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봉독>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할렐루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영원한 감사’입니다. 시편 103편 8절로 14절 말씀을 가지고 ‘영원한 감사’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영원한 감사’, ‘영원한 감사’.

감사는 모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기본 의무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감사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입만 열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이 대한민국 땅에 살면서 나가서 돈을 벌어 수입이 생기면 세금을 내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는 하늘나라 갈 때까지 넘치는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102명의 청교도가 드린 첫 번째 감사절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의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65일 동안 항해를 한 끝에 미국의 북동부 매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라는 곳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들이 도착을 하자마자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그곳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가 지금도 그곳에 서있습니다.

그런데 이 플리머스는 미국 북동부 지역에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신의주와 같이 북쪽 끝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겨울에 매우 춥습니다. 땅이 척박한 그러한 상태였기 때문에 농사도 잘 되지 않은 그러한 지역입니다.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추위에 굶주림에 영양실조에 질병에 44명이나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저들은 원망 불평하지 않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나가서 일을 했습니다. 그해 첫 수확을 거뒀습니다. 거둔 수확이 많지 않았지만 첫 추수곡식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그들에게 농사방법을 알려주던 인디언을 초청해서 3일 동안 감사의 축제를 가졌습니다.

이것이 시작되어서 미국 북동부 지역으로부터 여러 주가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되었는데 정식 미국의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에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주를 추수감사절 공휴일로 지정한 것입니다. 남북전쟁을 통하여 많은 희생자가 나고 있었는데 그 어려운 상황에서 그 고난 중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절기를 지정한 것입니다. 온 국민이 이 날은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날로 우리가 정하자. 그리고 이와 같은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뼈아픈 남북 갈등에서 비롯된 미망인(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과부가 생겨났죠), 고아, 가까운 이를 잃어 슬퍼하는 자, 전쟁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과 상처 난 미국에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합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은 고난 중에 드려진 감사요, 또 고난을 당한 이웃에게 사랑을 펼치는 그러한 귀한 사랑의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고 내용입니다. 한국에 선교사님들이 건너와서 이 추수감사절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었고 우리가 11월 셋째 주가 되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늘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이라고 감사드리는 것 뿐 아니라 1년 365일이 감사의 날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일생이 감사의 일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감사의 근거

오늘 말씀을 통해서 먼저 감사의 근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우리 감사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시편 103편 8절에 이와 같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보세요. 사람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짓밟고 업신여기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로 절대로 우리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그 사랑의 품에 꼭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죄와 절망 가운데 한숨 쉬며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하여 하나님 자녀삼아 주시고 그 사랑 가운데, 그 은혜 가운데, 그 놀라운 축복 가운데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요한일서 4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여기에 주목해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죄를 사랑했어요. 세상 쾌락을 사랑했어요. 내 자신을 사랑했어요. 그런 문제투성이인 우리들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찬송가 90장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주 내 맘에 늘 계시고 나 주의 안에 있어
저 포도 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할렐루야.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날 먼저 사랑했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 그냥 우리를 내버려 뒀으면 죄짓고 방탕하고 불의하다가 그냥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 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에요. 그런 우리들을 그냥 무조건 사랑하셨어요. 로마서 5장 7절로 8절에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인간적인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이고 계산적인 사랑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귀한 것을 주시는 사랑, 희생적 사랑이요,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갚으려야 갚을 길 없는 사랑입니다. 신명기 7장 7절로 8절에 또 이와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야훼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야훼께서 (따라하세요)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할렐루야.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내가 구원받을만한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보다 뭐가 나은 면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 무자격자인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그 독생성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희생시키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그저 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하지 않아요. 예수 믿고 받은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많은데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늘 이기적으로 자기에게 조금 손해가 나면 그것 가지고 따지고 싸우고 늘 자기중심, 늘 자기만족, 늘 자기생각만하고 살았던 우리들의 그러한 못난 신앙에 대해서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아들이 사고를 당한 후에 넘치는 감사로 주 앞에 나아갔던 미국 의사 테리 고든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심장 전문의입니다. 위급한 상황을 날마다 목격하기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죽을 때 다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심장이 멈추니까 죽는 거죠.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운동하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학교에 심장 자동 제세동기를 설치해서 이것을 휴대용 기계로 갑자기 심장마비가 왔을 때 작동해서 심장이 뛰게 하는 기계를 설치하고 이러한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운동은 열다섯 살 난 한 미식축구 선수 학생이 학교에서 경기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일을 계기로 해서 이제 각 학교마다 이 응급조치 하는 기계를 설치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심장협회로부터 2002년 ‘올해의 미국 심장의’로 지명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09년 뜻하지 않은 불행이, 어려움이 그의 가정에 몰려왔습니다. 건장한 대학생이었던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된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던 그가 자기 아들에게 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들이 살아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일기로 써 나갔습니다. 일기 중에 아들이 사고 당한 그해 추수감사절에 쓴 내용을 소개합니다.

