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칼빈 구원론의 근간인 칼빈의 5대 강령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당신에게 적용하면, 당신은 완전 타락하여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이지만(전적인 타락), 우주만물과 인생의 생사화복을 좌지우지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당신을 수많은 인생들 가운데서 당신의 인격이나 행위에 무관하게 예정하고 선택하시어(무조건적 예정 선택), 선택받은 제한된 사람들만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로(제한적 속죄), 성령을 통하여 회개하고 구원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불가항력적 은혜) 구원을 주시고, 당신이 한 번 받은 구원을 결코 상실하지 않고 반드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행해 주시어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금 어떤 불량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반드시 천국에 가도록 보장받는다(궁극적 견인).

이 얼마나 환상적인 이야기인가. 당신은 아무 공로도 없고 어떤 인격을 갖춘 자도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오직 은혜로 무조건적으로 예정·선택하시어 구원하시고, 또 그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시어 보장해 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그렇게 오직 은혜로 영원한 구원을 받은 존재란 어떤 존재인가? 그는 자신의 구원을 위한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로보트와 다를 수 있는가 ? 당신은 자신이 아무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장난감이나 로보트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성경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마 12:36, 롬 6:19, 갈 6:7-10, 약 2:12-13, 계 22:12).

행동은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선택은 의지를 행사한 결과이다. 하나님께서 거듭하여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알리시고 순종함으로 생명을 선택하도록 촉구하신 사실은, 사람이 가진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바르게 행사하라는 요청인 것이다(신 30:19, 수 24:15, 사 1:16-20, 계 22:17).

구원을 얻었던 사람도 불순종이나 나태함으로 잃어버린 바 될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고전 9:27, 갈 5:4, 빌 2:12, 히 10:26-29). 성경에 기록된 많은 실례들은 인간의 불신과 반역, 고의적인 불경에 의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성령의 역사가 거절되거나 소멸될 수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사 63:10, 행 7:51, 살전 5:19, 히 6:4-6).

불의한 세상에서도, 선택에 필요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정신병자나 어린아이 등 선택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법에 의한 책벌을 받지 않는다. 하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미리 작정해 놓으신 결과에 따라 행동한 것에 대해, 어떻게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실 수 있겠는가?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당위성을 훼손하는, 성경과 정반대되는 주장이다(전 12:14, 마 25:31-47, 행 17:30-31).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빌립보서 2장 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를 간과하고,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만을 근거로, 성화의 행위는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 BOOK II Ch 3, 12 p.262).

그러므로 칼빈에 따르면 한 인간의 선이나 악은 모두 하나님의 행위이지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악행과 무관하게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어떤 인간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어 영생을 주시고 어떤 인간에게는 영벌을 주시는 것을, 어떻게 공의와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형상 곧 영성을 회복한 인간을 자유의지가 없는 로보트나 인형으로 취급하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자의적으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해 버리는 폭군 같은 존재로 대우하고 있는 칼빈의 구원론은, 원천적 그리고 근본적으로 비성경적일 수밖에 없다.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출간된 후 100여년 동안 개신교 신자들의 삶은 불신자들의 그것보다 더 세속적인 행태를 보였다. 이를 보고 교리의 개혁 없이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음을 깨닫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3년 동안에 걸쳐 성경을 철저하게 연구하여 작성됨으로써 전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헌법에 신조로 규정되고 있는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은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선한 행위는 진실되고 살아 있는 믿음의 열매이며 증명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한 행위로 신자들은 그들의 감사를 표시하고, 그들의 확신을 강화하며, 그들의 형제들을 교화하며, 복음의 선언을 빛나게 하며, 반대자들의 입을 막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작품으로 예수 안에서 창조된 그들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2).”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은 전혀 그들의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성령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선행을 하도록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미 받은 은혜 이외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저희들로 소원을 두고 그들 안에서 행하시는 동일하신 성령의 사실상 영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령의 특별한 움직임이 없이는 어떤 의무도 실행하지 않도록 묶여 있는 것처럼 그들이 태만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움직이도록 열심을 내야 마땅하다(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3).”

한국의 예수교장로교회의 헌법도 웨민신조를 반영하여 신조 제9항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너희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여 본받으며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을 복종하여 겸손하고 거룩하게 행하라 하셨으니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그러므로 칼빈의 구원관이 비성경적임을 알지 못했던 목회자들은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알면서도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하여 믿기만 하면 행위와 무관하게 구원을 받는다고 설교해온 목회자들, 그리고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영생)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여 또는 천국에 가서 상을 받기 위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설교해온 목회자들은, 옥한흠 목사처럼 하루속히 회개하고 성경의 바른 구원론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신자가 영생의 길에 들어서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사회와 국가 개혁에 모범을 보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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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 저자 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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