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진 목사. ⓒ교회 제공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등 평생 ‘약자의 편’에 서기 위해 노력했던 인명진 목사(갈릴리교회)가, 소속 교단인 예장통합 총회연금재단(이사장 김정서 목사, 이하 연금재단) 직원들이 재단의 정상화를 기치로 설립한 노동조합의 자문위원직을 맡기로 했다. 조기은퇴를 결심해 곧 ‘연금 수급자’가 되는 인명진 목사를 만나, 연금재단의 문제점에 대해 들어봤다.

-자문위원직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교회 기관이라면 노조를 만들지 않고 지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예전 C3TV(현 GoodTV) 사장을 9년 역임했는데, 노조가 없었습니다. (직원들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문제는 다르겠지요. 그래서 ‘어떻게 노조를 만들 수 있나’ 하는 반응보다, ‘어쩌다가 노조까지 만들게 됐나’고 물어야 합니다. 총회 기관에 노조가 있는 건 물론 최선이 아닙니다. 하지만 차선책일 수는 있습니다. (저는) 평생 노조운동을 한 사람이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런 제 눈으로 볼 때, 연금재단 노조는 일반 노조들과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다른 노조들의 주목적은 자신들의 임금이나 처우 개선인데, 연금재단 직원들은 재단이 바로 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노조를 조직했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이 잘 되고, 양심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노조를 만든 것입니다. 기독교적으로 옳은 일이라 할 수 있지요.

제가 자문을 맡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직원들이 노조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 노조가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경우 총회나 교계 전체적으로 굉장히 무리가 올 수 있습니다. 운용기금이 3,200억원이나 되는 연금재단 자체의 문제도 많은데, 직원들까지 문제를 일으켜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연금재단을 위해서나 총회와 한국 교계를 위해 모범적인 노조가 되기 위해선, 저 같은 사람의 조언과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총회에서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게 버팀목이 되려는 것입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 연금재단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3,200억원이라는 돈을 운용하려면 반드시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할 텐데, 이사들도 비전문가인 데다 풀타임으로 헌신하지도 않는 이사장이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금융이라는 게 보통 복잡한 게 아닌데, 엉터리 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마치 어린아이에게 칼을 준 것처럼 위험합니다.

여기다 예전부터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 비용으로 변호사에게 가져다 준 돈이 수억 원에 달합니다. 교인들이 헌금한 돈으로 쓸데없이 소송전을 벌이는데, 정작 재판에 가면 무죄가 나옵니다. 연금재단은 마땅히 금융 논리에 의해 돌아가야 하는데, 교단 정치 논리에 휘둘린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이사진이 구성됩니다. 현 이사장도 제가 잘 아는데, 평상시 알던 모습이 아닙니다. 뭔가에 홀렸거나 불가피한 상황이 있는 듯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어 걱정될 정도입니다.”

-현재 연금재단은 정관을 개정한 지 9일 만에 다시 원위치시켰고, U건설에 총 기금의 10%에 해당하는 290억원 대출을 결정했다가 번복했습니다. 이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이 연금재단을 조종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연금재단 실무자들(직원)입니다. 직원들을 만나 보니, ‘목사님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연금을 납부하셨는데, 그들의 노후가 염려스럽다’며 이를 바로잡겠다고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희망을 봅니다. 이들은 객관적인 입장에 서 있고, 이해관계도 없습니다. 직원들이 연금재단을 바로잡고, 지켜내야 합니다.”

-총회에서 노조를 해산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는데요.

“총회 헌법위원회에서도 합법이라고 했고, 사회법으로도 해산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사태를 대비해서 제가 그들을 돕고자 합니다. 이것이 연금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이도 많고 다 그만두어야 하는데, 대단한 감투도 아닌 이것을 왜 맡겠습니까? 직원들의 행동이 매우 갸륵했습니다. 모두 여성들이고, 집에 가면 가정주부입니다. 변호사와 노무사들도 있으니 법적 자문을 통해 직원들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걱정되는 것은 총회나 재단 쪽에서 직원들의 징계나 해고에 나설 경우입니다. 그러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저는 싸우기 싫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불가피하게 싸워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총회가 잘 포용해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노조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하나의 기구입니다. 자본주의를 건전하게 하는 역할도 있습니다. 너무 이념화되고 과격화되는 것은 찬성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하나님의 선교 도구 중 하나라고 봅니다.

