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세계교회협의회(WCC) 울라프 F. 트베이트 총무가 최근 중앙위원회에서 재선에 성공해, 오는 2020년까지 기구를 이끌게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트베이트 총무는 지난해 부산총회를 이끈 인물이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달 한국신학회에서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장)가 발표한 ‘WCC의 종교다원주의: 부산총회 이후’ 원고를 두 차례에 나눠 게재한다. -편집자 주

4. WCC의 ‘우주 일치’를 위한 종교다원주의

부산총회 선교선언문인 ‘함께 생명을 향하여’에서 종교다원주의가 표명되는 원인 중 하나는 그들의 포괄주의 때문이다. WCC 중앙위원들은 2013년 부산총회를 준비하며 모든 피조물의 일치를 도모하여, 2012년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만장일치로 ‘새로운 선교성명서’를 공포하였다.

선교 모라토리움과 상반되는 고백처럼 보이는 이 ‘함께 생명을 향하여: 기독교의 지형변화 속에서 선교와 전도’라는 문서의 결론부 서두 제121-125항에서 매 항마다 특히 강조하고 있는 선교의 목적은, ‘피조물 전체(whole creation)’ 내지 창조물의 통일성(integrity oif creation)의 자유와 건강과 화해를 통한 ‘생명의 충만(fullness of life)’이다. 이 선교선언문의 전체 맥락에서 ‘화해’란 단어는 모든 피조물을 포괄하는 가시적 초대형 혼합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 뜻을 두고 있다.

2013년 부산총회 선교선언문 제61항에서 “우리는 교회와 일치에 대한 성찰을 ‘더 광범위한 일치’ 이해로, 즉 인류의 일치 및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전체의 우주적 일치로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듯, WCC의 세계통합적 사상은 선교선언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병행되는 WCC의 우주 구원관 및 선교관은 다음과 같다.

3항: 하나님의 선교를 우주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과 온 생명, 온 세상이 하나님의 생명의 그물망 안에서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

19항: 선교는… 모든 피조생명과 우리들과의 화해된 관계성을 표현하는 선교 유형을 채택해야 한다.

20항: 우리는 온 피조물이 ... 화해된 일치 안에 포함된다(고후 5:18-19).

23항: 구원: 다른 피조세계가 멸망하는데 인간만 구원 받을 수 없다.

46항: 하나님의 통치를 알리는 좋은 소식은 정의롭고 포용적인 세계가 실현된다는 약속에 관한 것이다. … 포용성은 인간과 피조물의 공동체 안에서 인간과 피조물이 서로를 인정하고, 각각의 신성한 가치를 서로 존중하고 유지하는 정당한 관계를 촉진시킨다.

61항: 우리는 교회와 일치에 대한 성찰을 더 광범위한 일치 이해로, 즉 인류의 일치 및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전체의 우주적 일치로 개방할 필요가 있다.

105항: 하나님의 영의 선교가 온 피조물을 새롭게 하는 것임을 확언.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 구원을 온 피조물의 갱신에서 분리시키지 않는다.

부산총회에서 이러한 우주 포괄적 다중고백을 한 요인 중 하나는, 이미 반 세기 전부터 그들이 지향하는 포괄적 세계관 때문이다. 제1차 WCC 총회부터 1968년 제4차 WCC 총회까지 총무였고 명예회장이 된 W. A. Visser't Hooft가 WCC 총회에 대해서 올바로 지적했듯, “이제는 선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인류의 일치(Einheit der Menschheit)’ 이야기이고, ‘기독교의 연합운동’이 아니고 ‘인류의 연합운동(nicht der christliche, sondern der menschliche Ökumenismus)’ 이야기다.”

1967년 보세이에서 출판된 <세계를 위한 교회> 보고서는 ‘Missio Dei’ 선교신학을 이방인 내지 불신자의 회심을 위한 복음전도를 의미하는 선교가 아니라, 이 세상에 샬롬을 세우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샬롬이란, 개인이 홀로 즐길 수 있는 내적 평화(마음의 평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궁극적 화해와 일치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선교’ 신학은 교회가 독자적인 역사를 가질 수 없고, 역사는 특별한 역사가 아니라 ‘온 인류의 전체적인 역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WCC는 신자의 지역과 불신자의 지역이 따로 있다고 여기지 않고, 교회의 역사를 특별한 역사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역사는 ‘온 인류의 전체적인 역사’ 하나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WCC의 일원론적 역사관과 Missio Dei 선교관은 부산총회 선교선언문(2012년) ‘함께 생명을 향하여’로까지 계승된다.