“11월 26일. 오늘은 제 388회 추수감사절이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은 축일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날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신 창조주께 감사드렸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가족들에게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릴 예정이다. 나는 ‘다섯 달 동안 매일 아들과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평소에는 그럴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아들과 소중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평소에는 의사로 늘 바빴는데 아들이 병실에 누워 있으니까 매일 병실을 찾아와서 아들과 다섯 달 동안 대화를 나눈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아들의 목숨을 살려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드린다. 전신 불구에도 살아난 것에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총명한 정신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감사드린다. 이 우주에 우연한 일이란 없다. 우리는 매일매일 ‘자신이 누리고 있는 많은 축복’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이렇게 전신마비로 누워있으니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 교통사고가 난 것에 대해서 늘 마음에 상처가 남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런 모습인데도 그는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내 아들과 병실에 누워있지만 다섯 달 동안 매일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또 목숨이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혼수상태가 되지 아니하고 맑은 정신으로 나와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할렐루야. 넘치는 감사로 주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 감사의 내용

둘째로 감사의 내용에 대해서 다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인하여 감사할까? 103편 10절로 12절에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할렐루야. 영원한 감사의 내용은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후에 죄 사함의 은총에 대해서 감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왜? 우리는 죄 덩어리이기 때문에, 죄 속에 태어나서 죄 지으며 살다가 죄 속에 죽어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입니다. 아이들이 거짓말 하는 거 배운 적도 없는데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하고 나가서 욕하는 거 배우고, 나쁜 것 흉내 내는 것 쉽게 따라하는 것이 그 몸에 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을 믿고 나서 예수님의 흘린 피가 우리 죄를 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인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하고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눈물로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길이 남는 성군인 다윗 왕도 한때 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자기의 충성스러운 부하 장수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고 그 부인을 빼앗았습니다. 한꺼번에 십계명을 네 개나 범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때 나단 선지자가 와서 말씀합니다. “당신이 그 죄인이오.” 그때 다윗이 통곡하며 엎드려 회개했습니다. 그 회개의 기도가 시편 51편입니다. 그 중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51편 7절로 11절에,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눈물로 통회자복하며 회개할 때 용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때때로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가 빨라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계신데 유산 달라고 막 떼 써가지고 많은 재산을 가져다가 탕진한 둘째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들이 다 둘째아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 돈 가지고 나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다 날려버리고 거지꼴이 되어서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아버지가 달려가서 그를 품에 안습니다. 보세요.

누가복음 15장 22절로 24절에,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완전히 거지꼴이 되고 비참하게 된 그 아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신분 회복, 부잣집의 둘째 아들로 신분 회복해 주셔서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서 신발을 신기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죄 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우리들의 모습을 용서할 뿐 아니라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회복시켜 주셔서 날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를 우리에게 공급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영성작가로 유명한 브레넌 매닝(Brennan Manning, 1934-2013)의 마지막 그의 저서 『모든 것이 은혜다』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요. 이 책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고백을 합니다. 그는 원래 알코올 중독,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술 먹고 때리고, 어머니는 아예 자녀를 돌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래서 사고뭉치로 자라납니다. 본인도 어른이 되어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를 붙드셨어요.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너무나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자기처럼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그러한 글들을 쓰는 영성작가가 되었어요. 본인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글로 다가가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회복시켜주었습니다. 77세이던 2011년 그해에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회고록과 같은 마지막 저서를 쓰는데 그 책 제목이 『모든 것이 은혜다』라고 하는 책입니다. 『All is grace』, 여기서 그는 고백합니다.

“내 인생은 ‘은혜에 대한 증언’이다. 긴 옷을 치켜들고 죄의 악취가 풍기는 탕자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서, 그를 새 옷으로 감싸고 ‘만약에, 그래도, 하지만’ 이런 것 없이 ‘무조건’ 잔치를 열기로 하는 은혜다. 죽어 가는 강도가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청하는 말에 충혈된 눈을 치켜뜨고 ‘당연하지!’라고 확신시켜 주는 은혜다. 이 은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값싼 것이 아니라, 공짜다. 그 은혜로 충분하다. 은혜만으로 충분하다. 그분으로 충분하다. 나는 늘 탕자이겠지만 여전히 지금도 내 아버지는 나를 향해 달려오신다. ‘모든 것이 은혜다!’”

저는 이분의 마지막 그 끝의 고백, 나는 늘 탕자이겠지만, 나는 늘 주님 앞에 부끄러운 죄인이지만, 늘 나는 실수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날 향해 달려오셔서 나를 품어주신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난 여전히 부끄럽고 부족하고 쉽게 상처받고 상처주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아주 소심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그러한 모습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달려오셔서 나를 품어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 할렐루야!

(찬송가 88장)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온 세상 사람이 나를 버리고 떠나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붙드시고 용서하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치료하시고 사람으로 만들어주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켜주셔서 우리 일생을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니 감사할 것 밖에 없죠.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할렐루야. 감사하며 사십시다.

