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다른 사람들은 배신해도 자신은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주님께 맹세한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예고하신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잠시 후 닭이 세 번 울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고 ‘끝까지 주님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무능하게 느껴져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드로는 비록 주님을 배신했지만, 뉘우침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주님께서 명령하신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한 수제자로 성경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많은 믿음의 후손들은 베드로의 열정적인 믿음 생활과 전도 사역을 본받기를 원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주님과 상관없는 일들을 하고 있음을 볼 때, 마음이 괴롭고 답답합니다. 성경에는 ‘정의’와 ‘공의’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성경 속 ‘복’이라는 단어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의’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들 중 하나는 ‘정의’와 ‘인자’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십일조를 드리면서 정의와 인애를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정의를 지켜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정의를 바르게 할 수 있는지 늘 말씀하십니다.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라(마 23:10)!” 말씀 그대로 ‘랍비’, ‘아비’, ‘지도자’라는 칭함을 받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경고는 교만한 마음으로 그러한 칭호를 추구해선 안 되며, 신자들의 마음 속에 최고의 권위를 갖고 계시는 하나님의 자리를 인간인 종교 지도자들이 차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필자는 오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은 지금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속도를 내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계는 저마다 입으로는 바뀌어야 한다면서도, 실제로는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각 교회는 노회와 시찰에 상회비를 납부합니다. 분명 이 상회비는 성도들의 피와 눈물, 땀으로 젖어 있는 귀한 헌금인데, 바르게 사용치 않고 있음이 안타까워 변화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상회비를 성지순례 명목으로 지출합니다. 정 상회비로 성지순례를 가고자 한다면, 어려운 교회부터 배려하면 좋겠는데, 큰 교회 목사와 장로들이 이를 다 꿰어차고 여행을 떠납니다. 다녀왔으면 다음에는 다른 분이 가도록 배려해야 마땅한데도, 이미 갔던 분들이 다시 갑니다.

교회학교 선생님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피곤함을 뒤로한 채 식당 일로, 간병인으로, 요양사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 번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수입을, 학생들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맛있는 피자, 통닭, 아이스크림, 그리고 재미있는 영화 등 다양한 요구를 채워 주지 않으면 교회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적은 수입이나마 주님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차라리 찬양대나 식당 등 한 곳에서 오래도록 모범적으로 수고하신 분들을 선발하여 성지순례를 가도록 배려했으면 좋겠습니다. 돈 많은 분들은 적은 경비를 들여 쉽게 성지순례를 하고 있지만, 숱한 교인들이 경비가 없어 성지순례를 가 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상회비를 아름답게 사용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장로회연합회는 매년 여름 수련회를 엽니다. 참석하시는 장로님들은 늘 참석합니다. 막대한 경비를 사용하여 수련회를 하고 나면 변화가 있어야 할 텐데,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수련회에서 습득한 지식과 영감을 지교회에서 나눠야 하는데도, 전혀 그러한 기색이 없습니다. 혼자 은혜받고 왔다고 말할 뿐입니다. 차라리 그 경비를 교회학교에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총대 파송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작은 교회 또는 노회에서 크게 발언하지 않는 분들은 총대로 선발되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대개 큰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서로 쪽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름을 적어 냅니다. 이러고도 지도자라 말할 수 있습니까? 총회에 참석하던 사람만 매번 참석합니다. 참석했으면, 한국교회 앞에 문제들을 제기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 매번 참석만 하고 총대로 갔다 왔다고 어깨에 힘만 줍니다.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총대를 뽑는 일에 변화를 기대합니다.

항존직인 장로와 안수집사, 권사 피택선거 때도 참으로 가관입니다. 선거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나, 누구를 찍으라고 메모지를 만들어 돌리지 않나, 밥을 사질 않나! 정말 교회가 성전인지 오락장인지 구별이 되질 않습니다.

담임목사 청빙 과정에서도 총회법을 준수하지 않고, 개인의 힘으로 자신의 세력을 키워서 밀어붙입니다. 제직회와 공동의회를 무시하고 예산 승인도 없이 마구 집행합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데도 원로목사나 원로장로, 은퇴장로와 시무장로 모두 구경만 합니다. 심지어는 잘못된 길에 합류합니다.

교회 직원들을 채용하는 과정에서도 가까운 사람들을 세웁니다. 진언하거나 눈 밖에 난 이들을 무 자르듯 잘라 버립니다. 성경이 일러 주는 방법대로 정의롭고 공의롭게 인사를 추진해야 함에도, 말 잘 듣는 세력들만 키워내 인사를 그르치며 교회를 좌지우지합니다.

교회는 수많은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도자들께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겨 그들을 위해 교회를 운영해야지, 지도자들을 위한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교회에 오면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얹어가는 것 같습니다.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고 갑니다.

그리고 교계 신문이나 매스컴을 보면, 정말 주님을 위한 언론인지 통 분간을 할 수 없습니다. 무슨 신학대 총회, 체육대회, 노회, 총회 행사들로 지면이 가득합니다. 목회자 연금 문제로 늘 시끄럽습니다. 대형교회 비리들이 기사화되어 연일 말썽입니다.

부흥회를 하면 주님은 부재중이고, 부흥사 얼굴 알리는 일에만 열중합니다. 부흥사들이라면 세상에서 찌든 성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 지친 성도의 영적 성장을 위해 답답하고 막혀 있는 것들을 뚫어 주는 설교를 해야 하는데, 담임목사 칭찬으로 일관하며 헌금을 강요합니다. 거기에 자신의 사례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총회와 노회는 변화를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기득권을 내려 놓지 못하고 자신들을 위한 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눈이 멀어 법을 개정하지 못하듯, 교계에서도 총회나 노회가 자기 밥그릇에만 급급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발 성도들을 위해 발 빠른 행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 살면서 각종 ‘갑의 횡포’ 속에 한 주일을 살아온 그들을 위해, 교회만 오면 행복해지는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목자는 말씀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 주셔서, 성도와 기쁨에 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모든 기득권을 내려 놓고, 조용하고 겸손한 변화를 이뤄내시길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