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100주년기념교회(담임 이재철 목사)에서 설립한 양화진문화원 주최 ‘양화진 목요강좌’가 18일 오후 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내 선교기념관에서 개최됐다.

문화원 명예원장인 이어령 박사는 이날 ‘인문학으로 찾는 신(1): 니체, 신은 죽었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신은 죽었다’는 말로 유명한 니체에 대한 강연 소식에 교회 측으로 문의가 쇄도하는 등 이날 강좌는 큰 관심을 끌었다. 그만큼 니체는 세간에 ‘무신론(無神論) 또는 반신론(反神論), 안티기독교의 대표’ 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어령 박사도 이를 의식한 듯 “어떻게 교회에서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오늘날 교회에서 니체는 그 말 때문에 옛날 그리스의 ‘기록 말살형(刑)’만큼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으나, 그 한 문장만큼 많은 오해를 사고 있는 말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니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후 니체 당대까지 2,500여년간 서구를 꿰뚫던 사상을 송두리째 폭파시켰다”며 “기독교와 헬레니즘, 라틴 그 무엇이든 간에 유럽인들에게 하나의 기초와 같았던 것을 니체는 독일어 단 세 마디(Gott is tot)로 바꿔놨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말처럼 잘못 알려진 말이 없다”며 “독일어로 니체의 말을 보면 우리나라 말처럼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임을 알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번역해서 골치 아프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신이 죽고 있다, 신이 죽는다’라는 것. 이에 대해 “‘죽고 있다’와 ‘죽었다’는 완전히 다르다”며 “현재형일 경우에는 다시 살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의미이고, ‘죽었다’는 이미 나에게는 상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강연 중인 이어령 박사. ⓒ이대웅 기자

이어령 박사는 “당장 한국에서 ‘신이 죽었다’고 했을 때, ‘이제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반응과 ‘이제 자유다, 뭘 해도 좋겠다’는 반응 두 가지가 나올 수 있다”며 “저는 니체 전공자도 아니고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지만, ‘신은 죽었다’던 니체의 말에 거꾸로 희망을 품었고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 혼란, 6·25 전쟁 등 가장 암담했던 시절에 니체를 숭배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캄캄한 밤 망망대해를 홀로 항해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이 상황에서 ‘신이 죽었다’고 했을 때 ‘막막하고 캄캄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비록 해는 아직 뜨지 않았지만 곧 해는 뜰 것이고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며 “단 책임은 인간이 지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니체 이전의 인간은 선과 악, 불행과 비극 등 모든 책임을 신에게 돌릴 수 있었다. ‘하나님,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고 떠넘길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신이 죽었다면, 변명할 곳은 없다. 신이 죽었다는 말은 곧 인간에게 엄청난 짐을 던져준다. 그는 “선악과 길흉, 행복의 모든 것들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기차처럼 주어진 선로를 달리는 게 아니라, 마치 황무지에 홀로 내던져진 상태 같아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뜻”이라며 “겁 많고 소심하고 용기 없는 사람들은 광활한 사막에 데려다 놓으면 ‘아이고 죽었다’고 하겠지만, 꿈과 비전이 있는 사람은 낙타처럼 무거운 짐을 진 채 사막을 횡단한다”고 전했다.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모든 형이상학에 대한 부정, 이로 인해 이어지는 허무주의를 뜻한다. 이어령 박사는 “니체가 살던 19세기는 르네상스 이후 유럽이 과학과 경제,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가장 행복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적인 것이 전체를 통합했던 시대”라며 “하지만 니체는 그 모두가 나의 선택이 아닌 이미 주어진 것들인데도 이를 당연시하고, 그 속에 있는 나 자신을 마치 성인군자처럼 착각하며 살아간다고 지적한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으로서 거짓된 세계(관념주의)에서 거짓된 정보(형이상학)로 살지 말고, ‘핏덩어리’로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실존주의)는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것들을 관념화하다 보니 남은 것은 ‘허무주의(nilhilism·니힐리즘)’이다. 니체는 ‘신이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허무주의 속에 떨어진 것이다. 이 박사는 “신이 죽어서 자유가 생겨 행복해지리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모든 인류는 신이 죽어가는 이 시대에 허무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라며 “전에는 ‘하나님께서 다 만들어 주셨어. 이렇게 살라고 해서 사는 거야’라고 했지만, 지금은 목표도 의미도 없이,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목요강좌가 진행 중인 모습. ⓒ이대웅 기자

신의 자리에 ‘아버지’를 놓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가 죽었으니, 이제 ‘나’는 고아가 된다. 원망할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어져 믿을 만한 것은 사라지고, 허무주의 뿐이다. 이 박사는 “신이 살아있을 때는 괜찮지만, 신이 없는 이 현실에서 살아가려면 이 허무주의를 극복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니체는 이 극복의 방법으로 ‘초인(超人)’을 등장시킨다”고 했다. 인간의 나약함과 위선 때문에 약자들이 오히려 강자를 지배하는 ‘거꾸로 된 세상’을 뒤집고, 강해져야 한다.

