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인들은 함족과 셈족의 피가 섞인 주민이다. 그러다 보니 아프리카적 요소인 상형문자(히에로글리프)는 셈족의 쐐기문자인 비상형문자로 바뀌지 않은 채 3000년 이상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어는 고왕국 시대의 고어(古語), 중왕국~신왕국 시대의 중기어(中期語), 신왕국~말기왕조 시대의 말기어 3가지로 분류된다. 신전의 문자나 칙령 등에는 신성문자(히에로글리프)를 사용했다. 히에로글리프를 사용하였던 고왕국 시대의 신관(神官)들은 히에로글리프의 간략서체인 신관문자(히어레틱)를 만들었다. 그후 BC 7세기에는 도상성(圖像性)이 없는 속필문자(速筆文字)인 민중문자(데모틱)가 고안되어 상업 등에 이용되었다. 콥트어는 3세기 말 이집트어에서 생긴 뒤 새로운 문자체계로 표현된 것을 말한다.

이집트는 주후 641년 이슬람교도에게 정복당한 후 아랍어를 사용했으며, 오늘날은 아랍어의 이집트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마을이 연합하고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에 국가가 생긴 것은 BC 3500년 무렵이라고 학자들은 추정을 한다. 그리스 계통인 프톨레마이우스 왕조 시대의 신관이면서 이집트의 역사학자인 마네토는 이집트 역사를 31왕조로 구분하여 역사서를 저술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다.

지금 나누는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의 구분은 마네토의 작품이다. 마네토의 기술에 의하면 BC 2700년 무렵 고왕국의 제3왕조는 이집트를 통일하여 멤피스에 수도를 정한다. 그리고 조세르 왕 시대에 국력이 신장되어 최초의 석조 피라미드를 사카라(사카라는 6km에 이르는 넓은 지역으로 피라미드 콤플렉스를 중심으로 왕위 즉위 기념 축제를 위한 일종의 신전)에 건축한다. 그 규모는 동서 121m, 남북 109m, 높이 60m이다. 그 뒤의 왕들은 이것을 모방하여 피라미드로 왕의 무덤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제4왕조는 BC 2600년 무렵 스네프루 왕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 왕조는 남쪽으로 누비아, 동쪽으로 아시아, 서쪽으로는 리비아까지 나라를 확장했다. 스네프루 왕은 마이둠 피라미드·굴절 피라미드와 그 뒤 다슈르의 저경사(低傾斜) 피라미드를 건축했다. 그의 아들 쿠푸왕은 기자에 대형 피라미드를 세웠다. 쿠프왕에 이어 카프레·멘카우레 등의 왕들도 각각 피라미드를 건설했는데, 이들이 건설한 것이 기자의 피라미드들이다.

제4왕조의 신앙은 라(Ra; 太陽神), 즉 태양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왕가의 신앙이 동시에 국가의 신앙이 되었다. 또한 이때 미이라를 만드는 기술도 생겼을 것으로 추정한다. 제5왕조는 BC 2450년 무렵 우세르카프 왕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나스 왕의 피라미드에는 사후 왕의 안녕과 영생을 기원하는 피라미드 교서가 내부에 새겨져 있다. 제6왕조 페피 2세 시대는 왕권이 쇠약해져 지방 호족과 고관이 권력을 장악하다가 BC 2263년 무렵 몰락하였다. 제3~6왕조를 고왕국 시대 또는 피라미드 왕조 시대라고 한다.

제3왕조의 대표적 파라오는 조세르다. 이 이름의 뜻은 ‘신성한 자’를 뜻한다. 또한 조세르 왕은 ‘신들의 조합보다 더욱 신성한 자’로 불리기도 한다. 조세르 왕의 통치 시절에 이집트에는 임호테프라는 재상이 있었다. 임호테프의 의미는 ‘가득 차서 오는 자’로서 “하 이집트 왕의 상서, 상 이집트 왕 바로 아래의 수석, 대왕궁의 행정관, 세습 귀족, 헬리오폴리스의 제사장은 조각가요, 돌 항아리 제작자”라고 기록된 초석이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임호테프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모르는 고왕국 시대의, 천재 재상이며 불멸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임호테프가 만든 조세르 파라오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60m도 넘는 여섯 개의 거대한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장방형 공간(555m X 278m)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이 피라미드는 요철부가 있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성벽의 높이는 대략 10m 정도이다. 성곽은 사방 측면에 14개의 출입구가 있었으나 폐쇄되어 있으며, 지금은 남동쪽에 입구 하나만 열려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계단식 피라미드가 보인다.

