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1>의 마지막 장면, 지옥 형벌을 받아 죽었던 사람의 부활 장면을 기괴하게 표현했다. ⓒ크투 DB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계 20:10)”.

이 말씀은 천사를 경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피조물이기에, 그를 경배한다면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영’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지만, ‘예언의 영’이란 예언자로 하여금 예언할 수 있게 하는 영, 곧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이 말씀에 대해 혹자는 요한이 천사를 숭배하려 했다고 주장하는데, 너무 지나친 해석이라고 합니다. 이미 초대교회 당시부터 천사 숭배를 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골 2:18)”.

따라서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려 한 것은 천사를 숭배하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과 9절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전한 천사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단 8:17, 계 22:8-9).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천사가 자신은 경배를 받을 대상이 아니라,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에 불과하다고 밝힙니다(히 1:14).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는 말씀에서 ‘예언의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천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에 대해 증언하였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성령을 통해 예수를 증언하는 것처럼 천사들 역시 성령을 통해 예수를 증언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천사에게 경배해서는 안 되며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경배해야 함을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먼저 ‘주님의 종’은 굴종이 아니라 자발적 순종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말씀은 순종과 굴종의 차이를 잘 표현합니다. 요한이 대천사 미카엘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 놀란 나머지 천사의 발 앞에 무릎을 꿇으려 하자, 대천사가 깜짝 놀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지 마라. 나도 당신과 같은 종이다. 예수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당신의 형제들과 같은 종일 따름이다.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여라”. 당연한 말씀이지만, 신앙인들은 하나님 외에 어떤 권력 앞에서도 당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선에서 벗어나면, 분명히 아니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함부로 무릎 꿇고 굴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임을 깨우칩니다. 특히 매사에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이용하기까지 하는 우리에게 매서운 채찍으로 돌아옴을 깨우쳐 주십니다.

세상은 갈수록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이로 말미암아 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성도들의 고난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지만, 결국 악한 자들은 멸망하고 성도들은 최후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미 승리가 보장된 자로서 악한 세상 앞에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되며, 늘 주님과 동행하면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서 살아야 함을 믿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성도들 됩시다.

세상에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하필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께 늘 찬양과 영광의 감사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아내와 자주 심방오시는 목사의 성화로 어쩔 수 없이 끌려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거기다 중요 직분까지 맡아 교회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지옥을 등한시하는 신앙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가졌으나 지옥의 심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불신하며, 자신은 교회를 나가니 천국에 가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짐작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 중 집사와 장로, 심지어 목사들도 포함돼 있어 매우 안타까울 뿐입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

이 말씀은 사람이 범죄하면 지옥으로 가고 죄를 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절대로 죄를 짓지 말라는 준엄한 명령입니다. 죄의 그늘에서 벗어나,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스승 예수님을 팔아넘긴 사건 역시, 바로 우리가 현세에서 저지르고 있는 민낯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막 14:21)”.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인간, 차라리 빛을 보지 못하고 모태에서 죽는 것이 나았던 인생, 인간이 되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이겠습니까? 이 말은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말입니까?

이 말씀을 다름아닌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누구에게? 가룟 유다, 곧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제자에게 하셨습니다.

유다가 지옥에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승을 팔아넘긴 것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근본 죄는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님의 최측근으로 따라다녔음에도 예수님의 참 모습을 깨닫지 못했고, 그 분이 이 세상을 구원할 구주 되심을 깨닫지 못하며 거듭난 적 없는 불쌍한 죄인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거짓 교인들을 예표하고 있음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유다는 비록 스승을 팔아넘겼지만,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거듭나지 못한 거짓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든 유다보다 조금도 나을 것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하는 사람들, 숱한 죄를 짓고도 양심은커녕 오히려 상대방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며 자신은 정당하게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처럼 위장하는 파렴치한 꾼들도 있습니다.

날마다 말로는 국민들과 민주주의를 위한다지만 백성들을 유혹해 갖은 권모술수로 권력과 이익을 탐내는 이들과 그 수하들은, 앞에서 아첨하며 뒤로는 한몫 챙기는 이들일 뿐입니다. 심지어 악어의 눈물까지 보이며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니, 그곳이 바로 지옥의 구렁텅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소위 지도자는 차라리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아니하였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마음마저 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동산에서도 사탄이 출현해, 인류에게 세상 끝날까지 쓰디쓴 죄를 짓게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 역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신접한 여인까지 찾아가는 등의 교만 때문에 왕위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불운의 왕이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 곁을 지키면서 함께했던 제자들 역시 주님의 뜻과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제자는 의심하고, 어떤 제자는 스승을 팔아넘기는 참혹한 죄를 지었습니다.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있어 예수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신뢰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버젓이 저질러지는 갖가지 죄악의 현상은 교인들이 지옥을 모르고 살기 때문 아닐까요? 주일날 교회만 나오면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것처럼 오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참 많은데, 안타깝기만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을 수없이 들었을텐데, 그저 형식적으로 입술로만 중얼거리는 노래였을까요? 하나님 나라와 아무 상관없이 시간만 헛되게 보내는 이들은 장차 오실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거듭난 삶으로 다시 전환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지도자라는 분들은 국민들이 안전하고 포근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죄를 생산하는 공장처럼 무수한 죄를 찍어내고 있습니다. 지옥이라는 엄청난 구덩이를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사랑을 선물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모두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직무를 가벼이 여기지 말고, 준엄한 하나님의 명령을 무겁게 받아들여 충실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