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희 대표회장(왼쪽)과 이영훈 대표회장(오른쪽)이 각자 교차 서명한 공동선언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두 대표회장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색 넥타이를 메고 등장했다. ⓒ이대웅 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이영훈 대표회장과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양병희 대표회장이 ‘서울시의 종교편향 시정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CCMM빌딩 국제홀에서 개최했다. 양 기관 대표회장의 공동 기자회견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회견은 김훈 한교연 기획홍보실장 사회로 국민의례와 양 기관 대표회장의 인사말, 여운영 한기총 교육국장의 봉은사역명 제정 경과보고, 성명서 낭독 및 서명,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먼저 인사한 양병희 대표회장은 “곧 삼일절 제96주년을 맞는데, 당시 불교·기독교·유교 등 종교 지도자들을 주축으로 민족대표 33인이 탑골공원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며 “이처럼 종교는 국민 속에서 함께했고, 국민들에게 봉사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두 기관이 함께, 서울시에서 이제라도 역명을 바꿔주기를 요청하고 국민적 여론 환기시키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했다.

양 대표회장은 “특정 종교 사찰의 이름으로 역명을 정했다 해서 기독교가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으로 비칠까 심히 염려스럽다”면서도 “지하철역명에 특정 종교 사찰의 이름을 쓰는 것은 서울시가 정한 원칙에 위배되고, 다종교 사회에서 서울시의 종교편향적 행정으로 종교 간 갈등을 빚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어떠한 종교와도 평화로운 대화를 원하고 있고, 국민통합을 위해 손잡고 협력할 것”이라며 “따라서 서울시가 이제라도 ‘봉은사역’의 명칭을 철회하고, 모든 시민에게 친숙하며 정서적으로 인정되는 ‘코엑스역’으로 재명명해줄 것과 종교 간 갈등을 피하기 위해 봉은사역을 병기해줄 것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이영훈 대표회장은 “양병희 대표회장님이 잘 말씀해 주셨다”며 “이는 분명 종교 간 갈등으로 몰아선 안 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찍이 인천국제공항이 세워질 때 같은 시행착오가 있었다”며 “당시 ‘세종공항’이라는 이름을 추진했지만, 인천에 있는 공항을 인천과 관계없는 이름으로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전 시민들이 반대하고 서명운동을 해 바뀐 사례가 있다”고 했다.

이 대표회장은 “마찬가지로 ‘봉은사역’도 서울시민 전체가 ‘코엑스역’을 더 친숙하게 여기고 있는 게 사실이고,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으로 ‘코엑스역’을 지지하고 있다”며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많은 국제회의가 열리는 역 이름을, 멀리 떨어진 사찰 이름으로 정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라고 했다.

그는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특정 종교 사찰의 이름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며 “여기에 코엑스가 일부 토지를 제공하면서 시민들의 편의를 제공하기까지 했는데, 120m 떨어진 곳 이름을 붙여 눈앞에 있는 ‘코엑스’라는 이름을 제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양병희 대표회장(왼쪽)과 이영훈 대표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공동성명서 “서울시 역명 제정 원칙에 어긋나”

이후에는 양 기관 대표회장들이 공동성명서를 낭독했다. ‘서울시는 지하철 봉은사역명을 철회하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서에서는 “서울 지하철 9호선 2단계 구간 929정거장 명칭을 ‘봉은사역’으로 확정한 것은 행정원칙과 시민 정서를 무시한 잘못된 결정이므로 즉시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서울시가 ‘봉은사역’으로 명명한 곳은 서울 코엑스 사거리로 봉은사와는 120m나 떨어져 있고, 더구나 역이 인접한 코엑스는 매일 10만여명이 드나들고 국제적인 회의와 박람회 등이 연간 3천 건 넘게 열리는 주요 사회기반시설”이라며 “우리는 서울시민 모두가 다 아는 지명을 놔두고 특정 종교 사찰의 이름을 역명으로 결정한 서울시의 조치를 납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서울시의 역명 제정 원칙에는 ‘역사에 인접하고 있는 고적·사적 등 문화재 명칭’, ‘이전 우려가 없고 고유명사화된 주요 공공시설물’, ‘지역을 대표하는 다중 이용시설 또는 역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는 지역명칭’, ‘시설물이 대표 지역명으로 인지가 가능한 시설명’을 쓰도록 규정되어 있다”며 “그러나 봉은사는 고적이나 사적, 문화재로 등록된 사찰이 아니므로, ‘코엑스역’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두 대표회장은 “우리는 오늘 한국 기독교를 대표해 서울시에 봉은사역 역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특정 종교와의 갈등이나 종교편향으로 비치는 것을 원치 않고, 오히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임을 거듭 밝힌다”며 “코엑스와 기독교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서울시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코엑스를 두고 왜 120m나 떨어진 봉은사를 역명으로 정했는지 타당한 근거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밝혀줄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우리는 서울시민을 위한 서울시의 행정에 어떤 종교든 개입하거나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므로, 작금에 서울시가 역명에 특정 사찰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종교편향 논란에 단초를 제공한 것을 우려하며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서울시가 이제라도 문제가 된 ‘봉은사역’명을 폐기하고 공식 역명을 ‘코엑스역’으로 하되 봉은사를 ‘병기’하는 것을 제안하며, 서울시가 더 이상의 종교 간 마찰과 갈등을 피하고 서울시민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성의를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고 요청했다.

“법적 대응 지원, 서울시 상대 소송, 행정불복종 운동 전개”

이후 질의응답에서 향후 대처 계획에 대해 양병희 대표회장은 “‘봉은사역’명이 철회될 때까지 범기독교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서울시를 항의 방문하고, 법적 대응을 진행 중인 강남구교구협의회를 지원하며, 끝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과 행정불복종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해당 지하철역 인근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가두 캠페인과 역명 변경 홍보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이영훈 대표회장은 “관계 부처에 공문을 보내고, 두 기관이 공동으로 보조를 맞춰 저희의 뜻을 강력히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나친 대응 아니냐는 질문에는 “지난해 말 애기봉 등탑 설치 때도 나왔던 이야기가 ‘남남갈등이 비화된다’는 것이었다”며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은 강남구민들 중 30% 정도가 기독교인들인데, 이들의 입장을 대변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기독교의 입장으로서가 아니라 서울시민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이라며 “서울시민들에게 ‘코엑스역’과 ‘봉은사역’ 중 어느 것이 좋은지 물어 보라”고도 했다.

한기총과 한교연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에 대해, 서로에 대한 입장이 변화한 것이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양병희 대표회장은 “한기총과 한교연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며 “넘지 못하는 문제(이단)가 있었지만, 이 대표회장님의 리더십과 함께 잘 해결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고 했다. 이영훈 대표회장은 “곧 하나가 되리라 믿고, 성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NCCK와 함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양 대표회장은 “구체적인 협의는 하지 않았다”면서도 “한교연에 NCCK 소속 교단이 적지 않다”고 답했다. 또 “한기총과 한교연이 함께한 만큼, 우리 한국 교계의 보수와 중도 전체를 망라해 의견을 모았다고 생각해 달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