WCC의 타종교와의 대화분과는 그 악명 높은 종교다원주의 선언문인 ‘바아르 선언문(1990년)’이 완성되기 20년 전 이미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해 가장 기여한 사람으로 알려진 ‘대화 분과’ 초대 위원장 S. 사마르타(1971-1980)가 기초했다. 그는 서벵갈 세람포대학 철학과 종교역사학 교수였다. 그는 ‘대화를 위한 용기(1971)’라는 제목으로 1971년 WCC 중앙위원회에서 연설하면서, ‘믿는 자의 구원’이 아니라 불신자를 포함한 개념으로 구원의 개념을 확대하였다.

이 대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WCC는 이듬해(1971년) WCC 내부에 ‘산 신앙인들과의 대화-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이 대화-프로그램의 초대 책임자였던 사마르타는 타종교와의 ‘대화’만이 다원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제 교회연합(Ökumene der kirche)이 아니라 인류연합(Ökumene der Menschen)에 대한 목적을 갖고, 과거적 교회들 간의 대화를 넘어 타종교와의 대화를 통한 세계공동체 형성을 위해 모든 종교인들의 협력을 구하였다. 사마르타는 ‘믿는 모든 사람들’만이 아니라, ‘믿음과 상관없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만인구원론적 입장에 서 있으며, 그리스도론, 성령론, 구원론을 모두 확대하는 작업을 하여 종교다원주의를 초래하였다.

S. 사마르타의 뒤를 이어 제2차 ‘타종교와의 대화 분과위원회’의 책임을 맡은 W. 아리아라자는 교회연합을 넘어 ‘인류연합’이라는 ‘광범위한 에큐메니즘’을 주장한다. 그는 이 ‘새로운 에큐메니즘’을 위해 “신학적 기초들을 다시 고안해 내야 하는 필요성”을 주장하고, 다른 신앙을 가진 이웃들은 회심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가는 순례자들로 이해했다.

세계통합적 노선으로 인도하는 이 글을 통해 그는 세상 문제들을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함께 언급해야 할 인류의 문제로 인식하고, 정의 , 평화, 인권, 환경파괴, 종교, 나라, 문화 경제를 넘어 함께 일할 필요를 언급했다. 또 기독교를 초월하여 ‘우리의 삶을 지도해 줄 ‘세계적인 도덕’에 대한 부르심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법이 아닌 통합 세계의 도덕법에 찬동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WCC가 세계통합운동(광범위한 에큐메니즘)을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영’이 이 세상 속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확신 때문이다.

비기독교인들과의 연합운동은 1968년 웁살라 제4차 WCC총회에서부터 ‘교회의 보편성(Katholizität)’이라는 개념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제1분과 회의에서 사용한 ‘교회의 보편성’이라는 말은 교회 일치만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인류의 일치를 말한 것이다.

제1-4차 WCC 총회까지 총무였고 명예회장이 된 W. A. Visser't Hooft가 WCC총회에 대해 “이제 선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인류의 일치(Einheit der Menschheit)’가 관심사이고, ‘기독교의 연합운동’이 아니고 ‘인류의 연합운동’”이라고 지적한 대로다.

위와 같이 우주구원과 만인구원신앙은 부산총회에 이르기까지 더욱 강화되면서, 종교다원주의가 불가피하게 요구됐다.

5. 교회 밖의 우주일치운동과 종교통합운동

우리는 필리핀의 외딴 섬 마을에서 베리칩을 실험한 사실에 관한 유튜브 동영상을 접한다. 이 동영상은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설명된다.