연금재단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직자나 항존직도 아닙니다. 월급 받고 갑근세 내고 일하는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이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목회자들의 눈물겨운 돈을 잘 지켜달라고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즐겁고 보람되게 일하고 싶어서, 그리고 연금재단이 잘 되어야 이들의 직장도 보장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노조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힘 없는 여성들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기특하게 생각하고 어른스럽게 대해야지, 맞서 싸우려 하고 ‘내부정보 유출’이라며 해산하라고 해선 안 됩니다. 정말 내부정보 유출인지, 아니면 공익을 위한 활동인지, 노조원으로서 정당한 활동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저는 평생 노조운동을 해 온 사람입니다. 노조가 분별없이 행동하는 것은 저도 용납할 수 없지만, 사측에서 턱없이 음해하고 탄압하는 행동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조기 은퇴를 준비 중이신 걸로 아는데요.

“조기 은퇴를 하면 훌륭하다고들 하는데, 저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조기 은퇴는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고, 정년 은퇴는 강제로 물러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듯, 저도 정년까지 목회하기보다 스스로 정리하려 합니다.

1972년 28세에 목사가 되어, 안수받은 지 올해로 42년째입니다. 너무 오래 해서 예수님께 죄송스럽습니다. 예수님 덕에 너무 오랫동안 밥 먹고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예수님 덕에 죽을 때까지 밥 먹고 살 입장이지만, 후진들에게도 길을 열어줘야지요. 개척 28년째인데, 저보다 능력 있는 분이 오셔야 교회가 더 발전할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은퇴하면 섭섭하다는데, 저는 마음이 편하고 좋고…,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할 걸 그랬어요(웃음).”

▲인명진 목사. ⓒ교회 제공

-인생을 돌아볼 때, 후회는 없으신가요.

“평생을 돌아봐도 후회는 없습니다. 물론 부족하고 흠이 많았으며 실수도 많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 왔습니다. 제가 믿고 배운 대로 거침없이 살았지요.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저는 평생 두 가지를 결심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는 삶입니다. 목사직과 바꾼 것이 없습니다. C3TV도 하고 정치(한나라당 윤리위원장)도 하고 시민운동도 해 봤지만, 목회가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제일 지지부진하고 어쭙잖게 한 일도 목회입니다(웃음). 다른 일은 업적도 조금 있고 민주화 운동에도 공헌했는데 말입니다. 그동안 세상의 정치나 명예을 가질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개척교회 목사’와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걸 하면 목사를 그만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인권위원장이 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냥 준다는데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왜 가장 못 하는 목사직을 고수했는지 저도 의문입니다(웃음). 저는 말년에 하나님의 복과 은혜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못난 자이지만 계속 하나님의 종임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려 했던 걸 가상하게 여기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격도 없는 사람이 40년을 버텼으니까요.

다음으로는 목사를 하면서 총회장 같은 직책과 명예를 한 번도 꿈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주신 은혜이지요. 제가 교계 정치를 한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노회장을 했지만, 추대해 주신 것이지 저는 커피 한 잔도 사지 않았습니다. 총회 정치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애당초 그런 욕구가 없었지요. 명예욕이 있으면 못 견딥니다. 망하게 되지요. 그래서 이 나이에 총회에서 뭘 못 했다 해서 후회하거나 섭섭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갈릴리교회 목사, 이거 하나면 됩니다.”

-산업선교부터 시작해, 약한 자들을 섬기는 일에 힘써오신 걸로 압니다.

“어떤 자리에서든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도우려 애썼습니다. 예전에는 산업선교 일선에 있었고, 목회를 하면서부터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시절에 비해 변절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모르겠어요. 방법에선 달라졌을지 몰라도, 목회를 통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예산의 50%를 가난한 자를 위해 쓰고 있습니다. 매 주일 ‘사랑의 도시락’을 드리고, 북한 어린이 5백명에게 한 달에 5백만원을 보냅니다. 캄보디아 기술학교를 지원하고, 베트남 농촌에 송아지 1천마리를 보냈어요. 그 땅에선 송아지 한 마리만 있어도 생활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환경 문제를 위해 몽골에 한 해 2천 그루씩 나무를 심었고, 20년간 외국인노동자들 닭튀김을 먹여서 8백명이 세례를 받았어요.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인도네시아에만 14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엄청난 선교 효과가 있었지요.

