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SNS 스타’ 김관성 목사(덕은침례교회)가 지난해 <본질이 이긴다>에 이어 <살아 봐야 알게 되는 것>을 펴냈다. 김 목사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이 책에서 ‘함께 길을 가는 아우에게’라는 부제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만나는 삶의 국면들에 대하여 부족한 듯” 형으로서 진심을 담아 따끔한 질책과 함께 ‘하늘 위로’를 건네고 있다. ‘눈물과 한숨 뿐인’ 삶일지라도 ‘영광과 박수를 받으며 가는 길’과 다르지 않고, 그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뉨을 믿는다는 김 목사를 지난달 28일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책에 ‘그래도 감사하라’는 격려와 ‘함부로 감사하지 말라’는 지적이 함께 나오는 이유에 대해 김 목사는 “감사를 너무 쉽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감사의 고백은 어떤 상황을 통과하고 깨달았을 때 진심으로 쏟아놓는 것인데, 현재 겪고 있는 국면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도 ‘그럼에도 감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동의되지 않고 진심 어린 감사가 터지지 않은 가운데 형식적으로 쏟아놓는 감사들이 많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대웅 기자

-첫 책 이후 1년 만에 두 번째 책이 나왔는데요. 할 이야기가 많으셨나 봅니다.

“특별한 동기는 없었습니다. 하루는 주일예배가 끝나고 방에 있는데, 요새 청년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도 하고, ‘애들이 이래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떠올랐지요. 그래서 1번부터 20번까지 써서 SNS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소위 뒤집혔어요(웃음). 공유가 400여 건 정도로 순식간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질문들이 댓글로 달렸습니다. 글이 더 나오느냐고요. ‘한번 해 보지 뭐’ 하고 다음 날 21-30번을 적어 올렸습니다. 반응이 계속 좋았어요. 그렇게 달리긴 달렸는데, 사실 밑천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멈출 수도 없었지요. 적정선에서 타협해야겠다 싶어, 50번까지는 ‘쥐어 짜내서’ 썼습니다. 그런데 13곳의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원고를 달라구요.

처음엔 청년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할 말이 적어지니 대상 연령층이 30-40대로 확대됐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저보다 어린 기독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게 됐지요. 제의가 계속 오니 어떤 식으로든 책을 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51번부터는 쓸 게 없었습니다. 변명은 해야겠기에 책에서 말하겠다고 던져놓고 멈췄지요(웃음). 그 사이 출판사와 계약까지 됐으니 죽으나 사나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100번까지 채워 책으로 내게 됐습니다.”

-책의 대상이 ‘함께 길을 걷는 아우에게’인데, 청년 사역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분 나쁘겠지만, 솔직히 요즘 청년들 사는 게 한심했어요. 조금 하다 쉽게 포기하고, 삶의 어려움이 다가오는데도 철학적·신학적인 깊은 고민 없이 상황들을 회피한 채 누리고 웃고 즐겁게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단세포적으로 고민도 없이 사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를 비롯한 이전 세대가 통과해 왔던 삶과는 환경 자체가 다르지만, 생각의 경향이나 삶의 스타일들이 너무 피상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잔소리만 하면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그들도 나름의 고민과 아픔이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위로도 하고 싶었지만, 뻔한 이야기로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입니까(웃음)? 뻔한 이야기들 말고 진짜 공감할 수 있고, 진짜 아팠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끄집어내 그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책에는 잔소리와 위로, 신경질과 격려, 그런 것들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실수를 통해 배우고 깨달았던 것들, 아프면서 형성되고 깨우쳤던 것들로 위로하고 잔소리하고, 책망하고 힘도 불어넣고자 했습니다.”

-잔소리를 했는데, 왜 반응이 좋을까요. 청년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이 그렇지 않습니까. 감기 걸려 죽겠다고 하다가도, ‘나는 암’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도 못 꺼냅니다. 제가 겪었던 고난과 아픔의 수준은 또래에 비해 컸습니다. 가정 환경이나 목회 준비, 목회 현장에서 겪었던 일들이나 지금의 현실들도 말입니다. 그런 것들이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을까요. 잔소리지만, 저 사람 말은 들어야겠다는…. 사람이란 다른 이의 암보다 자신의 감기가 더 아픈 법인데, 좋게 봐 주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어르신들이 좀 더 좋아하시는 듯 합니다. 제게 개인적으로 구매를 신청하신 분들 중 청년들은 하나도 없었어요. 대부분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 등 연세 많으신 분들이셨습니다. 나름대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했고 문체도 아우에게 던지는 것처럼 구성했지만, 그 내용들이 오히려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분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깨달을 이들은, ‘밥벌이의 고단함’이 얼마나 고단하고 어마어마한 일인지 아는 연령대일 것 같습니다.

