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크리스천투데이에 따르면 종교개혁500주년기념사업회(대표회장 이종윤 목사, 이하 사업회) 제20회 월례기도회 및 명저총서 출간 감사예배가 18일 아침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연합회관 910호에서 열렸다.

이종윤 목사는 “사업회는 16~17세기 종교개혁 신학의 고전 및 명저들을 찾아 이를 그 원어·원전에서 직접 번역해 출판함으로써, 새로운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의 토대와 오고 오는 세대들을 위한 신앙의 유산으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강창희 목사는 “개신교의 신학적 뿌리인 종교개혁자들의 고전적인 명저들을 엄선하고 이를 번역·출간해 한국교회의 신학을 재정립하도록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고무적인 일”이라며 “앞서간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신앙의 실천을 따라서 신학을 바로 세우고, 지속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를 개혁하고 갱신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개혁신학 특강에선 김홍만 박사(국제신대)가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 예정론의 목회적 적용’을 제목으로 발표했다.

종교개혁500주년기념사업회 목사님들은 루터 외 칼빈의 신학을 클로즈업시켜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의 토대와 오는 세대들을 위한 신앙의 유산으로 삼고자 한다고 하는데, 그들의 신학이 그럴 만한 진리인지를 아래 질문에 응답하여 밝혀 주시기 바란다.

칼빈 구원론의 근간인 ‘칼빈의 5대 강령’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당신에게 적용하면, 당신은 완전 타락하여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이지만(전적인 타락), 우주 만물과 인생의 생사화복을 좌지우지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당신을 수많은 인생들 가운데서 당신의 인격이나 행위에 무관하게 예정하고 선택하시어(무조건적 예정 선택), 선택받은 제한된 사람들만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로(제한적 속죄), 성령을 통하여 회개하고 구원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불가항력적 은혜) 구원을 주시고, 당신이 한 번 받은 구원을 결코 상실하지 않고 반드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행해주시어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금 어떤 불량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반드시 천국에 가도록 보장받는다(궁극적 견인).

이 얼마나 환상적인 이야기인가. 당신은 아무 공로도 없고 어떤 인격을 갖춘 자도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오직 은혜로 무조건적으로 예정·선택하시어 구원하시고, 또 그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되도록 일하시어 보장해 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그렇게 오직 은혜로 영원한 구원을 받은 존재란 어떤 존재인가? 그는 자신의 구원을 위한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로보트와 다를 수 있는가? 당신은 자신이 아무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장난감이나 로보트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불의한 세상에서도, 선택에 필요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정신병자나 어린아이 등 선택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법에 의한 책벌을 받지 않는다. 하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미리 작정해 놓으신 결과에 따라 행동한 것에 대해, 어떻게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실 수 있겠는가?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당위성을 훼손하는, 성경(전 12:14, 마 25:31-47, 행 17:30-31)과 정반대되는 주장이 아닌가?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성경(마 12:36, 롬 6:19, 갈 6:7-10, 약 2:12-13, 계 22:12)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지 않는가?

행동은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선택은 의지를 행사한 결과이다. 하나님께서 거듭하여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알리시고 순종함으로 생명을 선택하도록 촉구하신 사실은, 사람이 가진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바르게 행사하라는 요청하지 않은가?(신 30:19, 수 24:15, 사 1:16-20, 계 22:17).

구원을 얻었던 사람도 불순종이나 나태함으로 잃어버린 바 될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고전 9:27, 갈 5:4, 빌 2:12, 히 10:26-29). 성경에 기록된 많은 실례들은 인간의 불신과 반역, 고의적인 불경에 의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성령의 역사가 거절되거나 소멸될 수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사 63:10, 행 7:51, 살전 5:19, 히 6:4-6). 칼빈과 루터의 신학이 이러한 성경과 일치하는가?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빌립보서 2장 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를 간과하고,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만을 근거로, 성화의 행위는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 BOOK II Ch 3, 12 p.262).

그러므로 칼빈에 따르면 한 인간의 선이나 악은 모두 하나님의 행위이지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악행과 무관하게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어떤 인간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어 영생을 주시고 어떤 인간에게는 영벌을 주시는 것을, 어떻게 공의와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칼빈과 루터의 신학을 반성하여 작성된 웨스트민스터신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선한 행위는 진실되고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이며 증명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한 행위로 신자들은 그들의 감사를 표시하고, 그들의 확신을 강화하며, 그들의 형제들을 교화하며, 복음의 선언을 빛나게 하며, 반대자들의 입을 막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작품으로 예수 안에서 창조된 그들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웨스트민스터신조CF XVIII, 2)”,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은 전혀 그들의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성령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선행을 하도록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미 받은 은혜 이외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저희들로 소원을 두고 그들 안에서 행하시는 동일하신 성령의 사실상 영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령의 특별한 움직임이 없이는 어떤 의무도 실행하지 않도록 묶여있는 것처럼 그들이 태만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움직이도록 열심을 내야 마땅하다(웨스트민스터신조 CF XVIII, 3).” 그리고 웨민신조를 반영한 예수교장로교회의 헌법신조 제9항 “너희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여 본받으며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을 복종하여 겸손하고 거룩하게 행하라 하셨으니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를 클로즈업시켜,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의 토대로 삼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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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 저자 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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