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학과 지원자들 단체 모의시험
예배 때문에 치지 않겠다는 학생들
믿음의 눈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워
하나님부터 바라보는 사람 찾으셔

청소년 회복 서울광장 어웨이크닝
▲지난해 여름 서울광장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 모습(위 사진은 본 칼럼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CTS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안경을 썼다. 초등학교 때부터 키가 꽤 큰 편이어서 항상 뒤쪽에 앉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칠판에 선생님이 쓴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고, 안과에 가서 시력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시력이 상당히 좋지 않았고, 그때부터 처음으로 안경을 쓰고 무려 약 20년 가까이 안경을 썼다.

필자는 30대 초반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바로 라식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라식 수술을 받은 후 세상을 다시 바라보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전까지 안경이 없으면 세상이 다 흐리게 보였고, 바로 앞에 있는 글자 외에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수술을 받고 다시 눈을 떠보니, 흐릿해 보이던 세상이 뚜렷하게 보였다. 필자는 이 모든 상황들이 너무 신기했고 행복했다.

하지만 필자는 라식 수술을 한 뒤에도 계속 안경을 쓰고 다녔다. 시력이 좋아졌음에도 안경을 계속 썼던 이유는 안경을 벗은 필자의 얼굴이 너무 못생겨 보였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안경을 끼다가 하루아침에 안경을 벗으려니, 필자의 얼굴이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안경을 벗은 얼굴이 너무 못생겨 보였다.

그래서 수술을 했음에도 한동안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는 안경을 다시 벗어버리고, 이후부터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안경을 쓰지 않고 다니는 게 너무 편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안경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시력이 떨어지면 앞을 뚜렷하게 볼 수 없듯, 우리의 영적 시력도 낮아지면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 쉽게 말해서 믿음의 눈으로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분별해야 한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 마음과 뜻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의 옳고 그름을 바르게 분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의 눈의 시력이 좋지 못하면 하나님 마음도, 하나님 뜻도 알 수 없다. 믿음의 눈이 시력이 좋지 못하면 세상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해서 죄악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여러분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대하고 있는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분별하고 있는가?

“그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벽돌을 만들어 단단하게 굽자.’ 그러면서 그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습니다(창 11:4).

이 말씀에는 믿음의 눈을 닫아버린 사람들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믿음의 눈을 닫아버리고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로 노아의 후손들이다.

노아의 후손들은 시날 평지에서 대단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바로 벽돌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노아의 후손들은 시날 평지에서 벽돌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그곳에서 한 가지 엄청난 계획을 세웠다.

바로 성을 세워 성의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도록 쌓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것일까? 이유가 있었다. 바로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하나님 이름을 높이는 것보다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고 싶었다.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바라보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 믿음의 눈을 닫아버리고 자신들이 높아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들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교만해진 그들을 보시고 그들의 언어를 뒤섞으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서로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게 됐다. 서로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하니까 그들은 더 이상 바벨탑을 쌓을 수 없었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모든 계획은 처절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현재 여러분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있느냐는 것이다.

다함께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리고 하나님을 붙드는 인생이 되자. 노아의 후손들처럼 믿음의 눈을 스스로 닫아서 하나님을 외면하지 말자. 그런 자들은 결국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고3 여학생 두 명이 필자에게 할 말이 있다며 찾아왔다. 그러고는 큰 결심을 했다고 했다. 우선 고3 여학생 두 명은 체육학과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1년에 딱 한 번 체육학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한곳에 다 모여 모의시험을 친다고 했다. 입시시험 전에 전국 수험생들이 다 모여 모의 실기시험을 한 번 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의시험이 상당히 중요했다. 먼저 입시시험을 치러 가기 전 모의시험을 치르면서 내가 어떤 운동 과목이 강하고 약한지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모의시험을 치면서 현재 내 실기 점수가 전국에서 어느 정도 되는지 아주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입시시험을 치기 전 똑같은 모의시험을 쳐 봄으로써, 진짜 시험을 한 번 쳐보는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두 여학생이 모의시험을 치러 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두 여학생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모의시험을 치는 시간이 주일이라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

모의시험을 치면 대구에서 서울까지 시험을 치러 새벽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그럼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의시험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여러분은 두 여학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진로를 생각하면, 시험을 치러 가는 게 당연히 맞다. 그런데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니까, 시험을 치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두 여학생은 모의시험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여학생이 교회에 가야 해서 모의시험을 치러 못 간다고 하니, 학원 선생님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두 여학생에게 교회 가면 밥 먹여주냐면서, 네 인생을 하나님이 어떻게 책임져 주겠냐고 정신 차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두 여학생의 결정이 옳은 결정일까, 아니면 학원 선생님의 말이 맞는 말일까? 당연히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두 여학생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 여학생의 고백을 멋지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필자는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에 귀하게 준비되며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한다.

김맥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는 김맥 목사.
김맥 목사

초량교회 교구담당 및 고등부 담당 주일학교 디렉터
청소년 매일성경 집필자

저서 <얘들아! 하나님 감성이 뭔지 아니?>
<하나님! 저도 쓰임 받을 수 있나요?>
<교사는 공감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