“2012년 4월 17일 필리핀 마닐라 근처 퀘존 시티(Quezon City)에서 직업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666 베리칩에 대해서 알리며 전도를 하다가, 이에 관심을 보내는 사람과 우연히 나눈 이야기를 동영상에 담은 내용이다. 증언이 사실이라면 무척이나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필리핀 세부 지역에서 직업을 찾기 위해 마닐라까지 왔다고 말하는 이들은,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베리칩을 받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필리핀 세부 지역의 바야와나(Bayawan)와 산타 카탈리나(Sta. Catalina)라는 지역에서 왔다고 말하고 있는데, 자신들이 살던 지역은 고립된 지역으로 어느 날 총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들이닥쳐 마을 사람들에게 쌀알 크기의 칩을 손목에 강제적으로 이식하고 이마에 666을 문신 같이 찍는 것이다. 이마에 칩을 이식하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였고, 칩을 받은 사람들은 마치 로보트처럼 누군가에 의해 통제를 받아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죽이는 일까지 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미 15년 전부터 필리핀의 어느 고립된 지역에서 세계정부주의자들이 베리칩에 대한 실험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더구나 증언 내용처럼 이식된 베리칩이 사람들을 조종하여 살인을 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마인드컨트롤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베리칩을 한 번 받으면 더 이상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을 찾거나 죄를 회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의 표’를 받으면 더 이상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심판을 받을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계 14:9-11).

우리는 베리칩과 WCC의 종교다원주의 및 우주연합운동은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WCC와 가톨릭의 연합운동이 베리칩과 관계가 있는가에 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성경의 예언(계 13:16-18, 14:9-11)이 성취될 미래를 맞을 우리는 ‘빌더버그 회의’가 WCC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를 다룰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뉴스들 중 아래의 내용을 발견했다:

“빌더버그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전 세계를 통제하는 데 있다. 그야말로 지구상에 군림하는 신적인 존재로서 그들이 꿈꾸는 세계는 전 인류의 노예화에 있다. 단일 시장과 단일 군사조직, 세계은행이 운용하는 단일 화폐를 가진 세계 유일 정부. 가톨릭을 앞세워 대중을 신세계 질서를 이끌 세계 유일 종교와 교회를 지향하기 위해 모든 종교를 통합하고, 그 외 모든 종교를 말살하는 것 역시 빌더버그의 목표 중 하나이다. 전 세계 모든 종교를 말살하거나 하나로 묶는 것은 빌더버그 그룹이 역점을 두고 있는 최대 사업 중 하나이다. 세계 단일 정부를 위해서는 종교적 이질감으로 빚는 갈등을 뿌리 채 없애, 이들이 꿈꾸는 세계 단일 정부의 종교는 유일 종교가 돼야 한다는 논리다.”

이들이 중심으로 삼고 있는 종교가 바로 가톨릭이다. 빌더버그 그룹 안에는 가톨릭 한 분파인 예수회 신부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익히 알려진 사실처럼 예수회는 중세 유럽에서 교황권의 부정과 죄악상을 고발하며 일어난 종교개혁을 박해하기 위해 종교재판소를 최초로 고안한, 스페인 바스코 지방의 성주 아들로 태어난 이그나티우스 D. 로욜라 수도사가 창설한, 악명 높은 수도회이다.

로욜라가 1542년 설립한 종교재판소는 이른바 세계사 속에 ‘암흑기’라 불리는 16-18세기, 교황권 몰락까지 약 7천만 명을 온갖 잔혹한 고문과 화형으로 학살했다. 단지 가톨릭으로 개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오늘날 빌더버그는 이러한 발판을 다시 닦기 위해 아직 마수의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이들은 미래의 세계단일정부가 인정할 유일 종교를 가톨릭으로 설정하고, 현재 바티칸이 추진 중인 전 세계 종교연합운동을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예수회 신부들이 빌더버그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빌더버거들에게 지구 상에 존재하는 세계 정부는 하나이며, 갈등과 신념의 충돌을 막는다는 미명 아래 하나의 종교만 추구하고 존재한다.

동아일보 1996년 6월 17일, 13면에는 “세계지배 음모론 실재하나? 비밀결사 ‘빌더버그 그룹’”이라는 기사가 아래와 같이 기록되었다:

