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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관 박사 떠났지만, 훈훈한 미담은 계속

이동윤 기자 dylee@chtoday.co.kr   | 이동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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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1.04 17:08   
인터넷에 추모글과 이미지 등 확산 중

 

▲황수관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세상에 유쾌한 바이러스를 퍼뜨렸던 ‘웃음 전도사’ 황수관 박사가 갑작스럽게 사망했지만, 여전히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와 인터넷상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글과 이미지, 영상들이 빠르게 확산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퍼지고 있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가난한 소년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미지는 어린 황수관이 의대 교수가 되기까지의 입지전적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이미지는 ‘판타(Fanta)’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네티즌이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파일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경북) 경주 근처 안강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에 다닐 돈이 없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1년 동안 산에서 나무를 해 적으나마 학비를 준비했다. 그러다 포항에 가면 공짜로 공부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소년은 세 시간이나 걸어서 학교에 갔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너무 머니 포기하라’고 했다. 소년은 끝까지 우기고 애원해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후 매일 오전 4시에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먼 길을 통학했다.

고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소년은 사범대학에 입학해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 더 큰 꿈을 품고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 의학에 관심이 생겨 의대 청강생으로 들어갔다. 의대 교수들은 그에게 온갖 수모를 줬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간고사 때 시험지를 주지 않자 ‘나도 한 장 달라’며 항의하는 뻔뻔함도 있었다. 그리고 의대생들보다 더 훌륭한 답을 써서 교수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게 고인은 10년 동안 의학 수업을 청강했다. 졸업장도 못 받는 수업을 10년이나 청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의대 졸업장도 없이 연세대 의대 교수 공개채용에 지원했다. 마침내 유학파 출신, 명문대 의대 졸업생 등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연세대 의대 교수가 됐다.

우리는 그를 신바람 박사 황수관이라 부른다.”

누리꾼들은 이 이미지를 보고, 항상 웃던 그의 모습 뒤에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다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황수관 박사가 출연한 종편(종합편성채널) 방송의 강의가 ‘황수관 박사 이별 강의’라는 검색어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방송에서, 황 박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는 ‘Mother’라고 고백했다. 이어 황 박사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랑과 모성애’를 강의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어린 시절 홍역을 앓아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독했지만, 썩은 고름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얼굴과 몸에 생긴 종기를 밤새 닦아내던 어머니를 회상했다.

아울러 황 박사는 북한 기아 어린이 돕기와 동남아시아 쓰나미, 미국 허리케인, 아이티 지진 등 각종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성금을 기탁한 것으로 밝혀져,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온 고인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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