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 옹달샘 산 약수 물 낙수 흐름 우물 생수 생명
▲ⓒ픽사베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3-14)”.

사람의 몸 속 70% 이상을 차지하는 수분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몸에 필요한 물을 하루 2리터씩 마셔야 한다는 말만 듣고, 맹물 마시기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뜨거운 물은 오히려 체내 수분을 빼앗기 때문에 찬물보다는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미온수를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더구나 아침 공복에 마시면 신진대사율이 높아 다이어트 및 변비 예방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고 하니 이글을 보시는 분들은 참고를 바랍니다.

특히 요즘 세상은 유튜브만 봐도 건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납니다. 특히 모든 질병과 노화의 근본 원인은 몸 속 수분 부족에 있다고 하니, 물만 잘 마셔도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어, 이삭은 그랄의 블레셋 아비멜렉에게 갔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삭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복을 주리라” 약속하십니다.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에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약속하십니다. 이삭은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아지니 블레셋 사람이 이삭을 시기하여, 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 때 종들이 팠던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하니 우리를 떠나라”고 요구합니다.

이삭은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서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을 다시 팝니다.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찾아와 그 우물을 자기들의 우물이라며 메워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그들과 싸우지 않고, 다시 새 우물을 팠습니다. 그 우물들의 이름은 ‘에섹, 싯나, 르호봇’입니다.

우물은 그 당시 부유함을 나타낸 큰 재산이었습니다. 이삭의 아들인 야곱은 아버지와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권한을 쟁취한 후, 형 에서를 피해 길을 떠나 동방 사람 땅에 이르렀습니다. 곁에는 양 세 떼가 누워 있었고, 목자들이 양떼에 물을 먹이고 있을 때 야곱의 외삼촌 라반과 장차 아내가 될 라헬을 만난 곳이 바로 우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물에 관한 이야기 많습니다. 특히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바람 났네’라는 노래가 생겨날 정도로 우물은 동네 여인들의 애환이 서린 장소이기도 합니다.

앵두나무는 장미목 벚나무과 관목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이 원산지입니다. 앵두는 꾀꼬리가 먹으며 생김새는 복숭아와 비슷하다는 뜻의 ‘앵도’가 변한 말이라고 합니다. 앵두는 그 해 나는 과실 중 가장 먼저 익어, 겨우내 싱싱한 과일 한 번 먹지 못한 백성들은 물론, 왕후장상까지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과실입니다.

특히 동네 우물가에는 한두 그루 앵두나무가 심어져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우물가는 항상 동네 아녀자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이었고, 동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울고 웃는 연극의 무대였습니다. 특히 남정네들의 사랑방 구실도 했습니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집에 우물이 있어 많은 여인들이 찾아왔습니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즐거운 휴식처이자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안식처, 많은 동네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의 역할도 했습니다.

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신 참뜻을 깨닫지 못한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이 너무 깊어 그릇이 있어도 물을 길어 올리기 힘든데, 어떻게 우물 밑바닥에 흐르는 생수를 주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여기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야곱의 우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단어로서, 계속 물이 솟아나오는 샘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11절에서 ‘우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프레아르’, 즉 같은 우물을 가리키는 단어 ‘패계·프레아르‘와 동시에 사용됐습니다.

성경에는 이삭의 우물, 야곱의 우물, 그리고 요단강을 비롯한 호수, 바다처럼 물에 관한 역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물은 인간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물이 있는 곳으로부터 문화와 역사가 이루어졌고, 세계 3대 강이라는 미시시피(미국), 아마존(남미), 나일(이집트) 강은 인류 역사와 문화를 만들며 강력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물은 사람이나 짐승들의 갈증을 없애주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사람은 몸 속에 0.6리터의 물만 부족해도 갈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육체적으로 목마른 상태뿐 아니라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이를 때도, 우리는 갈증·갈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인간 내면에는 항상 그 어떤 무언가를 갈망하고 염원합니다. 그 갈망과 염원의 대상은 영적인 것일 수도, 물질적 대상이나 가치일 수도 있습니다. 갈망한다는 건 있어야 할 무엇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며,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존재나 대상, 감정 등을 갈망하고 그것들을 내 안에 채우려고 난리법석을 합니다. 계속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물을 길으러 와야 했던 사마리아 여인의 안타까운 사연처럼, 오늘 요한복음 말씀도 갈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대낮에 예수님께서는 우물가에 물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합니다. 겉으로 볼 때 육체적 목마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육체적 갈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 갈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특히 남편이 없다는 표현은 사마리아 여인이 결여된 상황에 놓여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다섯이나 되는 남편을 통해 공허함과 내적 갈증을 해소해 보려 했지만, 누구도 그녀의 결여된 내적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내적 갈증에 목말라 애를 태우던 차에, 자신의 이러한 갈증을 알아내신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메시아가 그녀를 찾아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과 대화는 그녀의 근원적 목마름을 해갈해, 그녀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이제 더 이상 갈증으로 고민하거나 과거에 사로잡혀 몸부림 치는 삶을 영위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내면의 갈증과 삶의 공허를 채우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분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제공하시는 주님 아니겠습니까?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약속하신 주님의 그 음성을 들으며, 사순절을 맞아 주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물을 마시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신비한 복음을 전해 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땡볕에 이웃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 길러 다니던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로 쫓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용기 있게 메시아가 오심을 전한 최초의 선교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한 사람이 귀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벌써 다섯 명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주님 주시는 영생의 물을 마시게 할 방법이 어디 없을까요?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 주시는 물을 마신 후 물동이를 내던지고 동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쏜살같이 달려간 것처럼, 그분에게 달려가 주님 주시는 영생수를 마시게 할 ‘선한 사마리아인’이 어디 없나요? “내가 주는 물을 마셔라! 누구든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