제가 외국인노동자 8백명에게 세례를 줬다고 하면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만큼 밖에 알리지 않고 ‘통전적 선교’를 해 왔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자국의 목회자를 데려와 설교하게 하고, 저희 교회는 그들을 부목사처럼 여기고 노동·상담·복지·의료 부문을 지원해 줬습니다.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만 강조한 게 아니라, 전도도 그들을 통해 하는 등 복음과 복지와 인권을 통합하는 선교 모델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이 살았다’는 점에는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일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 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잘 해서 후회가 없다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해방둥이로서 역사의 질곡 속에 살아 왔습니다. 한 시대를 산 종교인으로서, 이 나라 백성들의 아픔과 역사의 한복판에 서서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감옥도 가고 해외 추방도 당하면서 민족의 역사에 있어 예언자적 사명을 후회 없이 했습니다. 요즘 ‘당시 침묵하고 편안하게 살았다면, 지금 역사와 후손들 앞에 얼마나 부끄러울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떳떳합니다.

네 번이나 감옥에 갔지만,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고난을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한복판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큰 복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진 못했지만, 인간으로서, 종교인으로서, 목회자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저보다 훌륭한 목회자 분과 비교하면 보잘것없지만, 나름대로 분수대로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후회 없이 살았다는 말씀에서 바울이 떠오릅니다. 교계에 적이 없으신 걸로도 유명하신데요.

“저는 총회장 지내신 분들과 함께 있어도 열등감을 느끼거나, 감투를 쓰지 못해 스스로 처지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저들은 저렇게 살았고, 저는 저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던 것이지요.

저는 총회에도 적이 없습니다. 정파적으로 경쟁자가 아니니 적이 없지요. 총회가 잘못된 점이 있어도, 저는 교회와는 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정부로부터 받은 핍박보다, 교회로부터 받은 핍박이 많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교단에서 제명될 뻔하기도 했고, 노회에 가면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을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인간적으로 불의와 야합한 그들에 대해 큰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종교개혁 당시를 봅시다. 당시 천주교가 얼마나 썩었으면, 종교개혁이 일어났겠습니까? 하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교황 방한을 환영하고 도리어 개신교는 교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썩어빠진 천주교를 버리고 개신교를 편들었어야 하는데, 가만히 두셨습니다. 그랬더니 오늘날에는 개신교에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고신 교단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던 분들이 만들었고, 우리(통합)는 신사참배하고 우상숭배한 더러운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통해 많은 일들을 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 입장에선 의롭게 살든 어용으로 살든, 심지어 순교를 했더라도 모두 같은 죄인들일 뿐입니다. 구더기 이야기를 예로 많이 드는데, 시골 화장실에서 위로 올라온 구더기나 변 아래 있는 구더기나 우리가 볼 땐 똑같은 구더기 아닙니까?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같은 구더기입니다. 오히려 위로 올라온 구더기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조그마한 의를 내세우는 것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그들을 욕하거나 비난해선 안 됩니다. 이는 처음 감옥을 다녀와서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혼탁한 교계 모습을 보면서도 욕 한 마디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적이 없겠지요. 하지만 이번에 노조 자문위원을 맡았으니, 적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한 말씀 전해 주신다면.

“저는 교회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가 썩었고 더럽다 말해도,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아닙니까? 교회를 가장 사랑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들의 목숨과 바꾸시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소중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만큼 이 교회를 사랑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싸우지 않습니다. ‘교의 정신으로 싸우지 말고, 기도하고 가만 둬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역사가 심판하고, 하나님이 계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개혁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교만이지요. 정말 개혁할 마음이 있다면, 자신의 자리에서 개혁과 삶의 모범을 보이십시오. 대형교회 싫다는 분들 많은데, 자신의 작은교회라도 먼저 본을 보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