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담임).

저는 요즘 자꾸 “서로 장례 치러 줄 벗”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인생 먼 길 가다보면 우리는 이러저러하게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사람이 평생 의미 있는 만남을 이루고 가는 상대는 200명이 안 된다고 합니다.

물론 스치는 사람이야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나누고, 삶의 가치를 공유하고, 내 삶에 영향을 끼쳤고, 헤어지면 슬프고 가슴 아픈 사람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렵게 만나서 공들여 관계를 이루다가도 한순간에 그 모든 것을 후루룩 버리기도 합니다.

실망해서, 분노가 일어나서, 싫어져서, 보기조차 싫어서, 또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아서, 더 나아가 그가 망하거나 다시는 그와 이 세상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생겨, 그 사람을 내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고 또 지난 만남을 후회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내 마음을 나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평생 좋을 것 같고, 또 내게 있어서 기쁨이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싫어질 줄도 몰랐고, 또 정말 관심도 없고 가까워지리라 생각도 못했던 사람이 어느 날 새롭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한계와, 불가측성입니다.

삶이란 버려야 할 것도 있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사람과 관련해서는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 중에 한때라도 고마웠던 사람, 오래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 내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사람, 선한 일을 위해 함께 애를 썼던 사람, 그의 실망스러움이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내가 좋아했던 사람……. 이러한 사람들은 버리고 싶을 때 버리지 말고, 그냥 묻어두고 미루어두었다가 다시 꺼내어봅시다.

어느 순간, 시간의 빛바램과 열정의 식어짐을 거쳐, 우리는 같은 내용을 다시 평가하게 됩니다. 빛나는 색채와 열정만이 우리를 아름답게 가꾸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희미한 생각의 잔재와 추억의 빛깔과 지난 시간의 회상은, 우리 마음에 의외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제 이만큼 살았다면, 피차 누군가 먼저 떠나면 서로를 위해 장례 때 슬퍼 배웅해줄 수 있는 벗일 수 있도록, 내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것 버리고, 끝까지 내 곁의 사람 버리지 않음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