이상주의적이기 쉬운 젊은 층들은 튕겨나가지만,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삶의 깊이를 아시니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하며 공감하시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를 말하지만, 살아 보니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것은 삶의 내용이 아니라 각각 다른 자리로 부름받은 가운데 주어지는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끝까지 참고 버텨낸 자에게 상 주신다’는 메시지들 말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너 한번 읽어 봐’ 하려고 고르시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SNS에 올렸던 글들과 이를 통해 쓴 <본질이 이긴다> 출간이 ‘삶의 터닝포인트였다’는 김관성 목사는 “사람들이 제가 SNS를 많이 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나 열정을 많이 쏟아붓진 않는다”며 “하지만 저는 SNS에 글을 한 번 올릴 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썼고,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최대한 몸부림쳤으며,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을 줄 수 있는 글을 쓰려 했다”고 했다. ⓒ이대웅 기자

-제목이 ‘살아 봐야 알게 되는 것’인데, 미리 알아서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직접 겪지 않고서는 깨닫기 힘든 것도 있을 텐데요.

“신앙인들이 ‘살아봐야 별거 없더라’고 자기 생을 정리해 버린다면, 그만큼 불행한 게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삶의 한 국면마다 의미 없거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은 순간이 없다는 고백이 당연해집니다. ‘별거 없다’는 건 우스갯소리로 하는 거지, 그들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현실이 있지요. <인투 더 스톰>이라는 영화를 보면, 토네이도를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촬영하고 싶어하는 남성이 나옵니다. 그가 욕심을 부리다 토네이도 속으로 카메라를 들고 올라가게 되는데, 붕 떠서 올라가 보니 고요하더라는 겁니다. 이처럼 기나긴 인생을 아프고 힘들고 좌절하고 눈물 흘리고 한숨 쉬면서 통과해 본 사람만이 증언하고 외칠 수 있는 삶의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다 알아듣지 못해도, 언젠가 한 구절이라도 가슴에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을 거라 봅니다. 가 봤던 입장에서 해 주는 이야기들이 삶의 작은 나침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솔직히 말해,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비관론자이거든요(웃음). 1주일만 지나도 (내용을) 다 잊겠지만, 가슴에 스쳐 지나가는 뭔가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관론자시라니, 의외입니다.

“생각보다 비관론자들이 많습니다. 객관적인 사람들이 비관론자가 되지요. 꿈과 비전을 이룬다는 말이 우스운 게, 밑천이 있어야 꿈도 비전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게 현실화되지 못해요. 그런 사람들이 마이크를 쥐지 않으니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비관론자이자 마이너 인생이지만 어쩌다 책을 내고 마이크를 쥐게 돼 막 외치니, 숨어있는 비관론자나 마이너 인생들이 호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비관론자 치고 믿음이 좋으신 편 아닌가요.

“그게 아니라, 제가 겪은 일들을 정직하고 생생하게 이야기할 뿐입니다. 아프고 절망스럽고 기도해 봐야 아무런 도움이 오지 않는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의 가슴 안에, 하나님께서 심어주시는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하나님은 공평하신가요?’라고 물으면 저는 ‘뭐가 공평한가?’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보다 훨씬 부족해 보이는데도 해외 유학 갔다가 아버지 교회 물려받지요. 저는 신대원 학점도 최상위권이었고 공부도 잘했는데, 가는 길은 다 막혀버렸지요.

그러나 하는 일마다 안 되고 바닥으로 내몰린 제가 증언할 수 있는 건, 바닥을 통과한 사람의 심장에만 새겨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그들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과 인생의 깊은 비밀-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제 외침이 ‘인생 별 것 없더라’고 숨죽이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을 뿐,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제 심장 안에 외칠 거리들을 주신 것이 틀림 없다는 확신이 있으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김관성 | 넥서스CROSS | 256쪽 | 12,000원.

-하지만, 목사님처럼 고생과 수고를 이렇게 ‘승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버전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입니다. ‘때가 임했다’고 갖다 붙이는 분도 있는데, 저커버그(페이스북 설립자)가 없었으면 저는 그냥 묻혔을 것입니다. 누군가 저를 ‘페이스북의 최대 수혜자’라고 하더라구요(웃음). 말씀하신 대로 아프고 힘든 게 독(毒)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 해서 목사로서, 신앙양심으로, 제 인생이 하나님과 상관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 제게 그런 말을 해 주곤 했습니다. ‘관성이가 영화 보고 오면 볼 필요가 없다’구요. 제 이야기를 들으면 더 재미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어떤 사실을 표현하고 묘사하면 그렇게 생생하고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달란트라 할 수 있는 이것이, 마이너 인생을 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건 아니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이너 인생이 독이 되어 묻혀버린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진 깨달음이 결코 저보다 깊이가 얕지 않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그들도 가슴에 무언가가 있지만 대중적으로 표현해 내지 못할 뿐, 가까운 자녀나 친구들에게 저보다 깊은 통찰과 이야기들로 영향을 끼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유의 통찰과 글솜씨는 달란트 뿐 아니라 ‘독서’의 힘 아닌가요.

“여러 분들이 비결을 물으셔서, 저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어렸을 때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말할 수 없는 욕설을 들으면서 자랐던 아이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눈치’입니다. 눈치가 극도로 발달하면, 재빠르게 사람의 감정선을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에 공감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됐지요. 일종의 부정적 상처인데, 하나님 손에 놓이니 통찰력으로,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도구로 바뀌는 걸 봤습니다.