그래서 니체가 말하는 정신의 발달 단계는 ‘낙타-사자-어린아이’이다. 의무감과 질서라는 짐을 지고 순응하며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에서, 환경을 지배하고 용감하게 싸우는 사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삶의 주인이 된다 해도 여전히 환경은 사막. 여기서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것이 바로 ‘어린아이’이다. 아이에게는 의미를 찾지 않기에 무의미가 없고, 희망을 찾지 않아 절망도 없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지만, 아이들은 새롭게 태어나 이 땅을 다시 시작한다. 이 박사는 “예수님도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나”라며 “이것이 초인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어령 박사는 “우리가 믿던 절대적 가치가 가짜이고 무의미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신은 죽는 것”이라며 “그 허무의 벌판에 서서, 초인은 내가 운명을 걸머쥐고 처음엔 낙타처럼, 다음엔 사자처럼,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시작으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 나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인은 주어진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탄생시켜 끝없이 새로워지고 창조하면서 상승해 가는 존재”라며 “그게 바로 휴머니즘이자 실존주의”라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니체의 유고집을 읽어보면, 그는 예수님을 욕한 것이 아니라 존경했음을 알 수 있다”고도 했다. 니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 이후 제도화·도덕화된 기독교, 신성불가침의 고정관념과 율법, 형이상학적 가치를 ‘만들어 낸 기독교’를 비판했다는 것. 그는 “니체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어 40일간 이 땅에 사셨던 예수님을 자신이 꿈꾸는 초인의 모델이자 죽음과 세속의 허위와 가장 용감하게 싸웠던 분이라 생각했다”며 “니체가 바라본 예수님은 형이상학이라는 본질보다 모순 많은 이 세상의 실존 속에서 아픈 자를 고치시고 굶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등 실천을 하셨던 분”이라고 했다.

또 “니체와 기독교, 니체와 여러분은 종이 한 장 차이”라며 “여러분들도 니체처럼 스스로 용기 있게 생각하면서 초인이 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니체가 되는 것이고, 나는 역시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필요하고 예수님께서 내 손을 끌어주셔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말년의 니체처럼 미치지 않고 니체와 같은 걸음을 걸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걷다 보면 그것이 예수님께서 걸어가시어 십자가에 못박히신 길임을 알 수 있고, 예수님은 이를 통해 부활하셨다”며 “하지만 니체는 스스로 부활하지 못했고 영생을 얻지 못했다. 그가 주창한 동양적 ‘영원회귀(차라투스트라)’는 환상일 뿐이었다”고도 했다.

▲이어령 박사의 강연 모습. ⓒ이대웅 기자

이어령 박사는 “우리는 정오에 해가 정수리 위에 뜨는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사는 것이고, 그 가장 빛나고 찬란한 생명의 한 순간을 위해 많은 여정과 그림자가 있는 것”이라며 “그 한 순간에 예수님을 찾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진짜이지, 어둠 속에서 끝없이 자신도 모르는 채 외치고 있는 신은 이미 죽은 신”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구약이든 신약이든 ‘살아있는 신’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지 않느냐”며 “하지만 창세기 첫 부분, 뱀이 인간을 유혹하던 그 대낮부터 신의 죽음은 존재했다. 신이 죽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신을 죽이고, 신이 죽고, 죽은 적이 없지만 죽어가고 있는 그 신을 부활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이 박사는 “니체를 읽지 않았어도 오늘날 니체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그들이 허무주의의 바다에서 좌절하기 전에, 여러분이 크리스천으로서 초인이 되는 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던 예수님, 부활을 통해 이전과 달라지신 예수님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처럼 니체는 기독교를 불사르러 온 게릴라나 마녀 군단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 편으로 돌릴 수 있고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우군이 될 수 있다”며 “잘못 알려진 니체를 크리스천들이 제대로 알게 되면, 이 세상에 무신론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령 박사는 다음 달 ‘인문학으로 찾는 신’ 두 번째 강좌로,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분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