3. 한평생 감사할 이유

마지막으로, 한평생 감사할 이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늘 감사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의 그 사랑, 긍휼하심을 인하여 감사드려야 합니다. 시편 103편 13절에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 긍휼이란 단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떤 의미냐? 우리를 불쌍히 보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요, 남을 불쌍히 여기지를 않아요. 길거리에 노숙인이 쓰러져 있어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지나갑니다. 두 다리가 없어서 기어가면서 구걸하러 나온 사람 불쌍히 여기지 않고 지나가는 거예요. 그냥 “쯧쯧, 안됐다.” 그 정도에요.

근데 만약 자신이 그 모습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 나는 버림받은 인생이다.’라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하시고 달려가셔서 품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노라.”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그 은혜에 감사한지.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 참 부족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으로 삽니다.

시편 103편 14절에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우리가 연약한 걸 아세요.)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의 체질을 아시는 주님!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시편 139편 1절로 4절에 “야훼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야훼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나의 약함을 아시는 주님, 나의 부끄러움을 아시는 주님, 나의 핸디캡을 아시는 주님, 아무에게도 말 못할 나의 고민, 슬픔을 아시는 주님, 그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한다. 내가 너의 일생동안 너와 함께하며 너에게 나의 은혜와 사랑을 넘치게 부어줄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 은혜로 삽니다.

시편 23편 6절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은혜로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 이제부턴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죠. 마태복음 5장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불쌍히 여김을 받았으니 이제는 남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견디지 못해 합니다. 비난하고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화를 내고 그로 인해서 관계가 깨어지고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로 20절은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한의사로서 『성경적 한의학』을 쓰신 김양규 장로님 말씀하신 걸 보니까요, 사람이 피해야 될 것이 하나 있는데 성나면, 성질 나면 피하라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도망가 버리래요. 있으면 더 화나니까. 절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대요. 피해야 될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유혹을 피하고 죄의 유혹을 피하고 그 자리에 있으면 유혹을 당하니까, 둘째로 성질나면 그 자리를 피하라는 겁니다.

있으면 더 화가 나니까. 앞에 성질 돋우는 사람 있는데 쳐다보면 더 화가 나게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예 나가서 딴 데 갔다 오시라니까. 화가 나면 그냥 밖에 나가는 거예요. 멀리 가서 빙빙 돌다가 30분만 있다가 오시면 그 다음 다시 화낼 일이 없어요. 그거 잠깐 못 참기 때문에 싸우고 욕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상처 주고받고 그러면서 또 부부라고 살고, 아이 참. 가슴 찔리는 분들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 말씀,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여러분 용서에 대해서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VCU)의 심리학 교수 에버렛 워딩턴(Everett L. Worthington Jr., 1946-)의 이야기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이분은 용서를 연구하는 용서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용서하기 힘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의 어머니가 10대 강도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살해당한 현장에 와보니 그 피투성이로 쓰러진 엄마의 모습에 미움, 분노, 증오심, 복수심이 막 속에서 치받쳐 올라왔어요. 그것도 50불, 50달러,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한 5만 5천원, 그것 빼앗아 가려고 죽인 거예요.

견딜 수 없는 분노. ‘이 녀석들 다 잡아다 다 사형시켜야 되겠다.’하는 그 분노, 복수심으로 가득했을 때에 자신을 돌아보니 늘 용서를 자기가 가르쳐왔는데 자기가 직접 일을 당하니까 복수심에 불탄 죄인의 모습 그대로에요. 거기서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가르친 그 용서를 실천하기로 ‘내가 이제 용서를 실천하며 살겠다.’ 결단합니다.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면서 진정한 용서에 대해서 깨닫고 이 가르치고 이를 통해서 책을 쓰고 상담함으로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는 귀한 교수님입니다. 용서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용서’는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보물’이다. 용서라는 보물을 덮고 있는 ‘돌멩이들’, 즉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감정과 기분’을 하나씩 들어내면, 우리는 마침내 폐허 속에 숨어 있는 귀중한 보물, 곧 ‘용서’라는 ‘보물’을 캐낼 수 있다.”

왜 용서해야 되는지 그는 다시 말합니다. “‘용서’는 ‘기독교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자비와 무궁한 사랑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용서하신다. 용서받은 사람은 ‘감사의 반응’으로 자기를 해치는 사람들을 즉각 그리고 이후 지속적으로 ‘용서’하게 된다. ‘감사’야말로 ‘하나님의 용서와 생수’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통로’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원수까지,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철저한 가르침과 본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한번 뿐인 인생, 짧은 인생, 사랑하고 용서하며 사십시다. 여러분, 상처 준 사람 잊지 못하지요? “두고 보자.” 복수의 칼을 갈고 계시죠? 오늘 그 칼을 다 내려놓고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사랑하세요. 이것이 구원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주여 한평생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사랑과 용서가 부족하고 감사가 부족해서 늘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이후로 결심하고 감사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14. 11. 16. 추수감사주일 설교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