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 할 것이니라(누가복음 5:33-35)”.

해마다 가을이 되면 교단마다 총회가 열립니다. 총회장, 부총회장을 비롯하여 총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꾼을 뽑는 중요한 행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법을 수정·보완하는 절차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교회 당회부터 노회, 그리고 총회가 사람을 살리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몇몇 힘 있는 부유층이나 권력자들에 의해 오히려 성도들을 쫓아내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지금 총회를 비롯해 노회와 당회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총회장과 노회장, 부총회장 같은 임원 되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님과 성도들에게 돌아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법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총회와 노회, 그리고 지교회 당회 법은 목사와 장로들을 위한 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힘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가난하고 힘 없는 성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이 안전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권면하여, 한 영혼도 낙오자 없이 천국 시민권을 획득하여 천국으로 이사하는 그 날까지 신앙의 상담자가 되어주고, 성도로서의 역할과 자질 그리고 덕을 가르치는 선한 영향력으로 날마다 기도와 찬양으로 그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총회와 노회, 당회 법은 오롯이 목사 장로들이 누리는 갖은 혜택과 권력에만 집중되어 있고,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는 성도들을 치리하는 법만 있을 뿐입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장기화로 성도들이 세상 밖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에서, 가나안으로 가야 할 성도들을 하란에 머물게 하는 처사는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는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하란에 이르러 거기서 살다가 20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 데라가 하나님의 뜻대로 가나안 땅까지 갔더라면, 아마도 더 긴 세월을 자녀들과 함께 살았지 않았을까요.

아비의 집인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아브라함의 일생은,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축복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원칙을 따름으로써, 하늘에 별처럼 많은 후손들을 낳는 쾌거를 얻게 됩니다.

오늘 말씀 중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낭패를 당하자, 다른 내용으로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그 시비의 내용은, 바로 금식과 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 역시 누군가 대화하다 생각과 마음이 다르거나 자신의 방법이 옳지 않음을 지적당하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그 사람의 단점을 찾아 앙갚음하려 하기도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기도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에 대하여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다른 공동체의 제자들은 모두 금식기도에 힘쓰는데, 어찌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과 기도도 하지 않고 먹고 마시기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오고간 대화의 맥락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 말씀을 남녀의 혼인이라는 관점에만 제한하여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양한 율법 규정을 글자 그대로 지키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 정신을 찾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예수님은 가르쳐 주십니다.

글과 문자로 기록된 규정과 원칙은 사람의 눈에 확연히 드러나 보입니다. 여러 모로 편리하고 깔끔합니다. 지키는 사람과 어기는 사람, 그래서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을 확연하게 구분을 지어줍니다.

잘 지킨 이에게는 그 대가로 심적 만족감이나 안정감을 주고, 잘 지키지 못하고 어긴 이에게는 반대로 실망감과 불안감을 가져다 줍니다. 반면 규정과 원칙의 근본 정신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여러 모로 불편하고 성가시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골치 아픈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 근본 정신이라 하겠습니다.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의 규정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 근본 정신을 찾고 지키며 헤아리는 우리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의 다름은 바로 이런 점에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사람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숨어있는 일도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만 드러나는 남다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혼인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접하며, 나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많은 규정과 원칙보다 그 근본 정신을 찾으며 신앙생활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금식과 기도 자체는 신앙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행위 자체로 답변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지금이 중요한 시기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젖어 있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재 자신이 이 땅 위에 제자들과 함께 있는 시즌은 축제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랑이 와 있고 혼인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데, 무엇 때문에 금식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금식할 때도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신랑을 빼앗기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그 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법과 원칙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았지만, 오히려 그 법은 힘 있는 자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종전 선언과 평화를 논하는 것은 강자에게서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화천대유 대장동 개발
▲대장동 개발 의혹 관련 보도 화면. ⓒMBC 캡처
절대 권력에 서있는 자들은 법과 원칙을 자신들의 노리개처럼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원칙과 법, 룰은 완전한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하늘의 법칙을 일러주고 계시다는 것을 신앙인들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나라는 온통 대장동 게이트 사건으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위선과 거짓이 판을 치며, 법을 공부하고 전공했던 자들이 교묘한 수법으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 양심마저 내팽개친 채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그들이 모리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더구나 법조계 수장들이 하나같이 공의와 공정을 내팽개치고,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 채 한쪽 편에 서서 국민들 가슴에 근심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공직자들인지요? 그들도 부모가 있고 자식들이 있을진대, 우선 곶감이 먹기 좋다 해서 마구 먹다가는 훗날 역사 앞에, 그리고 자신의 후손들에게 뭐라 말할런지요!

공직자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법을 지키고, 원칙에 따라 양심 있는 자세로 누구나 예외 없이 공평하고 공정하게 대해야 합니다.

현 정부 공직자들과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속시원하게 제보하며 봉사해야 할 언론인들은 또 누구의 백성들인지, 자신의 사명조차 망각해버린 뇌가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사법기관, 언론, 교육계, 노동계, 그리고 입법기관, 행정기관과 안보, 외교 등 이 나라의 모든 기관 공직자들이 국민들의 피땀 흘린 세금으로 사례금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국민들을 위협하고 속이고 불안하게 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으니, 그들 모두는 이 땅 백성들이 아닌 것인가요.

모든 국민들이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다할 때만이 이 나라는 반석 위에 올려놓은 튼튼한 집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6,25와 같은 참혹한 시대를 또 맞이할 수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법과 원칙을 벗어난 행동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는 진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라와 백성들에 관계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추진하던 일을 멈춘 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민들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는 길만이 나 자신을 위하며 이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길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앙인들 역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적그리스도들의 흉계를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나서서 바르게 권면하며, 나라를 어지럽히는 자들과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하늘의 법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법과 원칙과 다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법이 있습니다. 오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형식적인 눈가림의 원칙을 떠나, 용서와 사랑으로 만들어진 하늘의 법을 따라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일에서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깊이 있는 묵상으로, 모든 업무를 공의롭고 공정하게 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