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혹하는 상대가 누구인가?
2. 마귀는 어떻게 유혹하는가?
3. 예수님 이름으로 대적하라!

고독 외로움 갈림길
▲양갈래길 앞, 어디로 갈 것인가?. ⓒ픽사베이
필자는 매일 아침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체중계에 올라가서 몸무게를 측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매일 아침 긴장된 마음으로 걱정하며 체중계에 올라간다.

‘오늘은 내 몸무게가 두 자리일까? 아니면 세 자리일까? 제발 두 자리여야 할텐데….’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언제나 세 자리 숫자가 찍혀 있다. 그래서 필자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필자에게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와 같다. 왜냐하면 필자는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할 때마다 먹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는 것이 너무 어렵다. 다이어트를 할 때 옆에서 아내가 많이 도와준다. 아내는 필자가 살을 뺄 수밖에 없는 식단을 짜서 요리해 준다.

하지만 필자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아 있는데 풀로 만든 음식 밖에 없으면 힘이 빠진다.

다이어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그 순간이 필자에겐 큰 괴로움이다. 결국 이틀을 못 가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아내를 향해 “라면 좀 끓여줘. 밥도 말아 먹을거야”라고 말한다.

먹고 싶은 유혹을 이겨 내는 게 참 어렵다. 아침까지만 해도 ‘오늘 저녁에는 물만 마시고 다이어트해야지’라고 굳게 다짐해도, 저녁만 되면 신기할 만큼 먹을 것을 찾게 된다. 필자는 다이어트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은 어떤 유혹에 흔들리는가?’

우리는 늘 유혹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유혹은 상대방을 꾀어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끄는 것을 뜻한다. 특히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세상에서 죄의 유혹을 이겨내며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고 나오는 교회 고등학생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했는데, 학생 손에는 수학 시험지가 들려 있었다. 필자는 그 학생에게 수학 시험지를 보자고 말했다. 시험지를 보니 필자가 고등학교 때 치던 수학 시험지랑 많이 달랐다. 문제 배점이 상당히 다양했다.

3점짜리 문제도 있고 4점짜리 문제도 있었으며, 심지어 10점이나 되는 문제도 있었다. 그 학생이 들고 있던 수학 시험지는 객관식이 30퍼센트, 서술형이 70퍼센트였다. 자, 여기서 만약 당신이 중간고사 수학 시간에 서술형 10점 문제를 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10점 문제를 푸는데 정답 풀이 과정까지는 자세히 적었다. 그런데 답이 헷갈린다. 답이 4인 것 같기도 하고 5인 것 같기도 하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고 있는데, 당신의 대각선 앞줄에 있는 친구가 마지막 문제를 풀고 있는 게 보인다.

문제를 풀고 있는 그 친구는 우리 반 1등이자 전교 1등인 학생이다. 당신이 살짝 눈을 돌리면 그 친구가 적은 답이 보일 것 같다. 이때 당신은 갈등한다. ‘눈을 옆으로 돌릴까, 돌리지 말까?’ 이럴 때 우리는 유혹을 받고 있다는 말을 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남학생들은 혈기왕성한 나이 때 성(性)의 유혹을 상당히 많이 받는다. 얼마 전 남학생 한 명이 필자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남학생이 학교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핸드폰으로 여자 BJ들이 나오는 영상을 보자고 했다. 그 영상에는 여자 BJ들이 옷을 야하게 입고 나와서 춤을 추는 영상이었다.

그 남학생은 그 영상을 보기 싫어서 친구들과 조금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때 친구 한 명이 “너는 안 보냐?”라고 물어보자, 그 남학생은 “나는 그런 영상을 안 본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영상을 보던 친구들이 갑자기 그 남학생을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너 혹시 문제 있냐?”라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고 말했다.

그 남학생은 자기도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런 영상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음란으로 빠질 수 있어 참은건데, 친구들이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니 속상했던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유혹을 받을 때 쉽게 넘어가는 편인가? 아니면 유혹을 이겨내려 하는 편인가?

오늘 이 질문은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유혹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혹을 어떻게 이겨 내는지 알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유혹에 빠져 살아가면 아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1. 유혹을 주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시험’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시험을 주신다. 그런데 오히려 그 시험은 인간에게 유익이다.

시험을 통해 우리는 신앙의 훈련을 받고, 믿음이 더욱더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테스트’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해 믿음이 단련된 많은 사람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유혹’이다. 유혹은 마귀가 준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좇아 살지 못하도록 유혹한다. 마귀는 항상 우리를 노리고 있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도록 유혹한다.

마귀는 또한 영이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습관을 유심히 관찰하여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선택하는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그래서 우리 연약한 부분을 잘 알고, 하나님과 반대되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다.

2. 마귀는 우리를 어떻게 유혹하는가?

마귀는 우리를 어떻게 유혹할까? 마귀는 하와를 유혹했던 것처럼 우리를 유혹한다. 하와에게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했던 것처럼, 마귀는 우리에게도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너”라고 항상 유혹한다.

크리스천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유일한 구원자로, 왕으로 마음 속에 모셔들이며 이제 그 분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마귀는 늘 세상의 주인공은 예수님이 아니라 너 자신이라고 유혹한다.

마귀는 하나님 말씀을 떠나, 너를 위해 살라고 말한다. 믿음을 지키기 보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라고 말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한다. 다시 한 번 더 말한다. 나의 유일한 주인은 내가 아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3. 마귀의 유혹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라

“마귀는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

마귀는 보통 유혹을 할 때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지만, 주로 인간의 생각을 통해 유혹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결정적인 이유도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는 유혹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이 아님을 알고 분별해야 했지만, 결국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다. 마귀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생각을 통해 유혹한다.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친구를 질투하고 미워해”, “오늘은 예배 가지 말고 친구들이랑 놀아”….

마귀는 생각을 통해 우리가 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유혹한다. 그럴 때 우리는 마귀가 주는 생각을 떨쳐내야 한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분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마귀야 떠나가라!”라고 말이다.

크리스천은 유혹을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유혹이 오는 원리를 알면, 유혹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유혹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마귀가 주는 유혹을 예수님 이름으로 물리치자.

김맥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는 김맥 목사.
김맥 목사

고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총신대학원 M.div 졸업

전) 참사랑교회 청소년부, 성동교회 중등부, 부광교회 청소년부, 성일교회 중등부, 화원교회 고등부 전임목사 및 주일학교 디렉터
현) 초량교회 교구담당 및 고등부 담당 주일학교 디렉터

저서 <얘들아! 하나님 감성이 뭔지 아니?>, <하나님! 저도 쓰임 받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