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지저스 아미 2019년 9월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써 기도하시는 예수님. ⓒfreebibleimages.com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태복음 4:3, 6, 9)”.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3:16-17)”.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십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주리셨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일을 무릎 꿇고 밤낮으로 기도하신 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지쳐 있을 때, 마귀는 그 틈새를 노려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갖은 수단과 기술을 동원해 유혹합니다. 밥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양식이고, 배고픈 이가 먹을 것을 찾는 것은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당연히 먹을 것을 찾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떡이나 빵을 선택하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그 어렵고 고단한 유혹을 물리친 후 당당하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4)”고 말씀하시며 1차 시험을 무난히 통과하십니다.

모세의 인도를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광야에서 배고픔을 당해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고 당연히 해도 될 것 같은 일 앞에서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으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는 일을 통해서도 마귀가 유혹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마귀의 유혹의 기술은 너무 평범하고 노골적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주일 성수을 위해 노력하며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가, 세상 권세와 명예를 다 준다 해서 마귀에게 경배하게 될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러나 유혹자가 마귀가 아니고, 얻는 것도 그렇게 엄청난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혹은 불이익을 피하고자 거짓과 탐욕, 불의와 횡포에 고개를 숙인다면, 이것들이 모이고 쌓여 의인을 폭행하고 하나님 나라를 약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해해 주실 거야! 하나님, 한 번만 눈감아 주시고 모른 체 해주세요! 제발 한 번만요!’

예수님께 모든 권세와 영광을 걸었음에도 실패한 마귀는 이처럼 보다 다양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두 번 실패한 마귀가 세 번째로 선택한 방법은 최상의 무기 같아 보입니다. ‘윈윈 전략’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너의 이름을 드높이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화려한 말잔치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겨온 우리에게도 좋고, 하나님께도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허영심이 피어오를 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아버지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드리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섯 가지 이유와 열 가지 유익함을 내세워 하나이신 그분의 뜻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달콤한 유혹의 기술을 물리치는 가장 큰 힘은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찾는 단순한 일임을 고백하며, 예수님께 위로와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황량한 광야에서 40일 밤낮 주야로 기도하시며 시험을 이기신 주님의 행보의 시작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신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 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기도하실 때 예수님 마음은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럽고 괴로웠겠습니까? 죄인들을 위해 장차 십자가에서 겪게 될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 속에, 하나님의 진노를 앞두고 번민하시며 괴로워하시는 예수님의 인성을 완전하게 드러내는 장면은 감히 우리가 할 수 없는 참된 독생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체포와 죽음은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자발적 결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는 모범과 교훈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절대 신뢰하고 순종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참된 종이셨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바로 이것을 뿌리채 흔들기 위해 예수님을 유혹하며 시험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절박한 욕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을 시험하기보다 신뢰하는 태도를, 세상 권력을 통한 자기 숭배보다 오롯이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경배할 것을 말씀을 통해 밝히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완전히 잘 감당하셨습니다.

사순절이 익어가는 즈음,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40일 주야로 험한 광야에서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헐벗고 굶주린 자, 병마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갇힌 자와 억눌린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셨던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공생애의 마지막인 골고다 언덕에서 오른편 십자가의 강도 한 사람까지 구원하시고,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끝으로 고난의 행군을 끝내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승리의 나팔’이 온 세상을 향해 울림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영생 복락을 선물로 주셨던 그 주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19와 오미크론이 막바지 정점을 향하며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이 사순절,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대통령을 비롯해 ‘촛불’을 통해 정권을 찬탈하다시피 한 현 정권에서 지금 하고 있는 민낯들을 보노라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촛불 민심’을 이용하여 또 다시 자기 편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니, 그들은 진정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가 하는 생각뿐입니다.

지난 5년 동안 나라를 망가질 대로 다 망가뜨려놓고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한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나라 망신이 아닌가요?

지금 산불 피해로 인해 백성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국가의 최고 지도자라는 사람이 피해 입은 백성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는커녕, 자신의 명예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2%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당선인과 오찬을 나누며 대화를 시도했으나, 대통령의 요구사항이 하도 기가 막혀 오찬이 결렬됐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내용은 김경수 사면, 청와대 별정직 1/3 보직 보장, 전임 대통령 비수사 서면보장, 조국 가족 선처 및 사면 요청 등 네 가지였다고 합니다.

검찰을 개혁한다는데, 실상은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는 것입니다. 불리한 검사들을 외지로 다 내몰고, 고위공직자들을 수사하겠다며 공수처를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이 지은 죄를 면피하기 위해 신정부와 협상 카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조건으로 자신들 편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려 하는 잣대에는 웃어야 할까요, 울어야 할까요? 참으로 기가 막힌 사실 앞에 그저 하늘만 쳐다볼 뿐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인정하고 백성들 앞에서 사죄하며, 법에 따라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법까지 부패하게 만드는 파렴치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 아닐까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 광경을 낱낱이 보고 계심을 모르는지요?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는 교훈이 새삼 떠오르는 밤입니다.

가까이에서 주님의 승리의 행군 나팔 소리가 들려오는 깊은 사순절 밤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사순절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릴 위해 피눈물로 기도하셨던 그 주님을 기억하며, 변화되어 오늘도 감사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순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효준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