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부산
▲김석준 후보의 현수막. ⓒ크투 DB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언 18:2)”.

미련한 사람에게 두 가지 문제점은 ‘닫힌 마음’과 ‘열린 입’입니다. 미련한 자는 타인의 충고를 꺼리나, 자신의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어리석은 말뿐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디모데전서 3장 1-13절에서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하며, 교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올바르게 교육시킬 준비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가정을 믿음으로 잘 다스려야 합니다. 불신 사회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합니다. 집사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단정해야 하고,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므로 물질 문제에서 결백해야 하며,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비밀을 깨닫고 성별된 생활을 해야 하며, 자신의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을 요약하면, 에베소 교회의 이단 문제 중 하나는 극단적 금욕주의였습니다. 이들은 영혼은 선하고 육신이 악하다는 교리에 근거해 혼인제도마저 거부한 채 육식과 음주를 부인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에 반론을 제기한 후, 디모데에게 개인적인 경건 생활에 전념해 지도자로서의 덕목을 갖출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에 침투한 이단, 그릇된 금욕주의에 대해 경계할 것을 권면하며, 디모데에게 선한 일꾼이 되기 위해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받고 신화를 버리며 경건을 훈련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실제 삶에서 모범이 될 것과, 신앙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강조하며, 교인들을 말씀으로 권면하고 가르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학교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중, 집 근처 도로 삼거리에 걸린 현수막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준비금 20만원 지원, (부산) 교육감 후보 김석준’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도 기가 막혀,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교육계 수장이 되고 싶다는 분이 어찌 파렴치한 정치꾼들의 놀음을 하는지…. 김석준 후보는 현재 부산시 교육감 직을 두 번이나 수행했습니다. 이번 선거에 당선될 경우 내리 세 번을 수행하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교육감 후보로 적임자라고 주장합니다.

두 번을 했으면 이제 다른 사람에게 교육정책을 맡길 법도 한데,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구시대적 발상으로 이제 교육감직을 돈으로 사려 하는 듯 합니다.

현재 부산에 있는 청소년들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필자는 학교 근처에서 아이들의 실태를 매일 지켜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교육청은 도대체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지 통 알 길이 없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수정·보완해야 할 사항들이 숱하게 많은데, 이런 현실은 모르쇠로 일관한 채 오로지 수장 자리만 탐내는 사람을 또 교육감으로 앉혀야 한단 말입니까?

‘돈 20만 원’으로 교육감 직을 구걸할 것이 아니라, 미래 교육을 위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대한민국의 100년을 넘어 1,000년을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군분투하며 땀 흘리는 본분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청소년들의 실태를 보노라면, 정말 미래가 두려울 지경입니다. 선생님에게 욕하는 것은 보통이요, 복장 단정은 벌써 옛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몸에는 문신이 가득하고, 팔목에는 칼로 그은 자국, 머리부터 발끝까지 액세서리로 넘쳐납니다.

등교는 주로 택시를 이용하는데, 가관인 것은 하교가 임박한 시간에야 택시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과입니다. 그들이 그 시간 택시에서 하차할 때, 그들의 양손에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습니다.

수업 시간 취침은 보통입니다. 공부하기 싫으면 정문이나 후문으로 도망갑니다. 도망가지 말라고 팔을 잡으면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발합니다. 또 옆구리의 허리띠를 잡았는데, 멱살을 잡았다고 고발당한 적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먹는 과자 봉지나 라면, 김밥 등 음식쓰레기는 그냥 그 자리에 버립니다. 거짓말과 사기는 보통이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분노를 표출하며 창문을 부수거나 창에 걸친 철망을 칼로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그들끼리 하는 애정 행각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으로 변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잘못을 지적하면 째려보면서 폭력 행사도 불사합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요? 이제 손쓸 힘도 기력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훈계할 때는 엄하게 다스리고, 필요하면 사랑의 매라도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고, 그저 사랑으로만 아이를 대해야 한다는 교육관으로 인해, 현장은 참혹한 지경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스승을 존중해야 하는데, 아이들에게만 인권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교사는 스승이 아닌 직업인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예전 같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직장인으로서 아이들이 요구하는 대로 끌려가는 교육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의 경쟁력은 점차 약화되어 나약한 이들만 가득한 비극이 조만간 나타나지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됩니다.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것은 공중도덕입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협동심을 키우고, 이웃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며, 인성과 도덕 그리고 역사를 바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역사를 왜곡한 채,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으려는 노력만으로, 오히려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만 안겨준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효준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