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 하루 기도 시간 24분
육체의 살은 포동포동해지지만,
영혼은 영양실조 걱정해야 할 때
하루 10분 기도, 이대로 괜찮나?

블레싱 전주
▲지난 6월 지구촌교회 ‘블레싱 전주’ 행사에서 청년들이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위 사진은 본 기고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크투 DB
#학생 曰 “10분 기도하기도 힘들어요”

“우리 한 달 동안 시간을 정해서 함께 기도할까? 하루에 몇 분 기도할지 적어 보자.”

몇 년 전, ‘기도’를 주제로 시리즈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기도란 무엇인지부터 시작하여, 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고등부 학생들에게 5주 정도 설교했다.

3주 정도가 되었을 때, 기도에 관한 작은 팸플릿을 만들었다. 앞장에는 기도에 대한 명화(名畫), 뒷장에는 매일 기도를 했다는 확인 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이 팸플릿을 주면서, 앞으로 3주 동안 함께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자고 했다. 단 시간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작정했다.

고등부 학생들이 몇 분을 적었을 것 같은가? 필자는 내심 기대했다. 이미 두 번 정도 설교를 했고, 고등부 학생들은 기도의 의미를 알게 됐다며 좋아했다. 아직 3번의 설교가 남아있었고, 충분히 기도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작정한 기도의 시간을 보고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찰나였다.

학생들은 평균 10분 정도를 작정했다. 사실 너무 놀랐다. 못해도 15분 이상씩은 적을 줄 알았다. 하루에 게임하는 시간이 적어도 1시간은 넘고, SNS나 유튜브를 보는 시간도 1시간이 넘는다. 그러니 기도하자고 했을 때, 1시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15분 이상은 적을 줄 알았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한 학생에게 구박하듯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 “목사님! 10분 기도하는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이것도 나름 예의를 지킨거라고요.”

몇 년 전 이야기 말고, 요즘 이야기도 궁금했다. 엊그제 임원 모임이 있었기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희 시험 준비하느라 바쁘고 정신없지? 그래도 궁금한 것이 있는데, 요즘 기도 얼마나 하고 있어?

임원 친구들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물어보니 10분도 못한다고 했다. 밥 먹을 때 정도만 기도하고, 그 외에 따로 무릎을 꿇거나 시간을 분리하여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더하여 10분을 기도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라고 덧붙였다.

10분. 10분을 무시해서는 아니다. 나름대로 그들에게는 최선을 다한 시간이다. 다만 하루라는 인생에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시간이 10분이라는 것에 마음이 쓰라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1,440분인데, 하나님께 구분해서 드릴 수 있는 시간이 10분이라니. 기도, 우리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교사 曰 “중요하죠. 그런데 너무 바빠서요”

참 다행인 것은, 교사들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다만 아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는 또 조금 다른 문제다. 교사분들에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하다.

“기도 생활 잘 하고 계시죠?”

“기도해야죠.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아는데, 기도의 자리로 가는 것이 참 쉽지 않네요. 왜 이렇게 바쁜지….”

필자는 무엇보다 ‘기도의 영성’이 필요한 시대라고 부르짖는다. 기도는 요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영성이다.

점점 바쁘게 변해가는 시대, 24시간도 모자란다고 부르짖는 시대에 교역자와 교사는 무엇보다 기도의 영성을 쌓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기도의 무게를 좀 쌓을 필요가 있다.

기도의 무게를 생각할 때마다 생각나는 그림이 하나 있다. 이집트 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림, ‘심장 무게 달기 의식’이다.

이집트 벽화 심장 무게 달기 위키
▲이집트 벽화 속 ‘심장 무게 달기 의식’. ⓒ위키
‘이집트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는 이 의식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 의식은 한 영혼이 사후세계로 가기 위해 받는 재판이다. 이 재판의 핵심은 저울에 심장의 무게를 재는 것인데, 심장의 무게는 깃털로 잰다.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유죄다. 이 사람은 이승에서 죄를 많이 지었다 하여 괴물 암무트(혹은 암미트 Ammit, Ammut)가 심장을 먹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영혼은 사후세계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계속 떠돌게 된다. 내세를 믿는 이집트인들에게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다.

반면 심장이 깃털과 일치하면 무죄다. 죽은 자의 영혼은 육체와 만나 부활하게 된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저 저울 속에 심장이 아니라 나의 기도를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저 재판에서는 심장이 가벼워야 살지만 하나님 앞에선 기도가 무거워야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저 저울에 얼마만큼의 기도를 올릴 수 있을까? 내 기도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가 드린 기도의 무게로 내가 살 수 있을까?
더욱이 내가 드린 그 기도의 무게로 학생도 살 수 있을까?

필자 역시 두렵다. 필자의 기도로 본인도 살고, 더불어 우리 부서 아이들도 살릴 수 있을지 두렵기만 하다. 그 말인즉 필자 역시 기도를 많이 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도는 하나, 여전히 내 욕심으로 가득한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기도는 기도의 무게를 더하지 못한다.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 쉽다.

그렇다면 요즘 장년들은 얼마나 기도할까? 지난 7월 ‘한목협 한국인 종교생활 조사’ 결과를 보면, 기독교인의 하루 평균 기도 시간은 24분이다. 식사 기도를 제외한 기도 시간이다. 가톨릭은 우리보다 조금 더 많은 25.3분이다. 충격적인 것은 기독교인 5명 중 1명은 ‘기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도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기도만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성경을 보지 않거나 찬양과 묵상이 없는 기도, 그런 기도는 자칫 신비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우리는 지금 신비주의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기도의 영양실조’를 걱정할 때다. 지금 우리는 기도의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영혼이 말라가는 것을 걱정할 때다. 육체의 살은 포동포동하여 다이어트 약을 먹음에도, 영혼의 살은 비실비실하여 영양실조에 걸릴 위험을 걱정할 때다. 역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1,440분인데, 하나님께 구분해서 드릴 수 있는 시간이 24분이라니.
‘기도, 우리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김정준 다음 세대
▲김정준 목사. ⓒ크투 DB
김정준 목사

울산대흥교회 교육목사
영남신학대학교 신학과·신학대학원
전남대학교 대학원 문학 석사
한남대학교 대학원 박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