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강력히
기도, 보상받기 위해 하는 것 아냐
특별한 상황 아니면 천천히 돌아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기도하자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칼럼 속 등장하는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중 한 장면. ⓒ공식 스틸컷
#응답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돈다

잠깐! 아침에 눈을 뜨고 기도부터 하자고 목소리를 높인 지가 1주일 정도 지났다. 그래서 오늘 아침 당신이 눈을 뜨자마자 한 일은 무엇인가? 기도인가? 아니면 여전히 핸드폰인가?

신앙의 힘은 실천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이 자라는 순간은 설교를 듣고 마음에 감동이 생겼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이후다.

받은 은혜를 삶에서 한 가지라도 실천하려 할 때, 그때가 바로 성장의 순간이다. 실천하지 않으면 잠시 마음에 울림은 있었을지는 모르나, 그게 다다. 삶의 변화는 없다.

언젠가 꿈의교회 김학중 목사의 출애굽기 20장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CBS 꿈의 강단 435회). 김학중 목사는 말했다. “좋은 신앙의 정의는 아는 만큼, 믿는 만큼 그렇게 실천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실천하는 신앙이 좋은 신앙이라는 뜻이다.

확실히 신앙은 실천할 때 힘이 생긴다. 필자 역시 그렇게 고백한 후, 되도록 핸드폰을 멀리 두고 잠을 청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무의식적으로라도 핸드폰을 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침부터 ‘아차!’ 하는 일이 조금 줄었다. 눈을 뜨면 바로 기도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매일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기도의 무게를 쌓고 있다. 당신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

왜 우리는 눈을 뜨면 바로 기도부터 하지 못하고 핸드폰부터 찾을까?
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을까?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보상’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보상이 아니다. 보상이 목적인 기도는 잘못된 기도다. 다만 보상의 관점에서 기도를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보상과 응답은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은 보상(報償)을 이렇게 정의한다. ‘행위를 촉진하거나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동물에게 주는 물질이나 칭찬’. 아이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보상에 있다. 시험을 잘 치면 부모님이 핸드폰이나 선물로 노력을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일단 핸드폰의 보상은 빠르다. 눈을 들어 원하는 내용을 찾으려는 수고를 조금만 하면, 핸드폰은 즉각 즉각 보상을 해준다. 바로 결과를 보여주고, 때론 그 이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원래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수고 대비 보상이 확실하다. 그러다 보니 자꾸 손이 가는 것이다.

반면 기도의 보상은 늦다. 대부분의 경우 느려도 한참 느리다. 아침에 기도를 한다 해서 갑자기 어떤 결과가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혹은 하지 않는다 해서 갑자기 어떤 일이 잘못 되는 것도 아니다. 상황적으로만 보면 당장 해도 변화가 없고, 안 해도 변화가 없다. 그러니 우리의 보상심리는 기도가 아닌 핸드폰을 선택하게 만든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 기도에서도 역시 보상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고 있다. 응답의 수레바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다만 응답의 수레바퀴는 너무 거대해서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모든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외치는 것이 있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예로 들면 이렇다. 그는 말한다. “투자든 일이든 오랜 시간 꾸준히 해온 사람들에게 보상이 돌아간다. 처음에는 보상이 오는지 알기 힘들 정도로 작고 천천히 오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보상의 스피드와 양이 점점 커진다는 것이다. 이 시기가 오기까지 꾸준히 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부자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무슨 뜻인가? 보상의 수레바퀴는 처음에 천천히 돈다. 그러나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기도는 무엇인가를 보상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속성이 비슷하다. 기도 역시 응답의 수레바퀴가 천천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아주 천천히 돌아간다.

#천천히 시작, 그러나 강력하게 돈다

혹시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편을 보았는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마지막쯤 윌 터너와 총독이 수레바퀴 위에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수레바퀴가 천천히 돌아가니 싸움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내 속력이 붙자 싸움은 뒷전이다. 돌아가는 수레바퀴 위에서 살아남기도 바쁘다. 이 수레바퀴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저것이 바로 기도다.’

처음에 기도를 하면 쌓은 것이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응답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 시점이 지나면 응답의 수레바퀴는 강력하게 돌아간다.

우리가 잘 아는 조지 뮬러가 5만 번 응답을 받은 것은 응답의 수레바퀴가 강력하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임우현 목사도 역시 응답의 수레바퀴가 돌아간 결과다.

필자는 목회자다 보니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 가운데 임우현 목사의 간증이 기억에 남는다. 작년에 필자 교회 저녁 집회 강사로 왔다. 그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목사가 된 것은 ‘기도’였다고 고백했다. 잠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태어나 보니 막노동을 하는 아빠와 시장에서 술집을 하는 엄마를 만났다. 그런 그에게 꿈은 없었다. 오직 1인 1닭이나 하는 것, 돈이나 벌어서 재미있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다 선배의 강요에 못 이겨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시간이 좀 지난 어느 날, 담임목사님이 말했다. “우현아! 너 기도해야 해. 네가 기도하면 너의 집안이 구원을 받고, 너는 전 세계적으로 다니면서 사역하게 될 거야.”

임우현 목사는 그때 목사님의 말을 ‘개뻥’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기도한다 해서 그렇게 바뀔 일은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전히 술장사 중이고, 자신은 제주도도 못 가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이 그를 강제로 기도하게 했다. 무려 34년을 기도했다.

시간이 흘렀다. 지나고 보니 자신은 목사가 되었단다. 그것도 매일매일 집회 일정이 있고, 전 세계를 다니는 청소년 목회자가 됐다. 어머니는 16년 전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셨다. 현재 가족 19명 중 17명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 가정이 되었다. 기도 내용대로 모두 이루어진 것이다. 그날 임우현 목사는 이렇게 말씀을 정리했다.

“저는 믿는 것이 있어요. 기도는 해 놓고 봐야 해요. 하기 싫어도 해야 해요. 보세요. 술집 아들도 기도하니 목사가 되었잖아요. 기도한 건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에 반드시 열매를 맺어요…. 다음 세대 힘들다고 하죠? 그래도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다음 세대가 살아날 수 있어요.”

마음만 먹어서는 안 된다. 기도는 실천이 있어야 하고, 힘들어도 해 놓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다음 세대란 기도제목을 두고 응답의 수레바퀴를 함께 돌려야 한다.

다음 세대 없이는 교회의 미래도 없다. 다음 세대는 정말로 시급한 현안이다. 다음 세대의 미래는 수레바퀴의 역동성에 있고, 우리는 함께 수레바퀴를 돌려야 한다.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있을 때가 아니라, 손을 모을 때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기도하자. 응답의 수레바퀴를 돌리자. 응답의 수레바퀴가 강력히 돌 때, 나도 그리고 다음 세대에도 강력한 미래가 있다. 우리는 기도하는 기독교인이고, 기도하는 교사다.

우리 함께 기도의 수레바퀴를 돌리자. 필자도 또 다시 기도하러 가야겠다. 당신도 이제 그만 핸드폰을 놓고, 함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은 어떨까.

김정준 다음 세대
▲김정준 목사. ⓒ크투 DB
김정준 목사

울산대흥교회 교육목사
영남신학대학교 신학과·신학대학원
전남대학교 대학원 문학 석사
한남대학교 대학원 박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