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하룻밤 견디는 것, 10년의 고통처럼 느껴져
노숙인도 같은 사람, 여력 있는 이들 도움 잠시 필요
큰 아들 극단적 선택 할 정도로 힘들지만 사명 계속

서울역 노숙인 자활센터 최성원
▲최성원 목사가 후원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활센터
“현재로서는 무료급식을 할 수 있는 길이 후원금 모금뿐인데, 제 개인 통장에도 후원금 통장에도 잔고가 없어요. 그나마 가락시장 상인들이 상품성이 떨어져 팔 수 없는 식자재들을 모아 보내주고 있어 무료급식을 이어가고 있지만, 다가올 겨울이 걱정스럽습니다.”

노숙자의 대부로 불리며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25년째 노숙자 무료급식 및 생활지원을 하고 있는 ‘행복의 집’ 최성원 목사가 추운 겨울을 앞두고 도움의 손길을 호소하고 있다.

최성원 목사는 “노숙자에겐 겨울철이 제일 힘들고 고통스럽다. 추위가 없는 계절에는 공원이든 거리 어디에서든 지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겨울에는 매 순간 순간이 죽음과 싸우고 있는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라며 “최근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경기침체 등으로 나눔과 기부의 손길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갈 곳 없는 노숙자들에게는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피부에 와 닿는다”고 토로했다.

최 목사는 “겨울 하룻밤 지내는 것이 10년의 고통 같다. 코로나19로 국내 모든 부분이 어려워져, 그동안 간간이 이어지던 후원도 끊긴 상황”이라며 “이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사회 각계의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노숙인들은 사고를 당해 조난을 당한 사람과 같다. 망망한 바다에서 조난당한 사람을 만나거나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을 보면 일단 구조하고 돕는 것이 사람의 도리 아닌가”라며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 하신 말씀과,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시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하신 말씀대로 행하자”고 설명했다.

서울역 노숙인 자활센터 최성원
▲서울역에서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모습. ⓒ자활센터
최성원 목사는 “노숙인들이 특별하거나 다른 사람이 아니고, 똑같은 사람이다. 어쩌다 사고를 당해 좀 더 여력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잠시 필요한 것뿐”이라며 “노숙인들 중에는 한때 잘 나가던 대기업 임원, 사장님으로 불리던 자영업자도 있고, 죗값을 치른 출소자, 이혼이나 실직으로 갈 곳이 없어진 사람, 장애나 정신질환으로 버려진 사람 등이 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결국 무슨 일을 당해 오갈 곳 없어 잠시 도움을 받고 있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최 목사는 “노숙자 무료급식 및 돌봄 사역은 국가나 복지시설에서 주로 맡고 있지만, 그런 도움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에게 홀로서려는 의지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며 “무료급식은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 자활을 돕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무슨 일이든 하도록 권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일할 의사가 있으면 돈을 줘서라도 일을 내보낸다”며 “지금껏 자활에 성공한 사람이 400여명인데, 노숙자가 자활해서 스스로 잘 사는 모습을 보면 매우 기쁘고 보람이 느껴진다. 오토바이를 사서 택배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아파트 경비를 하는 등 많은 사람이 자활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최성원 목사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대한민국이 한창 경제 성장을 위해 애쓰던 1968년, 백마부대 28연대 수색중대 일원으로 월남전에 파병돼 많은 전투에 참여해 생명을 걸고 싸웠다.

최성원 목사
▲용산역, 신용산 지하차도 위에서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 모습.
구사일생으로 살아 귀국 후 베트남 호치민 선교사로 5년간 활동했으며, 1997년 IMF 금융위기 때 실직과 파탄으로 나앉은 서울역 인근 수많은 노숙자를 보고,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지식보다 나은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노숙자 돌봄 사역을 시작하게 됐다.

요즘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이나 용산역에 노숙인들이 낮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최성원 목사가 서울지방경찰청과 함께 대낮부터 노숙자가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고 일일이 설득한 결과라고 한다.

최성원 목사는 “노숙자 무료급식과 돌봄 사역은 웬만한 강단과 신념이 없으면 중도에 포기하기 마련이다. 노숙자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그렇기에 무서운 것이 없다. 한 마디로 누구의 말도 듣질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 목사는 특유의 능청과 월남전에서도 살아남은 강단으로 끊임없이 설득해 이를 이뤄냈다.

최 목사는 노숙자 무료급식과 돌봄 사업을 하면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며 무려 72차례나 이사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교회의 후원과 드러내지 않고 돕는 사람들의 손길 덕분이다.