“지난 12일 미국 조지아주의 레이니 호수에 있는 외딴 섬에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 전 합창의장, IBM의 루이스 거너스 회장, 네델란드의 베이트릭스 여왕 등 세계적인 거물들이 은밀히 도착했다. 샌디버거 백악관 안보담당특보와 빌 클린턴 오른팔이던 조지 스테파노노로스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도 거물 대열에 참석했다. 이렇게 모인 거물들은 유럽의 왕실과 다국적기업 회장, 경제학자, 은행가, 언론인 등 1백20명이었다. 그러나 세계적 거물들이 외딴 섬에 모인 이유를 아는 외부인은 아무도 없다. 철통 같은 보안 속에 15일까지 회합을 끝낸 이들은 아무런 발표도 없이 섬을 떠났다. 이들은 막후에서 세계를 조종한다는, 이른바 음모론의 대상으로 지목받아 온 ‘빌더버그 그룹’ 멤버들이다. 참석자들은 모임의 내용을 발설하지 않도록 주의를 받으며, 실제로 한번도 누설된 적이 없다. 이들이 막후에서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작년(2013년) 런던에세 개최한 ‘빌더버그 회의’에 관한 자료로 ‘서울경제 오피니언’에 보고된 내용은 ‘빌더버그 회의’에 관해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는 두 유대인 가문인 로스차일드와 록펠러가 60년 전 만든 비밀 회의이며, 회의 참석자들은 라가르드 IMF 총재, 서덜랜드 골드만삭스 회장, 슈미트 구글 회장, 엔더스 유럽항공방위산업 회장, 캐머런 영국 총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140명이라고 한다. ‘자유무역, 세계화’가 목표라고도 보고한다.

빌더버그 회의는 매년 세계 정치·경제계 유력 인사 수십 명이 모여 핵, 테러, 경제 등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행사이다. 1954년 유대계 부호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정적 후원 아래 네덜란드 빌더버그 호텔에서 첫 회의가 열린 후 이런 이름이 붙었다. 지난해에는 미국 버지니아에서 개최됐다. 이 회의는 합의서나 회의록을 절대 공개하지 않고, 비밀결사 조직처럼 운영된다고 한다.

20세기 후반의 WCC가 종교다원주의, 상대주의 내지 보편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확대되는 지구촌의 기아와 재난을 해결하려는 나눔(더불어)과, 차별과 억압, 사회악과 불의의 상황에서 요구하는 해방, 그리고 핵개발과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인류 말살의 위기감에서 오는 공존의 요청 때문만이 아니다. 필자는 현대 정치통합과 경제통합 등 세속적 통합운동들의 조류를 타고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공동 목표가 종교통합이 아닐까 우려된다.

6. 복음주의적 비판과 결론

위와 같이 WCC의 우주화 내지 확대 또는 보편화된 ‘그리스도’ 개념은 ‘예수’의 인격성이 배제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죄인과의 인격적 만남이 없고, 그러한 인간은 예수께서 ‘알지 못하는’ 죄인으로 남아있게 되며(마 25:12), 이로 인해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게 된다(살후 1:8-9). 또 성령의 인격성이 배제된 ‘성령의 보편화’ 신학은 성령의 인격적 영접을 배제함으로(요 14:16-17, 행 1:4-5), 이 신학을 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날 수도 없고 구원을 받을 수도 없게 된다(요 3:3, 3:36, 7:38-39). 이러한 반성경적 보편주의 신학은 종교다원주의 이단적 신학으로 기울어지고, 성경적인 세계선교를 질식시킨다.

WCC는 복음주의자들이 가장 큰 소명으로 아는 전도와 선교의 개념을 다 사용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세계 복음화도, 세계 선교도 아니다. WCC는 잃은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WCC 선교신학, 즉 Missio Dei 신학은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복음적 신앙을 떠난 정치·사회적 샬롬(Shalom) 운동이며 해방운동에 불과하다.

4차 웁살라 총회에 참석한 영국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는 아래와 같이 탄식하였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아직도 복음화되지 못한 수백만의 영적 기아에 대해 염려하는 바를 이 대회에서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육체적 갈망과 기아와 가난과 불의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난 반 세기 동안 WCC ‘선교와 전도분과(CWME)’의 연합운동이 일원론적 역사관 때문에 교회연합운동이 아닌 세계연합적이고 종교다원주의적인 이중적·모순적 고백으로 점점 흘렀고, 하나님께서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제시하는 구원은 만인구원, 자동구원 또는 세속적 구원으로 왜곡되었으며, 성경적 이신칭의의 구원관을 분실하게 됐다.

필자는 세속정치와 경제통합운동과 병행하여 WCC와 가톨릭이 이미 반 세기 전부터 탈기독신앙적 세계일치 운동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더욱이 이번 제10차 부산총회가 복음주의자들의 대량후원으로 WCC의 방향을 성경적으로 돌이킬 수 있을까 희망을 품어 보았으나, 결과는 뻔하게도 WCC의 이중 진술과 가면에 모두 말려들어 그들의 힘만 키워주게 됐음을 허탈하게 바라볼 뿐이다.

