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는 인터뷰에서 “정교회는 정치적이다. 기존의 정권, 기득권과 한 팀을 이루다 보니 내야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경호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점점 민간인 사상자는 늘어나고 국제사회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는 이에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를 만나 이 사태 원인과 해결책을 들었다. 그는 2016년부터 3년간 우크라이나 대사, 또 그에 앞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를 지내고, 현재는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상임대표로서 국제정치전문가이자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 집사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대다수는 기독교인으로, 러시아정교회에서 분립한 우크라이나정교회가 70%에 달한다. 개신교인은 3~4%으로 적은 수이지만 “뜨거운 비전으로, 적극적으로 유럽 복음화에 기여하려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양 국민 대다수의 종교가 정교회(넓게 보면 기독교)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분쟁이 계속되는 이유에 대해, 종교가 정치와 결탁되고 생활문화화되고 의식에 집중돼, 그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고 봤다.

정교회, 정치와 결탁… ‘성찰’의 역할 미흡
유럽·한국 본받아 ‘개신교 국가’ 바라기도

이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와 한국을 지정학적으로 ‘운명공동체’라고 했다.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닌 자유주의-전체주의 간의 체제 전쟁으로 보고, 그 성패에 따라 유라시아를 넘어 우리나라 역사까지 달라질 수 있는 세계사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했다.

이번 전쟁으로 푸틴이 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게서 나토 가입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받고, 나아가 이를 중립화·무장해제하며, 소련이 해체됐던 1997년 이전으로 안보지도를 돌리려는 것이라고 했다. 크림사태에 대한 서방의 러시아 제재 강화로 누적된 푸틴의 불만사항을 잘 이해하고 요구를 파악한다면,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건강한 역할을 감당할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표했다. 다음은 이 전 대사와의 일문일답.

-우크라이나의 상당수는 기독교인(정교회) 신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지켜본 그들의 신앙, 국민성은 어떠한가요.

“우크라이나는 국민 대부분이 러시아정교회였다가, 러시아하고 관계가 안 좋아져서 완전히 우크라이나정교회로 독립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정교회의 일종으로, 70% 가까이가 정교인, 3~4%는 개신교, 약 10%는 가톨릭입니다. 개신교는 역사가 꽤 깁니다.

일부 국가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가 국가 발전에 필요한 조건들을 갖췄는데도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정교회에서 찾습니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 영국, 독일을 보며, 우크라이나도 개신교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짧은 기간 발전을 이룬 한국을 보며 롤 모델로 삼고자 하고, 지난 3년간 우크라이나 개신교 지도자들도 상당수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뜨거운 개신교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비전도 큽니다. 무슬림의 진출을 방어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유럽의 복음화에 기여해야겠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두 나라 국민 대다수를 이루는 정교회가 왜 분쟁 해결에 역할을 못하는 걸까요.

“러시아정교회도 ‘오소독스’, 즉 정통을 내세우지만 왜 공산주의 혁명이 러시아에서 일어났는가 성경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정교회의 타락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교회는 정치적입니다. 기존의 정권, 기득권과 한 팀을 이루다 보니 내야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의 순수성과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지만, 의식이 화려한 반면 말씀 중심의 신앙은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또 기독교가 생활문화화되어 있는데, 부활절 등 중요한 절기를 지키기만 하면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종교가 지나치게 문화화돼 버려, 말씀에 민감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데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3차 세계대전의 ‘두 화약고’, 우크라이나와 한국
자유주의-전체주의 간 체제전쟁, 세계사적 사건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
▲이양구 전 대사는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닌,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간의 체제전쟁”이라고 했다. ⓒ송경호 기자
-지정학적으로 우크라이나와 한국이 비슷한 위치에 있다구요.

“우크라이나 대사 내정 당시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께서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 있는 두 개의 화약고가 우크라이나와 한반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면에서 운명공동체 같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으로 기울면 힘의 균형이 유럽으로, 러시아로 기울면 러시아로 이동합니다. ‘피봇 스테이트’(Pivot state)라 불리는 나라들은 언제든 침략당할 수 있기에 위기를 이겨내는 강인함이 필요합니다.

러시아의 문양은 쌍두독수리입니다. 한쪽은 서방, 한쪽은 동방을 향하고 있지요. 아직 성숙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기에 주변국에 큰 위협을 줍니다.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닌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간의 체제전쟁이기에, 그 성패에 따라 유라시아와 우리나라 역사까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과 잘 공조해 버텨내면 자유민주주의가 더 속도를 낼 수 있고, 이는 러시아와 중국, 북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굉장히 역사적이고 세계사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방 국가들의 단합된 반전쟁·반러시아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푸틴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미국에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우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하지 않는 것을 명확하게 보증해 달라. 나아가 중립화를 선언하라. 그리고 무장해제를 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우크라이나의 나토 미가입 보증은 우크라이나를 무장해제하고 러시아에 위협이 되지 않는 식물국가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97년 이전으로 안보지도를 돌리라는 겁니다. 동유럽국가 혹은 발틱3국을 나토에서 탈퇴시키라는 건 들어 줄 수 없는 조건임을 서로 압니다.

푸틴, 97년 이전으로 안보지도 돌리려 해
그 요구 파악하면, 국제사회 일원 될 수도

푸틴의 바텀라인(핵심적 요구조건)은 첫째, 그동안 나토의 동진에 끊임없는 우려를 제기해 왔고, 유럽이 러시아에 더 투자를 해달라는 것도 있었는데 (서방이) 잘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수모가 그간 누적된 것도 있고, 두 번째는 크림사태로 서방이 제재를 가해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졌습니다. 제재가 풀리고 정상적 국가로 발전하는 것도 상당히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러시아의 목소리를 좀 더 경청해 주고, 서방의 자본과 기술이 러시에의 자원과 결합되며, 러시아도 현대화와 정치 발전을 이룬다면, 좀 더 건강한 러시아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또 한 가지, 러시아는 중국에 대한 위협을 굉장히 느낍니다. 푸틴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가 전략 차원에서 러시아의 경제력·국력이 업그레이드되어 유럽에서도 건설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동북아시아에서도 중국과 협력하면서도 견제하는 역할이 미국이나 서방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