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14장 청소년 우울증 이해(2)

청소년기의 우울증은 발달심리학적 차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청소년기는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과제의 부담과 그에 따른 심리적인 압박감, 그리고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심리적 에너지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그들은 정신적인 힘을 얻지 못하거나 마음의 출구가 없는 것, 앞날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등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는 청소년기의 특징적 경험이므로 이를 고려하여 청소년 우울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1. 청소년 우울증의 특징

청소년의 심리는 우울증과 어떤 관련성을 가질까. 청소년의 자아 정체성, 그리고 분리성과 독립성 등이 우울증 유발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의 우울증은 성숙한 자기감 또는 충분히 발달된 정체감은 타인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역량, 그리고 그 타인을 분리된 자율적 존재로 인정하는 것, 그 타인과 관계 맺는 능력 등과 관련된다. 따라서 청소년기의 우울증은 일정한 특징이면서 유발의 원인이 되는 측면이 있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자존감과 열등감에 관련되는 우울증

청소년 시기는 정체감에 따른 자존감이 중요시된다. 청소년기는 유달리 존재의 가치감이 인정되고 수용되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수용적이지 않을 때 즉각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이때 존재의 가치감은 자신감과 열등감의 문제로 이어진다. 존재의 가치감을 느낄 때 자신감을 갖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열등감을 갖는 점에서다. 이런 가치감이 그대로 학교 성적이나 이성교제에서 발휘되는 편이다. 자신감이 강한 청소년은 학교생활에서도 이성친구를 사귀는 데서도 원만한 행동을 보인다.

특히 열등감은 대인공포증이나 우울증으로 발전되는 수도 있다. 이 시기의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은 청소년 우울증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들의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은 반드시 다른 방어기제의 사용을 가능하게 만들거나 다른 증상을 유발하기 쉽다. 즉 그들이 외현적으로 주장하는 자부심은 방어의 결과이며, 그들의 자존감은 매우 낮고 자기개념도 매우 부정적이다. 따라서 자존감과 자기의 가치감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자기개념을 일단 긍정적으로 증진시키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치료 초기에 자기 효능감을 증진시켜야 우울증의 경계와 방어를 완화시킬 수 있으며 보다 직접적 치료 개입이 가능하다는 지적은 이런 점에서 매우 타당한 것이다. 결국 청소년 우울증은 다른 심리장애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2) 수용성과 거부감의 문제로서 우울증

수용성과 거부감은 청소년기를 특징을 짓는 양면적 요인이다. 청소년기에는 사회 조직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이유 없는 반항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이상향을 꿈꾸는 시기이지만 사회는 비현실적 모순으로 가득함을 느끼는 데 따른 심리적 반응이다. 이 갈등이 심화되면 청소년은 탈출구의 하나로 음주, 흡연, 마약 및 습관성 약물, 폭력, 성-유혹으로 자기의 행동개시적 성향을 보인다.

반면 청소년은 수용성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열의를 보인다. 즉 자신의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면의 개발을 위하여 외부의 것을 열심히 수용하는 현상이다. 이에 대해 우울성 성격자들이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부정적인 신념과 태도에 직접 도전하는 것에 따르는 위험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해의식이나 피해망상이 있는 내담자에게 그 신념과 망상 자체를 수정하려는 시도를 하면 강한 저항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개념과 자존감의 문제를 먼저 다루면 그리 큰 저항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자존감과 자기개념을 치료의 초점으로 삼는 것은 내담자의 저항을 줄이면서 동시에 우울의 핵심 원인을 다루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자존감 관련 책들을 참고하여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자기개념을 긍정적으로 확립하는데 노력한다면, 우울증을 비롯한 수많은 심리장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자존감 및 자기개념 증진에도 인지행동적 접근이 유용하게 사용된다. 치료자와 내담자는 한 팀이 되어 자신은 완전한 실패자이며 누구도 자신을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흑백논리와 과잉일반화된 생각의 타당성을 연속성과 현실검증을 통해 검토하고, 자신의 장점을 찾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훈련을 진행함으로써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3) 감정의 유동성과 존재불안과 관련되는 우울증

청소년 우울증은 감정의 유동성과 존재 불안과 관련된다. 청소년은 감정이 강하고 그 감정은 또한 유동적이다. 청소년은 분노, 애정,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을 강하게 나타낸다. 이들은 미움도, 사랑도 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좋아하고 맘에 드는 것에는 열정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반면, 싫어하는 것에는 강한 증오감을 나타낸다. 이 강렬한 감정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스스로 편견을 일으킨다. 괜한 오해가 그것인데, 청소년은 때로 자기는 실제 자신의 존재보다 오해받고 있다고 느끼기 쉽다. 아무도 자기를 정확하게 평가하거나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어떤 청소년은 때로 유달리 소리를 지르거나 연예인에게 환상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병적이라 할 만큼 지나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청소년 특성에 기초한 일시적 감정에 불과하다. 이들은 대개 감정이 유동적이고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에 정서적 불안을 경험하는 편이다. 청소년은 어떤 때 자신감을 갖다 어떤 때는 열등감을 갖는 등 감정의 편차가 많은 편이다. 이는 청소년의 우울증이 존재 불안의 특징을 갖는 이유이다.