WCC는 1960년대 이래 한 번도 복음주의자들의 권면을 받아들여 방향을 바꾼 적이 없다. 오직 이중, 삼중적 모든 모순을 끌어안고, 3억 3천의 귀신을 섬기며, 일원론, 이원론, 범신론, 다신론을 다 끌어안은 힌두교의 종교철학처럼 WCC는 더욱 혼합적으로 거대해진 ‘가시적 일치’를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WCC의 종교다원주의적 특징들을 아래와 같이 정의할 수 있다:

1. WCC 선교관이 상실한 개념들: 1960년대 이래 WCC의 CWME 보고서와 선언문에서는 영혼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하나님의 심판, 불신자의 멸망, 사후 천국과 지옥, 몸의 부활 같은 성경적 중심개념들이 사라져 버렸다. 우상숭배, 이단, 그리스도의 유일성, 구원의 유일성, 구원의 확신, 영 분별, 선교, 파송, 선교후원, 개종 등의 단어들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가톨릭교회는 ‘우상숭배’이라는 부정적 개념을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 가톨릭의 십계명에는 두 번째 계명인 우상숭배 항목이 빠져 있다. 가톨릭은 우상숭배에 관한 개념이 뚜렷하지 못한 것이다. 가톨릭은 이 둘째 계명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허용했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가 얼마나 비참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던가에 관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WCC와 가톨릭은 ‘우상’이라는 개념과 ‘우상숭배’라는 개념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2. 포용주의: WCC의 CWME는 자연계시만 알고(행 14:17) 우리의 영혼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특수계시(구원계시)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9절 이하 하나님의 자연계시 때문에 우상숭배자들이 사형죄인들이 된 것에 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WCC는 막연히 오직 현재적인 자동구원 또는 만인구원적인 희망을 품고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구원을 동일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가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WCC와 가톨릭은 타종교들과 연합을 시도하기 전에 그들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의 차이를 분별하고자 하지 않고, 창조론과 창조자를 알지 못하는 범신론 종교들의 문제를 연구도 하지 않는 불가지론적 입장에 서 있다. 이들은 오히려 우상숭배자들을 향해 ‘다른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 호칭하면서, 기독교와 동등한 생명의 가치로 간주하고 있다.

3. 반개종주의: 가톨릭과 WCC의 선교분과 위원회(CWME)는 1960년대 이후 불신자들을 회심시키는 개종선교를 포기했고, 그 후 다시는 번복하지 않았다. 이들은 타종교인들의 구원을 위해 회심과 개종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개종선교에 대한 그들의 거부감도 오래 되었다. 그 대신 온 세상의 샬롬, 온 우주적인 화해, 상생(living together), 현재적 ‘구원’ 내지 샬롬을 최우선적으로 중요시한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과 행동주의는 한국에서 불교 같은 타종교의 목적과 그 지도자들의 설법과 병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WCC와 타종교들은 더욱 친해지고 그들과의 연합행사는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구소련 정교회권과 중남미 가톨릭권에서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잃은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일을 WCC가 사악하고 반역적인 행사로 정죄한 사실이야말로,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두려운 행사다. 회심과 개종은 ‘세례 받는 일’과 구별되어야 한다. 고넬료는 세례받기 전 성령을 받고 회심하였다. 진정한 회개와 개종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하신 일이고, 사람이나 기관으로가 아닌 하나님께로 돌이킨 일이다. 회심과 개종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이고 인간의 힘과 수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고전 12:3). WCC는 각처에서 일어나는 회심과 개종을 적극 환영해야 한다.

오늘날 이 같은 반개종주의적 환경에서 복음전도자들은 조용히 순교적 사랑을 부으면서 잃은 영혼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복음적 개종선교에 더욱 힘써야 한다. 예수께서 시작하신 회심선교(마 4:17)는 제자들에게 명하신 마지막 유언이기도 하다(눅 24:47).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혼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욱 헌신하여 회심선교를 수행,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얻도록 온 힘을 다 해야 한다(막 16:15f).