사람들은 흔히 피라미드라고 하면 사각뿔 모양을 갖추었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처음부터 피라미드가 사각뿔 모양이 아니었음을 이것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아마 처음의 파라미드는 그냥 흙벽돌을 쌓아 올린 형태, 즉 마스터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계단식 피라미드가 생기게 되었고, 더욱 발달된 것이 기자에서 볼 수 있는 사각뿔 모양의 피라미드이다.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흙벽돌 피라미드에서 석조 피라미드로 넘어가는 시기를 알려주는 피라미드의 나침반이다.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 남쪽에 우나스 왕의 피라미드가 있다. 우나스 왕은 제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이다. 당시 파라오의 힘이 약화되어 우나스의 파라오는 그 규모가 기자의 피라미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가 중요한 것은 피라미드 안에 그려진 그림과 글자 때문이다. 사막에서의 수렵 장면, 사람들이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 고관들의 행렬, 작업 중인 금 세공자들, 기근에 희생된 초췌한 사람들, 멀리 남쪽 아스완에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원기둥들을 배로 운송하는 장면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피라미드의 비밀들을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피라미드 속에 나오는 여러 가지 상형문자들로 인하여 당시 정신을 어렴풋하게 추측할 수 있다. 즉 부활신앙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나스 파라오 피라미드에 있는 기록들의 중심 테마는 우주의 낙원들을 향해 떠나는 파라오의 여행, 이승 세계에서의 영혼의 변신과 항해, 깨달음의 주문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빛의 존재로의 변화들이다.

마스타바라는 말은 아랍어로 ‘긴 의자’를 뜻한다. 이것은 무덤들이 늘어진 평행 육면체 형태의 긴 의자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마스타바는 두 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 머리가 안치된 부활의 방과, 그리고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제실로서 산 사람에게 개방된 방이다. 즉 죽음의 세계와 산 사람의 세계가 만나는 방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유명한 마스타바는 티의 마스타바, 프타-호테프와 아크헤트-호테프의 마스타바,메레루카의 마스타바이다. 마스타바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파종하는 그림은 장례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오시리스제라 할 수 있다. 씨앗은 죽는 것 같지만 속에는 부활의 싹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스타바의 그림은 신에게 바치는 제사의 행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태고적부터 아피스를 숭배했다. 그러면 아피스는 무엇일까? 고대 이집트의 황소신을 말한다. 이집트에서는 많은 동물들을 신으로 숭배해왔는데, 그중 아피스는 멤피스에서 숭배되어왔다. 아피스는 오시리스와 결합하여 세라피스라고 하였고, 지하에 조영된 널방을 ‘세라페움’이라고 한다. 이집트에서 황소는 풍요와 힘과 왕권의 상징이다. 아피스는 멤피스의 주신 ‘프타’의 화신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프타는 테 없는 푸른색 모자를 쓴 인간의 형태로 표현된다. 아피스는 또한 나일강과 범람의 신 하피의 현신이다. 테베의 합셉슈트 장제전에 규암 부조가 있었는데 지금은 카르나크 야외 박물관에 이전되어 있는 부조를 보면 합셉슈트 기념 축제 모습의 부조가 있다. 이 부조에는 헤브세드 축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부조에서 아피스는 파라오의 즉위 30주년 기념제인 헤브-세드 축제에 참석하여 파라오와 나란히 달리기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아피스는 파라오의 살아있는 화신인 세 동물, 즉 매, 사자, 황소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집트 신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피스는 죽은 왕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들의 신인 오시리스가 되었고, 오시리스의 자격으로 사카라의 웅장한 무덤에 매장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피스는 한번에 한 마리밖에 존재할 수가 없다. 아피스가 죽으면 아피스를 찾기 위해 멤피스의 사제들이 각지로 파견되어, 죽은 아피스가 환생되었음을 입증하는 특별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송아지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 신체적 특징은 이마에 하얀 역삼각형 무늬가 있고, 어깨에는 독수리 비슷한 하얀 무늬가 있으며, 엉덩이 근처에는 매와 비슷한 무늬가 있고, 꼬리에는 털이 술 모양으로 더부룩하게 나 있고, 혀에는 풍뎅이를 닮은 무늬가 있는 것이다.

멤피스의 사제들은 이런 신체적 특징을 가진 송아지를 찾으면 멤피스의 거대한 프타 신전 경내에 마련된 ‘아피스의 집’까지 개선행진을 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황소는 생명을 다할 때까지 이집트 신에 어울리는 화려한 치장을 하고, 정기적으로 출현 창구에 나타나 청원자들을 맞는다. 황소가 죽으면 멤피스가 내려다보이는 모래 언덕 등성이의 세라페움까지 장엄한 장례 행렬을 벌이고, 왕에 어울리는 매장을 하였다. 아피스의 유해는 관리들이 바친 스텔라와 우샤브티, 즉 작은 조각상을 비롯한 부장품과 함께 둥근 천장을 씌운 널방에 묻혔다.

아피스 숭배는 헬레니즘 시대까지 계속되다가 세라피스 숭배로 바뀌었다. 출애굽기 14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비하히롯은 바로 황소에 대한 제사 지내는 곳을 말하는데, 헬라어로 번역을 한다면 세라피스가 되는 것이다. 홍해 주변에서 황소에게 제사 지냈던 곳을 찾는다면, 그곳을 홍해 도하지로 추정할 수 있다.

 

김용규 목사
령천교회 중동 선교사
크리스찬 해피투어 중동 선교사
성지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