저는 ‘안정된 길을 통해 복 주시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자리로 부름받진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겪은 과정은 누구나 외면하고 싶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학대 가정에서 자란 것이 하나님 안에서 누군가를 돕고 섬기고 위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삶의 역설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어떠한 조건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막거나 제한하지 못한다는 것을, 저를 통해 증언하시는 것 아닐까요.

독서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환경이 그렇다 보니 고교 졸업 때까진 책 한 권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신학교에서 ‘목사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어디서 그러더라구요. 하지만 하루아침에 책을 좋아하게 하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소설 ‘동의보감’ 세 권을 읽는데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받아 많이 울었지요. ‘책이 이렇게 재미있나, 책이 이런 것인가’ 하며 동기부여가 됐고, 졸업 때까지 책을 안 놓으려고 많이 애썼습니다.

개척교회 시절에도 독서량이 많이 늘었습니다. 일어나면 도서관에 앉아서 주구장창 책만 읽었지요(웃음). 1년에 400-500권씩 3-4년 읽은 것이 제 독서량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문학과 평전, 철학까지 가리지 않고 많이 읽었고, 기독교 서적 중 유명하고 좋다는 책은 다 읽었습니다.”

▲김 목사는 ‘내 인생의 책 3권’으로 앞에서 언급한 일반 도서 ‘소설 동의보감’에 이어, 신앙서적으로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하거나 막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준 박영선 목사의 <하나님의 열심>, 인간의 죄의 깊이와 넓이를 깨닫게 해준 김남준 목사의 <죄와 은혜의 지배>를 ‘나에게는 신학서적’이라며 각각 꼽았다. 뽑아 놓고 보니 모두 국내 저자들의 도서. “같은 땅 같은 곳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의 글이 더 와닿더라”고 했다. ⓒ이대웅 기자

-지금 ‘아우’들이 가장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일까요.

“놓치고 있다기보다, 너무 경쟁적인 현실 속에 내몰리다 보니 신앙과 삶에 대해 넓은 시각으로 고민할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사실 선배들이 그래봐야 얼마나 더 깊은 세계를 경험했겠습니까(웃음).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통과하고 가야 할 것들’ 때문에, 낭만과 청춘, 사색 같은 여유가 없지 않나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입이나 생각으로 나오는 고백들이 피상적일 수밖에 없지요. 사회적 구조나 교회 현실 때문에 강요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아이들 마음에 많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루한 생활 앞에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솔직히 말해, 없습니다. 어떻게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통장에 돈이 있어야 여유도 나옵니다. 저는 당당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려 책을 쓴 게 아닙니다. 비루하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비루하게 여기시지도 않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 초라한 삶 속에서도 영광을 받으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건 잊지 말고 부정하지도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말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그 지점은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이느냐의 차이니까요. 그것까지 개인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삶이란, 인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웃음)? 저는 삶이란 주어진 대로 사는 거라 생각합니다. 말씀드렸듯, 우리 삶이 바닥과, 실패의 자리로 부름받더라도, 그 길을 열심히 가는 것이 신자의 사명이라 봅니다. 이런 자세가 인생을 포기한 것 같다면, 묻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라구요. 당장 바꿀 방법도 없고, 뒤에 바뀌리라는 소망도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이 ‘예수 잘 믿으면 승진시켜 줄게’가 아니지 않습니까. 헌금 열심히 하고 교회 일 열심히 한다고 달라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삶을 통과하면서 원망과 신경질과 짜증으로 버티지요. 그게 안 되면 술로 뇌를 마비시켜 가며 통과합니다. 그러나 성도들도 같은 방법으로 이를 통과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비천하고 눈물 나는 현실을 통과하는 자를 ‘실패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재수 없다’ ‘실패했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리에서 죽지 못해 하루하루 살아가며 자기 짐을 다 짊어지고 가는 인생을 격려하고 인정하십니다.

저는 ‘보란 듯이 성공한 삶의 어떤 내용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메시지’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연말이면 TV에서 수상한 기독 연예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저는 그걸 보면 열 받습니다(웃음). ‘나는 무엇으로 영광을 돌릴까’ 하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로 영광을 받으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이끄시는 방법대로 당신을 가장 만족케 할 때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초라하고 비참하고 막막할지라도, 이 삶의 내용으로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에게 있어 삶이요 인생입니다.

까놓고 말해 봅시다. ‘성공의 자리’로 부름받은 이들이 얼마나 됩니까? 위처럼 정리하지 못하면, 반드시 고생과 고통은 독이 되거나 그 자체가 칼이 되어 누군가에게 휘두르는 무기가 됩니다. 고통의 상황을 뚜벅뚜벅 가면서도, 형통한 자리로 부름받아 쓰임받는 이들을 향해 손뼉 쳐 주고, 그러한 삶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야말로 기가 막힌 신앙의 깊이 아닙니까? 자기 삶은 그렇지 않음에도, 그러한 마음을 심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보다 훨씬 귀하고 복된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