4. 세계연합운동: 20세기 후반부터 WCC와 가톨릭은 기독교 밖의 정치통합운동과 경제통합 운동과 병행하여, 세계연합운동을 추진한다. WCC는 잃은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아픔이나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려는 시도 없이,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신앙고백과 동시에 종교다원주의적이고 자기기만적인 이중고백에 취해 있다. WCC는 성령의 감격이나 하나님께로의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 없이, 오직 이웃과의 평화와 돌봄의 행위들을 촉구하고 오직 인류와의 ‘가시적 연합’을 위해 종교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종파들을 가시적인 통합체로 더 크고 광범위하게 혼합하고 뭉칠 뿐이다. 이번 부산총회의 세계연합운동 특징 중 두드러진 현상은 모든 종교와의 일치를 포함한 ‘우주연합’의 동향을 보인 것이다.

WCC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갖고 있지만, 믿음이나 행위에 대해 아무 신조에도 구속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니케아 신조와 종교다원주의를 동시에 고백할 수 있고, 1970년대 이래 WCC  대화 프로그램의 책임자들처럼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을 늘리고 확장시켜 불신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교리를 만들고자 한다.

‘교회의 가시적 일치’의에 대한 염원은 ‘신앙과 직제’ 뿐 아니라 제2바티칸회의 역시 강력하다. 그러나 가톨릭의 입장은 다르다. 교황의 수위권이나 화체설이나 죽은 자들과의 교제신앙 등 특수한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결코 버리지 않으면서, 세계 종교통합운동을 성취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교히 수호에 관심이 없는 WCC가 가톨릭에 흡수통합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WCC가 바라는 ‘우주연합’을 위해 가톨릭교회와의 일치가 불가피하다면, 가톨릭 교황을 수장으로 받아들이고 그 지배 밑으로 들어가는 길 외에는 없을 것이다.

5. 복음주의의 협력: 이러한 WCC 단체 속으로 일부 복음주의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난 제10차 WCC 부산총회의 특징은 일부 복음주의 단체들과 한국의 상징적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WCC의 거대한 후원자들을 자처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을 믿고 따르는 한국교회 신도들도 무비판적으로 WCC의 신앙과 신학적 흐름에 탑승하고 있다.

그러나 WCC에 소속된 교회들을 포함해 한국의 모든 복음주의 교회들은 성경만큼은 신앙의 핵심으로 확실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 부산총회 이후 WCC의 혼합된 복음과 신학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회에서 성경적인 회개운동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는 있다. 다만 WCC 가입 교단에 속한 교회들의 복음선교 선교현장에서 회개와 개종이 일어날 경우, WCC로부터 “개종주의자, 독선, 이기주의자 또는 규칙위반자”라는 비판이나 핍박을 받을 수 있다.

6. 분열: 부산총회 이후 한국교회는 복음적 그리스도인과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이 더욱 심화되고, 이전보다 분열의 상처가 더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그 양상은 종교다원주의나 반개종주의 같은 속된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 성경적 그리스도인들과, 세계의 평화공존이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최우선적 방법이라고 보고 ‘가시적 교회연합 운동’과 ‘인류연합운동’을 위해 성경도 신앙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세속적 그리스도인들로 더 확실하게 나뉠 것이다. 결국 WCC 부산총회 이후 한국교회 연합운동은 세속적 연합운동과 성경적 연합운동으로 분리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말세의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22:11)”

8. 탄압: 머지않아 UN을 중심으로 한 세계통합운동과 종교통합운동 프로그램에 따라, UN의 공증을 받은 종교지도자만 종교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성경의 예언과 같이 적그리스도의 통치와 짐승의 칩을 통한 단일종교 내지 세계종교(Inter-Religion)의 때가 이르면,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이 탄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반개종주의적 WCC 신학을 거부하는 복음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 아래 개인의 믿음을 최우선적으로 중요시하고, 불신자의 멸망, 불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한 선교,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는 회심과 개종을 통한 구원(요 1:12-13), 재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 종말적인 구원과 심판, 이웃을 위한 사회적 봉사 등의 성경적인 약속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신앙과 선교의 내용으로 알고 있다.

한국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그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온 힘을 다해 기도하며, 말씀대로 순종하는 윤리·도덕적 삶을 살아야 하며, 복음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며, 마지막까지 진실하게 순교적인 신앙으로 변질되지 않은 성경적인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해야 할 것이다(마 28;18-20).

/이동주 박사(아신대 은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