그야말로 근근이 운영해 나가고 있지만,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쉼터 ‘행복의 집’이 당장 닥친 문제다. 지난 2018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기존주택 전세임대금 지원’ 기회가 왔는데, 최 목사는 직접 계약할 조건이 되지 않았다. 이에 함께 생활하는 박모 씨(1955년생)를 계약자로 세웠다.

용산 행복의 집
▲행복의 집 앞에서 만난 최성원 목사.
박 씨는 전남 영광에서 치매에 걸려, 친지들조차 포기한 인물로, 최 목사가 지난 12년간 돌보고 있었다. 이에 SH가 지원한 6,650만원과 최 목사가 가진 350만원을 더해 7천만원 전세로 용산 ‘행복의 집’ 단독 건물을 계약했다.

입주해 생활하던 중, 최 목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박 씨의 실수로 전기코드에서 불이 발생해 부엌 기둥이 1.5m 정도 그을리고, 소방차가 출동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철 대문을 잠궈, 함께 생활하던 장애인들이 순식간에 길거리로 쫓겨나게 됐다. 그런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SH에서는 최 목사가 실제 계약자가 아니라며 무단점거로 규정하고, 강제집행을 예고했다.

이에 올해 나이 75세인 최성원 목사는 “아직도 할 일이 있는데, 이 한겨울에 어디로 가겠느냐”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노숙자 30여명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을 마련하고, 죽기 전까지 헌신적으로 이웃을 돕고자 몸부림치고 있는데, 그 터전이 없어지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최성원 목사는 “제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 무료급식과 노숙인 돌봄 사역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용산역 무료급식 사역은 제게 맡겨진 사명”이라며 “제가 못하더라도, 그 분이 저를 대신해 피눈물을 흘릴 일이다. 그러한 상황이 최대한 늦게 생기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최 목사는 “노숙인들을 돌보는 것이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다. 노숙자들은 ‘한때 잘 나가던 사람’들이 많다. 사업이 망하고 가족에게 버림받아 거리로 나온 사람들과 정신질환 등의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다”며 “더구나 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누구도 알 수 없다.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들을 방치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역 노숙인 자활센터 최성원
▲지난 10월 26일 서울역 노숙인 자활센터 개소 감사예배 후 기념촬영 모습. ⓒ이대웅 기자
최성원 목사는 이 일을 통해 개인적으로 금전을 취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갖고 사역하고 있다. 그래서 가정 경제에 어려움이 많고, 부인과 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최 목사는 “저는 그렇다 쳐도, 가족들까지 제대로 된 집도 없이 항상 모르는 사람들을 돕는 삶을 강요한 것 같아 미안하다. 가정 경제를 위해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폐지를 줍고, 부인은 삯바느질을 해야 했다”며 “큰 아들은 몇 달 전 양화대교에서 극단적 행동까지 시도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 믿고 하늘나라의 상급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어려움을 기쁘게 감당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그의 아들은 응급실에서 겨우 살아남았다고 한다. 폐에까지 흙이 들어가 두 달 동안 치료를 받고, 현재 장애인 공동생활 시설에서 약물 치료를 받고 있으며, 대인기피증과 불면증을 겪고 있다.

그 결실로 지난 10월 26일 ‘서울역 홈리스 자활센터’ 개소식 감사예배가 진행되기도 했다(후암로35길 7 후암우체국 앞).

개소식 당시 최 목사는 “저는 앞에서 저지르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노숙인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과 빨래까지 누가 다 했겠는가”라며 “봉사자들이 중간 중간 오시지만, 아내가 거의 도맡았다. 아내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그 동안 말을 못했지만, 오늘에서야 고백한다. ‘사랑해, 여보’”라고 울먹였다.

서울역 노숙인 자활센터 최성원
▲개소한 센터 모습. ⓒ이대웅 기자
이후 최 목사는 겨울을 앞둔 11월 21일 낮 서울 신용산역 5번출구 지하차도에서 노숙인들에게 겨울 점퍼 400벌을 나눠줬다. 또 오는 12월 22-23일 오후 4시부터 서울역 광장 시계탑 앞에서 동지를 맞아 팥죽 나눔 행사도 가질 예정이다.

최성원 목사는 “25년간 장애인과 노숙인 무료급식을 실천하면서 협박과 구타, 내쫓김과 천대 등을 수없이 당했다. 걱정하는 가족과 친지들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며 “태생부터 노숙인·장애인은 없다. 그들은 사고를 당해 잠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목사는 “겨울철에 동사하는 노숙자들이 많다. 제일 무섭고 힘든 시기”라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돕는데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후원계좌
농협 301-0160-2305-31 서울역 홈리스연합회
우체국 011908-01-002348 노숙자 선교 연합회
국민은행 477401-01-246248 서울역 노숙인 자활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