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기독 미술계를 지켜온 안동대 미술학과 서성록 교수님께서 ‘한 점의 그림’을 통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서 교수님은 과거 본지에 ‘명화감상’, ‘렘브란트를 찾아서’ 등을 연재하셨고, <렘브란트의 거룩한 상상력>, <미술관에서 만난 하나님>, <한국의 현대미술> 등을 집필하셨으며 최근 기독 미술 전문가들과 <여섯 개의 시선>을 펴내셨습니다. 여기서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분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성록 교수님은 개혁주의 예술론 연구를 이어오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초한 미학 연구와 기독교 예술의 공적 역할, 예술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회복하는 운동에 힘을 쏟고 계십니다. -편집자 주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캔버스에 유채, 1888, 클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예술작품 제작, 농부들 밭일과 비슷하다 여겨
농부 밭에서 일하듯 밖에서 야외 사생 고집도
그리스도 뒤따라 말씀 전하는 ‘씨 뿌리는 사람’
고흐의 희망, 씨앗이 성장해 생명 되리란 믿음

‘씨 뿌리는 사람’(The Sower, 1888)은 고흐의 농촌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고흐는 농촌그림에 골몰하던 뉘엔 시절에 삽질하는 사람, 벌초하는 사람, 낫질하는 사람, 수확하는 사람, 나뭇단을 나르는 사람을 주로 그렸는데 이런 장면과 함께 농부들의 생활을 가장 잘 나타낸 모티브가 바로 ‘씨 뿌리는 사람’이다.

얀 헐스커(Jan Hulsker)에 의하면, 빈센트의 첫 작품이 바로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씨 뿌리는 사람>(1850)의 이미지를 모사한 것이었다고 한다.

초기에 반 고흐가 그린 작품은 밀레의 그림과 약간 다르다. 밀레의 그림이 주인공의 눌러쓴 모자 너머로 고단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비해 빈센트의 인물은 어떤 표정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밀레 그림과는 달리 빈센트의 그림에서는 인물 동세가 딱딱하게 느껴지는 등 습작 정도로 그친다. 그 후로도 반 고흐는 이 테마를 수십 점이나 제작하는 등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고흐는 아를 시절 <씨뿌리는 사람>(1888)에 등장하는 농부를 자신과 동일화하여 표현하곤 했는데, 이에 대해 드보라 실버만(Devora Silverman)은 이것을 종교개혁의 신앙, 즉 노동은 은총의 산물이자 힘든 노동자들의 성화를 꾀하려는 복음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하였다.

반 고흐는 매일 자신들의 손으로 대지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뉘엔의 농부들과 노동으로 직물을 짜서 옷을 만드는 직물공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밭에서 일하는 농부나 직물을 짜는 사람들을 염두에 둔 듯 자신도 고된 창작활동을 그들과 견주면서 농부와 직조공들을 화폭에 옮겼다. 나아가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일을 밭일을 하는 농부들과 다르지 않다고 여겼는데, 가령 “우리가 해야 하고 지속해야 할 연구가 남아있지. … 그것은 더욱 악착같이 할수록 … 진짜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더욱 쉽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지. … 요컨대 나는 씨앗이 되는 것을 고민하고 있어. 우리가 씨앗을 많이 뿌릴수록 우리는 더 큰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되기 때문이지”라고 했다.

그는 인상주의자들처럼 야외 사생을 고집하였는데, 그것은 농부가 밭에서 일하듯이 자신도 밖에서 똑같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루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시골농가에서 살아야 한다. 한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도, 겨울에 눈과 서리가 몰아쳐도 농부들이 하루종일 밭에서 일하듯 아침부터 저녁까지 툭 트인 야외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씨 뿌리는 사람>은 이렇듯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며 농부를 자신과 똑같은 인격체로서 바라보았던 고흐 자신의 인간관을 보여준다.

고흐의 초기 회화에 등장했던 이 주제는 아를 시절을 지나면서 풍경에 상징적 중요성(emblematic significance)을 부여하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게 된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썼다. “태양이 가득한 작은 밀밭에서 나는 일주일 동안 너무나도 어렵게 작업을 했다. 그 보람으로 작은 밀밭, 풍경의 습작, 그리고 씨 뿌리는 사람의 소묘를 그렸다. … 나는 실로 오랫동안 씨 뿌리는 사람을 그리고자 했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 이루어진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무섭다. 밀레(F. Millet)와 레르미트(Leon Augustin Lhermitte)가 후대에 남긴 것이란 색채로 그린 씨 뿌리는 사람이다.”

화면을 보면, 한 농부가 밀밭 위를 성큼성큼 걸어간다. 머뭇거림 없는 걸음걸이에서 그의 자신감을 감지할 수 있다. 뒤로는 해가 저물고 웃자란 밀이 빼곡하다. 밀짚모자를 쓴 농부는 밭 위에 씨앗을 뿌린다. 농부가 선 땅은 메말라 갈라져 있고 한눈에 보아도 척박해 보인다. 개간이 안 된 땅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성공을 추구하는 인생관을 지닌 사람들과는 달리, 고흐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씨 뿌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한 편지에서는 “벌판의 씨 뿌리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씨 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성경에 비추어보면, 주인공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요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전도자임을 나타내 준다. 이는 그가 일전에 런던 토마스 존스 목사가 운영하는 학교에서의 교역자, 보리나쥬에서 선교사로 사역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을 마태복음 13장에 등장하는 ‘씨 뿌리는 비유’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새들이 와서 씨앗을 먹어치우는 장면은 이 주장의 설득력을 실어준다.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성직자가 되기를 바랐던 그의 이력을 떠올릴 때, 그가 성경의 말씀을 의식하면서 모티브를 선택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19세기에 농부는 그림의 적절한 주제로 적당하지 않은 것이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이 도심의 신사와 숙녀를 즐겨 그리던 때여서, 농부나 익명의 사람들은 모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고흐는 농부에게 인격과 위엄을 부여하며 보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가 농부를 단순한 피사체로 바라보지 않고 존엄성을 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그림 후면에는 샛노란 태양이 농부를 환히 비추어준다. 여기서 태양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중세 미술의 후광이 각색된 ‘변장된 후광’으로 등장한다.

이야기를 종합해서 보면 그리스도의 축복 아래 씨 뿌리는 사람(복음 전파자)이 오늘도 맡겨진 일에 진력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사학자 제임스 로메인(James Romain)은 고흐의 삶이 때로 실망으로 얼룩져 있을지라도 그의 예술이 ‘희망’으로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밭에 뿌린 씨앗이 조만간 자라나 생명과 성장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는 그의 예술을 한층 활기차고 힘차게 만들었다.

서성록
▲서성록 교수.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