존재의 불안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기 존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감정의 유동성이 존재 불안으로 이어지는 점에서 청소년의 존재를 의심하는 특성은 감정적 유동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청소년기에는 특히 자신을 이해해 줄 친구가 필요하다. 청소년은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상대가 없는 경우에는 폐쇄적인 성격으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다.

2.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의 관련성

청소년 우울증은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성이 논의된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은 자살시도와 관련하여 그 선두에 선다는 점에서다. 이는 청소년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우울증에 시달리는 청소년의 경우 자살을 시도한다는 점에서다.

1) 자살의 원인이 되는 우울증

우울증(depression)은 자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거의 우울증의 상태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점에서다. 우울증과 자살의 문제와 관련해, 과거 일어난 자살시도 문제를 연계하여 이해할 수 있다. 정신과 질환의 관련성을 종합해 보면, 자살 사망자의 95%가 정신질환을 하나 이상 갖고 있으며, 이 중에 가장 흔한 진단이 주요 우울장애(59-87%)였다.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95% 이상이 자살 당시 심리 및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음이 드러났지만, 그 중에서도 우울증이 80% 이상을 점유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우울증은 여러 정신질병 중에서 자살률을 가장 높게 점유하는 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살에서 우울증을 고찰해야 할 이유이다.

2) 자살을 부르는 수단으로서 우울증

우울증은 자살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는 우울증이 의기가 상실된 기분과 정신운동 저하의 정신적 증후군이라는 데서 이해된다. 우울증은 울증 또는 울병이라고도 하며 대개 심리적으로 절망감, 즉 ‘희망 없음’이 주된 특징으로 나타나며, 신체적으로는 불면증이나 체중 감소를 수반한다.

우울의 상태를 두고 프로이트(S. Freud)는 개인의 분노가 내면으로 향한 것으로, 칼 융(C. G. Jung)은 정신에너지의 고갈로 표현한다. 프로이트에게 분노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특성이면서 죽음도 불사하는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다. 칼 융에게 우울증은 건전한 정신적 에너지로서의 작용을 멈추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우울증에 대한 정의는 핵심적 특성을 제시한다. 우울증 상태에서는 완전히 부정적이 되어 의기소침해지고, 정신에너지가 고갈된다는 것이다.

우울증 상태에서 자살자는 절망감, 허무감을 느끼며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는 마치 일련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연결시키는 것 같기도 한데, 자살 당사자는 우울 상태에서 분노가 유발되면 절망감으로 이어지고, 절망감은 다시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과정을 겪는다. 이 절망감은 다시 다르게 변하지 못하도록 마지막 슬픔이 활동력을 심각하게 저하시키고 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3) 청소년이 빠져들기 쉬운 우울증

우울증은 청소년들이 빠져들기 쉬운 측면이 있다. 과도한 과제에 비해 감당해낼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급격하게 부족해지는 것도 문제이다. 우울증은 결코 간단한 증상이 아닌 것이다. 인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 하면 우울한 상태에 빠진 당사자조차 그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겠는가.

그들은 왜 이런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괴로워한다. 아마 그들은 지금의 괴로움이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른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이런저런 노력을 해도 쉽게 회복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그들에게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앗아가고 심각한 절망감에 압도되게 만든 결과일 것이다.

우울증은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더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이 자기존중감 상실과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할 때, 여성이 남성보다 더 취약함을 의미한다. 주요 우울 장애 시점 유병률이 남자가 2-3%인데 비해 여자는 5-9%였고, 평생 유병률은 남자가 5-12%이지만 여자는 10-25%에 달했다. 그 외에도 여러 역학적 연구에서 우울증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2배 정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런 지표와 달리 자살 사망률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앞서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여성이 자살시도를 더 많이 하지만 사망에 ‘실패’하는 비율이 높은 데 비해, 남성은 더 사망에 ‘성공’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아가 우울증과 관련한 자살시도는 우울증상이 지나친 경우 오히려 적지만, 우울증이 회복되는 시기에 더 많아진다. 이는 우울증이 너무 심하면 ‘죽을 힘조차 없는 상태’가 되지만 어느 정도 회복 상태에서는 그 힘이 생긴다는 역설이다.

3.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의 위험성

앞에서 우리는 우울증과 자살의 관련성을 살펴보았다. 우울증은 정신에너지가 급격하게 감소되어 자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다. 그러면 에너지가 급격하게 감소되기 쉬운 청소년기에는 우울증이 유발되어 자살이 시도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우리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어떤 심리를 갖고 있는가?’ ‘그들은 왜 자살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어떤 심리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하는가?’ 등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정신적 에너지의 감소와 관련하여 우울과 자살이라는 위험성에 대하여 몇 가지를 정리하려고 한다.

