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아름다움’ 포함 유무 달려
서로 스텝 밟으며 움직이고 춤춰
아무리 팍팍해도, 생명 주신 그분
생각하면 살 만한 가치·보람 충분

칙칙한 배경 화려한 색 어울릴까
싶지만, 그만큼 메시지가 강렬해

예수님과 사랑이 가장 가치 있어
실재와 만남, 진리의 구속이 특징

김동영
▲김동영, 네잎클로버의 노래(A song of Four leaves Clover), 140x140cm, Mixed Media, 2011.
미술계의 중진 김동영이 작품의 모티브로 삼는 것은 네잎클로버이다. 이곳저곳에 둥지를 튼 크고 작은 클로버들은 질화로같이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추억의 이름으로 다가온다. 네잎클로버 이미지가 어릴 적 동네 인근의 산과 들을 앞마당처럼 여기며 뛰놀았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김동영의 회화는 자연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연의 재현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만일 자연의 재현 자체를 겨냥했다면 ‘사실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디테일에 더 신경을 기울였겠지만, 그의 작품은 오히려 네잎클로버의 이미지를 암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는 상징성을 띠면서 여러 색채와 질료와의 어울림 속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조형적 묘미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은 ‘경쾌한 필선’과 ‘담백한 질료감’이다. ‘경쾌한 필선’은 화면에 운동감을 주면서 그림을 흥겹고 경쾌하게 만든다. 반면 ‘담백한 질료감’은 화면을 뚝배기처럼 우툴두툴하게 보이게도 하고 솜이불처럼 포근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게도 한다. 특히 근래에는 돌가루와 콜라주를 사용하여 잔잔한 율조를 지닌 공간을 구축해 내고 있다.

김동영이 작품의 모티브로 삼는 네잎클로버는 행운이라는 뜻의 꽃말에서 알 수 있듯,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품다’는 이사야서 46장 말씀, 즉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4절)”는 구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주님이 자신을 받아주신 감정을 캔버스에 펼쳐놓고 있는 셈이다.

작가가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고수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작가는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삶을 ‘축복의 연속’이라고 여기며, 행운은 바로 자신의 삶 속에 숨쉬고 있다고 여긴다. 즉 삶 자체가 하나님의 부르심 및 축복이요, 특히 그 분의 자녀가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김동영
▲김동영, Embracing- 품다, 140x492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영국 시인 토마스 트래험(Thomas Traheme)이 그랬듯, 김동영은 세상을 ‘무한한 아름다움을 비추는 거울’, ‘빛과 평화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어찌 인생에 황홀한 무지개빛만 있으랴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세상을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보며 어떻게 ‘나날의 기적’이 펼쳐지고 있는지 주목한다.

그와 같은 측면은 단색조의 바탕에 영롱한 핑크색이 짙은 향기를 퍼트리거나, 아주 작은 씨앗들이 머물러 있는 광경에서 찾아진다. 주위를 보면 캄캄한 밤이거나 황량한 들판이어서 도저히 꽃향기가 퍼지거나 씨앗들이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한 핑크빛과 씨앗들이 있기에 공간은 한층 밝아질 뿐 아니라 희망을 기약할 수 있다. 이것은 작가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 우리 존재 자체가 바뀌고 새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표상하는 것이자, 그 분의 구속을 통해 만물이 새로워졌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믿음을 지닌 예술가가 그렇지 않은 예술가와 갖는 차이점이 있다면, ‘구속의 아름다움’을 포함시키는가 아닌가 하는 유무에 달려 있다. 예수님으로 인해 거듭남을 체험한 경우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반면, 믿음이 없이는 그런 능력을 발견하기 어렵다.

김동영
▲김동영, Embracing- 품다, 53x53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구속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그 분을 갈망하며 그 분에게 귀를 기울인다. 캔 가이어(Ken Gire)의 말을 빌면 “서로 스텝을 밟으며 움직이면서 춤을 춘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뿌리내린 김동영의 작품 세계는 바로 이 점을 표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세상이 아무리 팍팍할지라도, 생명을 주신 것을 상기한다면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고 보람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언뜻 보기에 칙칙한 배경 속에 화려한 색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만큼 강렬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아브라함 헤셀(Abraham Heschel)의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에는 어떤 청각장애인이 길을 가던 중 음악가의 연주에 사로잡혀 사람들이 황홀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그들은 미친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스도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길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예수님과 사랑에 빠진다면, 지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며, 그에 비할 만한 가치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김동영이 왜 그처럼 네잎클로버에 몰두하는지, 그가 기용하는 척박한 땅에 떨어진 꽃잎과 씨앗이 갖는 의미도 이와 연결해서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가 낮에 밝은 것은 태양이 비추고 있음 때문이요 밤에 환한 것은 달이 비추고 있기 때문이듯, 우리의 기쁨도-만일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것이라면-진리의 접목 또는 조명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실재와의 만남과 진리의 구속이 김동영의 회화를 한층 뛰어나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성록 명예교수(안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