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시행 첫날인 2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기독교 서적 코너 모습. 이날 서점을 방문한 고객 수는 이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대웅 기자

‘할인 광풍’이 지나가고 21일부터 도서정가제가 본격 실시되면서, 기독출판계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인터넷서점들의 과도한 할인으로 위기에 빠졌던 지역 기독서점들은 일단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기독 교서점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4개월 동안만 기독서점들 10여 군데가 폐업한 실정이며, 이러한 흐름은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박성배 기독교서점협의회 사무국장은 “나름대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눈에 보이는’ 할인은 10%와 5% 적립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라며 “이제 무조건 인터넷서점을 통해 저렴한 도서를 구매하시던 독자들이,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 직접 책을 고르시며 원하는 책을 구매하는 비율이 좀 더 높아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서점협의회에서는 친절 교육이나 도서정보 제공 등에 대한 노력을 강화하고, 세미나 등을 개최하면서 매장 디스플레이나 환경도 개선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큰 매장이나 대형서점들은 인터넷 서점들과 경쟁을 하기도 했지만, 소규모 서점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며 “할인을 하면 사실상 마진이 없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처럼 행사를 통해 할인을 제공할 여력이 없었다”고 했다.

박 사무국장은 “작은 서점들을 위해 법안이 마련됐다지만, 인터넷 서점들이 배송비나 제휴카드 할인 등 변칙 할인을 할 여지가 많다”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서울 수유동 아멘서적 김민영 대표는 “인터넷 서점들의 과다할인 때문에 손님들이 ‘오프라인 서점은 비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라 기대한다”며 “오프라인 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중간에 있던 독자들은 오프라인으로 넘어올 확률이 높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는 “특수한 책을 찾거나 업무상 급하게 필요한 분들이야 계속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겠지만, 어쨌든 오프라인 서점에 대한 인식은 나아질 것”이라며 “특히 서점에 오셔서 책을 보시고는 제목만 적어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없어지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전에는 교회 등에서 30권, 50권 단위로 구매하실 경우 좀 더 할인을 해드리기도 했는데,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그러지 못해 손님들이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기독서점들은 성탄절과 연말연시 등 ‘가장 바쁜 시즌’을 앞두고 있다.

서울 신림동 에덴기독교백화점 김경화 대표는 “한국 대형교회들이 약간의 할인 때문에 시간과 교통비를 들여 대형매장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동네 서점과 교인들 사업체를 이용해 줄 필요가 있다”며 “대형매장에 가는 이유는 저렴하게 사지 않으면 감사에서 책망이 돌아오기 때문인데, 교인들 업체를 이용하면 구제헌금 없이도 자존심을 살려주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도서정가제 시행 전날, 서울 종로5가 한 기독 서점에서 ‘마지막 할인’을 하던 모습. ⓒ이대웅 기자

유통사 비전북 강한덕 차장은 “도서정가제가 자리잡을 때까지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고 장점도 있을 수 있다”며 “또 다른 편법이나 꼼수로 법안 취지가 흐트러지지 않고 잘 자리잡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강 차장은 “이제까지 지나친 할인으로 독자와 출판사 간에 신뢰가 깨지기도 했는데, 이를 다시 쌓아갔으면 좋겠다”며 “출판사들도 비용을 정확히 책정함은 물론, 할인 경쟁보다는 ‘좋은 콘텐츠’로 승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기독 도서들의 할인에 대해 그는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은 생활이 어려워 공부하고 싶어도 도서를 구매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서점주들이 이들을 돕는 차원에서 할인을 시작했다가 이것이 관행처럼 굳어진 측면이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 서점 등의 영향으로 ‘할인 경쟁’처럼 변질되기도 했는데, 기독교인이라면 도서정가제의 취지에 맞도록 개정된 법안을 준수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한국기독교출판협회 민병문 회장(새한기획)은 “우선 도서정가제가 시행 취지대로 잘 정착되기를 바란다”며 “ 갈수록 서점으로 나오는 발걸음도 전에 비해 뜸해지고 있는 가운데, 오프라인 기독교 서점들에게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차선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 회장은 “인터넷서점의 경우 배송이나 마케팅 등으로 오프라인보다 우위에 있다”며 “오프라인 서점들은 임대료와 인건비 등으로 매장을 운영하기조차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 기독 출판사 관계자들도 “출판사와 독자들이 법의 취지 대로 잘 상생했으면 좋겠다”, “양질의 출판이 가능해졌다” 등의 기대와 함께, “인터넷 서점 위주의 구매 패턴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출판시장이 위축되지 않을까” 등의 우려를 함께 내놓았다.

도서정가제는 도서를 정가, 즉 도서에 표시된 가격대로 팔되 소비자 후생을 위해 정해진 구간에서 일부 할인을 허용하는 제도이나, 할인율이 높고 일부 도서에만 적용되면서 소규모 출판사나 동네 서점, 학술·문예 등 전문 분야 창작자들이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에 종전에는 18개월 이내의 신간에만 최대 19%의 할인제한 규정을 둔 것에서, 신·구간 동일하게 최대 15%만 할인하고 18개월이 지난 구간은 출판사에서 판매가를 다시 정해 할인할 수 있도록 했다. 예외를 뒀던 실용서와 초등 참고서도 할인제한 대상에 포함됐다. 위반 시 건수마다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시행령 개정 시 300만원으로 높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유통마진 개선 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서점이나 출판사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개정 도서정가제는 처음부터 정직하게 책값을 매겨 판매하자는 취지로, 출판·유통업계도 책값 거품 해소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며 “당분간 혼란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합리적 수준에서 책값이 매겨질 것”이라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