1) 사랑의 실패에서 시도되기 쉬운 자살

사랑의 실패는 청소년에게 갑자기 정신에너지를 급격하게 감소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사랑의 실패는 위축된 사랑, 수용과 의존과 협력에 대한 욕구의 좌절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리고 사랑에 관련되어 자살하는 경우는 사랑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의 실패 때문에 죽는 사람들은 자살이야말로 사랑의 진실을 증명하는 최후의 방법이라 믿는 점에서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에도 사랑의 문제로 인한 자살은 여전히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프랑스 혁명 때 연애로 인해 일어난 유명한 자살을 예로 들 수 있다. 소피 모니에의 자살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된다. 대웅변가이던 미라보와의 파란만장한 관계로 유명했던 그녀는, 미라보가 죽자 마지막 연애가 끝났으므로 자기의 앞날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미라보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집에 돌아와 미라보의 초상을 손에 쥐고 자살했다. 자살 도중 마음이 변할까봐 그랬는지 두 발을 쇠사슬로 침대 기둥에 매어둔 상태였다는 점이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이런 사랑과 관련된 것들에는 연애의 실패가 일차적이지만 사랑과 애정의 실패, 나아가 더 넓은 의미의 사랑으로 이해되는 진정으로 자신을 수용하지 않고 협력해 주지 않는 사람들에서의 좌절된 심리도 해당되는 측면이 있다.

2) 중요한 관계의 단절에서 시도되기 쉬운 자살

중요한 관계의 단절은 청소년에게 극심한 슬픔을 유발시킨다. 이런 경우에 청소년은 급격한 에너지의 감소로인해 우울해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기대어 살던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겉잡을 수 없는 심리적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전술한 사랑의 관계와 그 일면이 어느 정도 중첩되는 측면이 있지만, 연애와 사랑의 문제라면 연애를 뛰어넘어 상당히 의존하던 사랑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계는 정신적으로는 어느 정도 협력과 양육에 대한 욕구의 좌절과 관련된 것이기에 대개는 심리적인 선행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치명적으로 자신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 집단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 등이 관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관계 단절은 대개 심각한 소외를 초래한다. 이때 당사자는 인간이 원초적으로 갖는 외로움을 깊이 경험한다. 이때 자신은 혼자라는 소외와 외로움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것이다. 여기는 함께 살아가던 배우자의 죽음이나 가족의 사별이 대표적이다. 임상 경험에 의하면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6개월 후 모친이 이어서 자살한 경우가 있었다. 아마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이 없이 혼자 살아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뒤를 따라서 갔을까 이해하면서도, 남은 가족을 돌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가누지 못한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도 이런 자살은 흔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일어나고 있음에 유의해야할 것이다.

3) 수치와 모욕에서 시도되기 쉬운 자살

극심한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 정신에너지가 감소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극심한 우울을 경험하게 되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청소년이 극심한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 심리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어 평소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살은 심리학적으로 공격받은 자아상과 수치, 패배, 모욕과 불명예에 대한 욕구의 좌절과 관련된 문제로 볼 수 있다.

수치와 모욕을 치욕이라 한다면 여기에는 명예훼손이나 불명예 또는 중상모략을 당하는 것을 상정한다. 개인은 이런 치욕의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행동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 하나의 방법이 자살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살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불명예를 씻어준다고 생각하게 되는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전에 일어난 유명 연예인의 자살도 악플과 관련하여 치욕의 측면과 상당히 관련되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가지 누명이나 억울한 사건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명예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음거리로 만들어 조롱하고 야유를 보낸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힘을 내기가 어려워 보란 듯이 자살을 통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심리가 유발되고 급기야는 자살을 감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1960년대 그리스 과학자 지시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자살했다. 그는 납을 원료로 한 도료를 사용하여 파르테논 신전을 보수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신문에서 그 제안을 비웃었기 때문에 자살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정확한 것이었고 오늘날 전문가들은 그가 제안했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4) 부당한 대우를 받은 상황에서 시도되기 쉬운 자살

청소년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정신적인 에너지가 급격하게 감소될 수 있다. 그러면 청소년이 우울을 경험하게 되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초래될 수 있다. 대체로 부당한 대우는 억울하다는 특성과 함께 대개 사회질서와 관련되어 일어나는 편이다. 자신의 과오를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여 법적인 책임을 지거나 사회로부터 심각한 침해를 당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청소년의 경우에는 가정과 학교 등에서 이런 부당한 대우가 경험될 수 있다. 그러면 행동으로 항거하려는 자살이 초래될 수 있다.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는 자살에는 와해된 조절, 예측 가능성과 정리, 그리고 성취와 자율성, 질서를 이해하는 데서의 좌절과 관련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왕이나 대통령,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있는 편이다. 로마의 웅변가 라비에누스 티투스는 몇 년간 몰래 당시 역사를 쓰고 있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신하에 의해 고발되었다. 원로원은 그가 써놓은 것들을 모두 불태워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때 라비에누스는 자신이 저술한 것을 잃어가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가족묘지로 가서 자살했다. 사실 이런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여 자살하는 경우를 굳이 먼 역사적 사건을 들추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