일 화이트 데이는 1978년부터 시작된 그야말로 상업적 행사입니다. 흰색 사탕이나 초콜릿 등을 선물하며, 일본에서 시작해 아시아 여러 나라로 번져 나갔습니다. 3월 14일의 1개월 후인 4월 14일은 ‘솔로’들이 짜장면을 먹는 ‘블랙 데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꼭 외국에서 유행하는 상술을 따라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 문화에 걸맞는 좋은 아이디어로 젊은이들이 나라와 민족과 이웃을 기릴 수 있는 행사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섣달 그믐 세시풍속 같은 아름다운 문화를 재현한다든지, 우리 민족이 즐겨 먹던 고유의 먹거리들을 잘 활용해 명절이나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같은 날,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2월 24일을 ‘이웃 사랑 데이’로 정하면 어떨까요? 2는 ‘이웃’, 4는 ‘사랑’의 준말이 됩니다. 이와 함께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을 발렌타인데이로 변질시키는 일은 그만 하고, 그날 조국을 위해 희생한 애국지사들을 위한 행사를 하면 어떨까요?

안중근 의사의 옥중 명언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과 트로트에 미치다시피 하며, 좌파들과 주사파들의 고질적인 내로남불을 생각할 때, 안중근 의사의 가장 돋보이는 명언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입니다.

‘수불석권(手不釋卷)’이라는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손에서 책을 놓지 말라”는 뜻으로, 읽을 책들이 귀한 안 의사의 시대보다 넘쳐나는 책의 홍수 시대를 맞아 책 읽는 문화가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즘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방영돼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습니다. 2024년 현재까지 ‘이승만’이란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시됐고,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한 인간에게 가한 잔인한 조리돌림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미제 앞잡이들과 친일파 세력들이 주도했다는 뒤틀린 역사관은, 곧바로 북한이 민족 정통성을 계승한 정치집단이라는 망상과 거짓 이데올로기가 퍼지는 토양이었습니다. 그 바탕 위에 ‘이승만 죽이기’의 역사가 반복됐는데, 이승만을 죽이지 않고서는 자신들이 존립할 수 없음을 그들 스스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어느 중학생이 마이크를 잡더니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승만에 대해 안 좋게 보고 있었거든요, 학교에서도 교육을 그렇게 하고 이승만에 대해 ’개만도 못한 X’이라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렇게 학교에서 배웠는데, 이 영화를 보니 이승만 대통령이란 분께서 초대 대통령이시고 우리를 위해 여러 일을 하시고, 여기 있는 분들이 일상을 사는 것도 다 이승만이란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돼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는 분명 이념으로 얼룩진 전교조 교사들이 순수한 아이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그들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교육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역사가 침몰되는 이 시점에, 그래도 이런 영화가 상영되면서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 퍼지게 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종교계 지도자들과 법률가, 정치가, 교사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쉬쉬하고 눈치보기에만 급급했으니, 윤동주 시인과 안중근 의사, 그리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무덤에서 얼마나 한탄하시겠습니까? 일제시대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6.25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많은 희생자들과 1천 만 이산가족들의 억울함에 대해선 어찌 말이 없는지요?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영화 <건국전쟁>은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전 국민이 관람해야 합니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이를 추진해, 다음 세대들에게 진실을 교육해 정의롭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문화를 계승해야 하겠습니다.

올해 2월 14일은 더욱 특별합니다. 사순절이 시작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은 회개·금식·기도·자선·순종의 시기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해마다 사순절 첫 주일을 기억하듯, 예수님도 친히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광야란 노예 상태에 다시는 빠지지 않겠다는 개인적 결심을 통해 자유가 성숙해질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파라오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우리 스스로 세운 우상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는커녕 되레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들어가시기 전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그곳에서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셨지만, 당당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광야는 바로 우리가 겪는 세상과 같습니다. 우리는 거부하면서도 알고 있습니다.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도 조금씩 받아들이며 순종하려 노력합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일수록 더 자주 광야로, 필요하다면 더 혹독한 광야 한가운데로 내보내십니다.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어렵고 힘든 숙제가 바로 주님께서 광야로 내보내신, 아니 광야의 삶 속에 놓이게 하신 이유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광야는 시험을 받는 자리이며, 하나님과의 만남인 동시에 성취의 자리입니다. 그곳에서는 인간적 욕구가 채워질 수 없습니다. 황폐한 현실은 생명 유지를 위한 처절한 싸움을 하게 만들고, 점점 신뢰는 약화되고 궁극적 구원 가능성에 매달리게 합니다.

막연함이 아닌 현존 그대로의 광야에 하루 이틀이라도 머물러 본 적 있습니까?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광야의 가장 깊숙한 모습을 닮은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마지막 숨을 내뱉듯 겨우 숨 쉬며 살아가는 현장을 목격한다면, 나의 광야는 ‘관광지’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윤동주 시인, 안중근 의사,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광야의 길은, 현존의 우리 삶과 동떨어진 처참한 삶 자체였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살려보겠다는 강한 의지와 독립의 목적으로, 그들의 광야는 아주 혹독한 시련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아, 다시금 이 땅을 공산주의와 주사파·좌파들이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을 기억하는 하나님의 귀한 사명자들이 되어, 정의롭고 지혜롭게 자녀를 길러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