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총대주교 테오필로스 3세(가운데)가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와 호삼 나움 대주교를 포함한 예루살렘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이끌고 성묘교회 인근 구시가지 거리를 지나고 있다.
▲예루살렘 총대주교 테오필로스 3세(가운데)를 비롯한 현지 교계 지도자들이 영국성공회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와 함께 성묘교회 인근 구시가지 거리를 지나고 있다. ⓒ예루살렘정교회
예루살렘의 교회 지도자들이 21일(이하 현지시각) 영국성공회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캔터베리 대주교와 함께 가자지구에 휴전을 요청하고 정교회에 대한 폭격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또한 병원과 예배 장소에 대한 안전 강화를 촉구했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에 따르면, 이번 성명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으로 인해 웰비 대주교가 최근 예루살렘을 방문한 이후 나온 것으로, 예루살렘 총대주교 및 교회 수장들이 동참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총대주교와 예루살렘 교회 수장들은 귀한 손님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와 함께 기도하며, 가자지구의 성 포르피리오스 정교회 건물에서 예고도 없이 발생한 공격을 강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19일 성 포르피리오스 그리스정교회에 대한 공습으로, 내부에 대피해 있던 18명이 사망했다. 이번 공습은 성공회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알 알리 병원에 대한 로켓 공격으로 수백 명이 사망한 지 이틀 만에 발생한 것으로, 누구의 소행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오발된 하마스 로켓이라는 증거가 있다.

교회와 병원을 모두 포함해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단체의 종사자 수는 1,000명 미만이다. 이번 공격으로 가자지구에 있는 세 곳의 기독교 단체 중 두 곳이 황폐화됐고, 가톨릭교회만 피해를 입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성공회 수장인 웰비 대주교는 이번 방문이 기독교인들, 특히 성공회 예루살렘 대주교와의 연대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웰비 대주교는 자신의 X(구 트위터)에 성명 전문을 올리고, “난 가자지구의 무고한 민간인에게 구호품이 안전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및 교회 수장들의 견해에 동참한다”고 말했다.

라틴 총대주교인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과 예루살렘정교회 총대주교인 테오필로스 3세를 포함한 예루살렘 교회 수장들과 총대주교들은 “식량, 물, 필수 의료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어 “(이 물품들은) 우리 교회가 운영하는 기관을 포함해, 가자지구에서 수십만 명의 실향민을 지원하는 구호 기관에 안전하게 전달될 것”이라며 “국제사회가 가자지구에서 병원, 학교, 예배 장소 등 피난처를 즉각적으로 보호해 달라”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모든 전쟁 당사자들에게 폭력 사태를 완화하고, 사방에서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표적으로 삼는 것을 중단하며, 국제 전쟁 규칙에 따라 작전을 수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가자지구의 세 기독교 단체인 그리스정교회, 병원, 가톨릭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지역사회에도 도움을 제공해 왔다.

교회 지도자들은 성 포르피리오스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그곳에서 자고 있던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십 명의 난민 주변으로 두 개의 교회 홀이 무너졌다고 했다. 성명에 따르면,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 18명 중 9명은 어린이였다.

교회 지도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섬기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는 평화로운 시기에만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특히 전쟁 중에도 교회처럼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쟁은 고통이 가장 극심한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CT는 “웰비 대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에게 휴전을 (촉구해 달라고) 호소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만약 그것이 예루살렘의 정교회 총대주교인 테오필로스 3세가 아닌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를 통해 발표됐다면 외교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동안 웰비 대주교는 교회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하마스 공격 당시 붙잡힌 인질들의 석방을 촉구하며 이스라엘 공격의 희생자들에 대한 긍휼을 드러냈다.

세인트 조지 대성당에서 주일 메시지를 전한 웰비 대주교는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알 알리 병원에 대한 로켓 공격에 이스라엘이 책임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또 다른 ‘피의 비방’(blood libel)을 퍼뜨리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 웰비 대주교는 “인터뷰 전 하마스 공격의 희생자 친척 및 인질들과 만남을 가졌다. ‘피의 비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비난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려고 했다. 우리가 이스라엘, 가자지구, 서안지구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대응할 때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여기 유럽에서 반유대주의의 심각한 부상에 저항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같은 역사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스라엘의 포격과 포위 속에 살고 있는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일에 대한 고통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트라우마와 슬픔을 말하고 또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침묵시키거나 무시하거나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무고한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위한 공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은 표현하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 슬퍼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이 지역 주민들의 지속적인 정의, 안보, 평화를 위해 계속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바티칸은 22일(이하 현지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통해 다양한 갈등과 평화를 향한 길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정기 삼종기도에서 교황은 가자지구의 악화되는 인도적 상황과 알 알리 병원 및 그리스정교회에 대한 공격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교황은 “인질 수용소 개방, 인도주의적 지원 계속, 인질 구출을 위해 다시 한 번 호소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