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혁신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노인 폄하
▲관련 보도 첫 화면. ⓒjtbc 유튜브 캡쳐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태복음 16:21-22)”.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3-24)”.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밝히신 뒤, 자신이 당할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주를 붙들고 그러한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만류합니다. 그는 능력과 영광을 지닌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베드로가 그리스도 사역의 정점인 고난의 십자가를 피하라는 유혹을 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를 ‘사단(반대자)’이라 부르셨던 것입니다.

사단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의 욕망으로 바꾸게 하는 악한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의 시험이 어려운 것은 언제나 달콤한 사랑을 가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안일함 속으로 빠져들어, 하나님의 길을 걷는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못된 습성을 발휘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란 자기 중심적 삶을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 중심적 삶을 생활의 구심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는 말씀은 기독교인이란 남에게 더 많이 주기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당하신 것처럼, 기독교인의 삶 역시 희생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계속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순간적인 감동에 의한 희생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게 되고, 자신의 안전을 우선 생각하다 보면 결국 믿음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을 위해 믿음을 포기하면 목숨을 건질 수는 있으나 참 생명은 잃게 됨을 말씀해 주십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태복음 17:1-4)”.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마태복음 17:9)”.

스승이나 부모가 원수로부터 목숨을 잃었을 때, 또는 형제나 친구의 원한을 갚기 위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도사나 산신령 같은 이에게 무예를 전수받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한이 차면 ‘이제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하산하여 목적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간혹 대화 중 어느 경지에 이르면 ‘이제 하산하자’는 말을 간혹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릅니다.

변화산에서 영광을 본 베드로는 환희에 넘쳐, 이를 오래도록 누리고 싶어 초막을 짓자고 합니다. 그는 평범한 현실과 삶의 고난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산의 경험은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고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하므로,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십니다.

앞선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실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그 순간 제자들은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자신들의 기대치와 전혀 달라, 심한 거부감과 크나큰 실망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비록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결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시기 위해 높은 산에 오르셔서 신성을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이때 등장한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예언으로 요약되는 전 역사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2020년 코로나 발병으로 계속되는 질병의 시대입니다. 돌아보면 대면 예배가 잠시 중단됐을 때, 인터넷이나 방송으로 생중계하는 예배로 재빨리 대체했던 것은 그리 좋은 해결책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TV나 인터넷 예배로 방향을 전환해 화면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참으로 세상에 없던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따르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19-20)”.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대해 가르치실 때 합심해 구하며, 교회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 뜻이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은 분명 교회를 말해주,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변모를 보면서 황홀한 나머지, 베드로는 어지럽고 혼탁한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가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도외시한 채 피안의 세상만을 찾는 것은 당신의 길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오셨다고 분명히 밝히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이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삶을 무시한 채, 하나님 뜻을 이루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인간의 실제 삶과 직결돼 있음을 다시금 명심하시고, 믿는 우리 모든 권속들은 산 속이나 산 위만 고집하지 말고 산 아래로 내려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잘 이해하며 그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군병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옛 시대에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강렬한 더위를 이기기 위해 우리 신앙인들은 개울이나 연못 그리고 깊은 산 속으로 도피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잠시 사는 이 세상에서 주님을 인식하고 주님이 원하시고 바라는 그런 모습으로 참고 인내하며, 늘 찬송과 기도 속에 주님 주시는 참 평안의 기쁨을 맛보는 세상 속 십자가 역할을 잘 감당하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최근 지인의 유튜브 영상을 보았는데,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이므로, 주일 새벽 이미 글을 완성했지만 추가로 전해드릴 내용이 있어 지금부터 덧붙입니다. 요즘 노인 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의 시누이가 쓴 글을 간단히 소개하려 합니다.

그 시누이는 김은경 위원장이 금감원 부원장으로 취임했을 때, 아버지가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을 때, 그리고 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이름을 날릴 때까지도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며칠 전 노인 폄하 논란을 일으킨 뒤 “남편 사별 후 18년 간 시부모님을 모셨고 작년 선산에 묻어드렸다. 그래서 어르신에 대해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산 적은 없다”고 말한 것은 도를 넘었다며, 이런 사람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기에 글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시누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남편이 살아있을 때를 포함해 단 한 차례도 시부모를 모시고 산 적이 없고, 공경심은커녕 18년 동안 시아버지는 그녀에게 온갖 악담과 협박을 받아, 돌아가시면서도 쉬이 눈을 감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돌아가신 분들을 욕보이지 않기 위해 어렵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다소 긴 글이지만 꼭 끝까지 읽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피 토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이 절대로 평범하게 살아서도 안 되지만, 높은 위치에서 국민을 우롱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분통함에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신 우리 부모님이 더 이상 원통하지 않고 편안하게 이승을 떠나게 도와주시고 더 이상 오빠의 죽음이 한낱 사랑 타령으로 거짓으로 욕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미비한 글이지만 널리 알려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 합니다. 미국에서 김지나 드림.”

필자가 줄여서 소개했지만, 일부분이라도 알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잠시 소개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역겨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정치판에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었다면, 저런 사람을 혁신위원장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당은 당대표부터 국민정서와 무관한 사람들만 모여 국민들을 이용하고 우롱하며 나라에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당이 아닐까요.

지금 김은경 위원장의 큰아들이라는 인물도 글을 올려 시누이의 글이 사실이 아니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빨리 밝혀지길 바랍니다.

늘 국민을 위한다는 포장된 거짓 날조, 자신들의 영예를 위한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르는 만행들을 이제 더 이상 국민들께서 지켜보기만 해선 안 되고, 저들을 이 땅에서 내쫓아야 합니다.

변화산에서 주님의 변모하심을 보았더라면 저들의 행위가 이 정도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이 우글우글한 대한민국 국회는 언제까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는지요.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된 날조로 몸담은 당을 위해서만 충성하고, 국민과 나라는 안중에도 없이 오롯이 자신들만의 아성인 저 비굴한 국회의원들을 이제는 강제라도 하산시켜야 하겠습니다. 고요하고 산새가 아름다운 무릉도원에서 저들을 산 아래로 강제 퇴거를 시켜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