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리
▲원주 섬강 자건거 길. ⓒ크투 DB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가복음 8:33)”.

매주 토요일이면 필자는 교회에서 기도한 후, 클라리넷과 하모니카 연주를 합니다. 필자가 사는 곳은 아파트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소음 피해를 우려해 교회에 와서 늘 연습을 합니다.

연주를 마치고 전에 함께했던 교회 집사님과의 점심 약속 때문에 가던 중, 이런 문구를 발견하여 소개를 합니다. 마침 그 곳은 원불교 앞이었습니다. 담벼락에 걸어놓은 현수막에 적혀 있는 문구의 내용은 ‘집집마다 부처가 사는 세상’이라는 글귀였습니다.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또 담벼락에 주차해 놓은 승용차의 글귀가 아주 재미있어 소개를 합니다. 아마 그 승용차의 주인은 초보운전자 같았는데, 내용은 ‘살아서 집에 가게 해주소서!’였습니다. 참으로 재미나는 문구입니다.

최근 문을 연 어떤 가게의 화분에는 ‘돈 세다 잠들게 하소서’라는 축하 글도 있었습니다. 필자는 한참을 웃으면서, 친구와의 약속장소로 출발했습니다.

집집마다 부처가 사는 세상보다, 집집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세상이라고 쓰여 있었으면 더욱 좋을 뻔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초보운전자의 재미나는 글귀 또한 문제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자신이 먼저 교통 안전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고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안전하게 집에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돈 세다 잠들게 하소서’라는 말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세면 뭐합니까? 잠들어버리면 영영 끝인데 말입니다. 물론 그만큼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어라는 좋은 뜻이지만, 참으로 엉뚱한 글귀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 필자에게 친한 친구가 있느냐고 물어오거나 누구를 잘 아느냐고 물으면, 답변을 빨리 못할 때가 있습니다. 친하다고 하기에는 모르는 것이 많고, 친하지 않다고 하면 그 사람이 섭섭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는 만큼 말을 한다고 하면서도, 과장하거나 축소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가시던 중, 자신에 대한 소문을 묻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리고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질문을 던지십니다.

질문을 던지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명쾌하게 대답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라고 고백했지만, 스승으로부터 책망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바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안타깝게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한 그리스도는 고난과는 거리가 먼 구세주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 예수님이 생각한 그리스도와 달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그리스도는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라는 말에는 예수님의 확신에 찬 결의를 느낄 수 있으며, 예수님의 구원 능력과 확신에 찬 믿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내게서 물러가라”는 말씀은 내 앞에서 사라지라는 말이 아니라 “내 뒤에 서라”는 것입니다. 스승이 앞장서 가고 제자는 앞장서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처럼,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따를 준비를 하라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듯이, 제자인 베드로도 스승을 본받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것임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초대교회 신앙인들, 그리고 한국교회 순교자들 역시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박해라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며 그 분의 뒤를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뒤에 서서 나를 따라 오라”고.

“그냥 두어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마태복음 15:14)”.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계명의 영적인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맹인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지도자로 자처하면서 사람들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백성들도 맹목적인 신앙과 순종으로 그들을 따라 모두가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순종해야 하는데, 오늘날 교계에서는 입에 발린 소리만 증거하는 목회자들의 소리에 열중한 나머지, 훗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올 때 슬피 우는 안타까운 역사를 맞이해야 하는 슬픈 날을 생각하노라면, 참으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권력과 탐심, 그리고 고집과 아집에서 탄생되는 교만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향기는 악취로 변하고, 인심은 더욱 흉흉하여 비신자들의 눈총은 더욱 따갑게 몰려오며, 그리스도를 전할 복음의 문은 점점 좁아져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보다 먼저 나서는 교만을 잠재워야 할 것입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나서서 질서를 어지럽게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에 앞서서 주님께서는 손수 우리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믿음의 방탄조끼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셨듯, 지금도 우리 모두를 지켜주실 것임을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적그리스도가 더욱 빈번하게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더욱 우리의 목을 조여올 것이며, 신앙의 최대의 고비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이 시대의 사명자로서 역할을 다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